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시어머니는 부부가 싸움만 할라치면 언제나 아들의 역성만 들어주었다.
당신 때문에 부부 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한다고 소리치던 엄마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엉켜 있다.
하루는 엄마가 토해놓은 애끓는 넋두리가 캄캄칠야 깊고 깊어 낡아버린 아빠의 마음을 배가 뒤집힐 것처럼 요동치게 했다.
두 사람의 고성에 정희는 두 손으로 귀를 가린 채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야 이 씨발년이, 너 내가 만만해? 니 년이 나를 무시하는 거야, 그래 너 이리 와''
아빠가 처음 엄마를 때린 날,
어린 정희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막아서다 오른쪽 뺨을 세차게 맞고 방바닥에 '쿵'소리가 나며 힘없이 나뒹군다.
아빠가 부엌에 있는 가위를 들고 엄마의 머리채를 숭덩숭덩 자른다.
아-살아남으려는 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이토록 애처로울 수가-
''시발, 니 년이 다 자초한 일이지. 그러게 왜, 왜, 어디서 그딴 말을 지껄여''
아빠가 엄마의 목덜미를 잡고 바닥을 질질 끌며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근다.
퍽 퍼억- 한 남자가 사정없이 여자를 후려 패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지는 엄마의 비명소리가 정희에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일곱 살, 정희의 세상이 무너졌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만지작거리며 잠에서 깼다.
드르렁 코를 고는 아빠 옆에 엄마가 자고 있다.
정희는 까치발을 하고 부엌으로 간다. 간담이 서늘하다.
어젯밤 비가 온 탓일까 유독 몸이 으스스하다.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까지 든다.
부스럭거리며 칼을 찾는다. 칼을 숨겨야겠다. 집 안에 온 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