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소설_부러진 새

#7

by 현자

*


잘 지내시나요, 당신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어요.

시간이 참 많이 흘렀죠.


엄마, 바닷길이 열고 닫히는 이곳은 자연의 허락이 필요한 곳이에요.

새벽 아침, 스님들보다 제일 먼저 향을 올려요.

자연에게, 역사에게, 바다에게, 스스로에게. 세상 모든 것들에게 빌어요.


엄마, 매일 밤 당신을 위해 기도했어요.

보름달이 환하게 비친 날 바다는 나와 세상을 다시 이어 붙여요.


어젯밤 애월 스님이 몽우리 진 제 젖가슴을 눈치채고 읍내에 나가자고 했어요,

읍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애월 스님이 해준 이야기에 온몸이 전류에 감전된 듯 찌릿찌릿했어요.

그 악몽들이 되살아나듯 온 힘을 다해 거부하고 싶었어요.

내 작은 눈이 끔벅거리다 구슬 같은 눈물이 뚝 뚝 두어 방울 떨어져 버렸어요.

까맣고 반질거리는 스님의 손가죽이 보드랍고 작은 내 손을 감쌌어요. 어떠한 위로처럼.


''정희야, 가보자. 너의 길이다.''


엄마, 오늘은 나를 위해 빌어주세요.




*



몇 년 후,


가죽만 빼빼 남은 노파의 느린 손이 쉬지 않고 그녀의 등을, 어깨를, 손을 향해 움직인다.

노파의 눈이 무겁게 감긴다.


비릿한 피 냄새가 서월암을 감싼다.

코 끝과 손끝을 적시는 해비와 하늘과 땅이 광활하고 산수가 신령스레 아름다운 이곳에 한 여인이 서있다.


화사한 봄을 맞은 얼굴로 쪽 머리를 한 그녀가 바위 아래서 화려하면서도 공허한 날갯짓으로 짙은 해무 속 무대를 시작한다.


활개를 크게 저으며 왼손에는 방울을, 오른손에는 부채를 펼치며 걸어간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나비의 날개처럼 떨리다 기다란 북채로 큰 북을 한 번 '둥' 치니 입술을 적시고, 흘러나오는 몇 소절의 노랫가락이 구슬픈 긴 여운을 남긴다.


거침없는 발걸음, 바람을 타고 흐르는 손끝, 등줄기를 타고 흘러 어깨너머 드리운 빛은 순간 시야에 머물러 찰나의 빛을 뿜어낸다.

아, 옷 끝자락의 붉은 실은 수채화처럼 퍼져나가는 뜨거운 감각이던가. 팔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감싸는 비릿한 전율이 숨통을 조여 온다.


다시, 이 바다에 내가 부서지고 넘어져도.

또 한 번, 다 흘려보낼 수 있음을 알기에.


그 많은 고난과 비운을 견뎌낸 여인의 뺨이 노을에 적셔 쌉싸름하면서도 오랜 복숭아 씨앗 빛을 띠고 있었다.



노을에 한 떨기 꽃이 되어 타오르는 그녀가 처절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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