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가족학 전공생의 글쓰기_2022 서울대학교 인권·성평등 에세이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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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힘으로 만들어낸 명절 풍경의 변화가 이 글에 담겨 있으나 우리의 투쟁기는 아직 미완성이다. 개강 전날이자 서울에 오기 전날,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음을 다시금 체감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 가족끼리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가족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말했다.
“왜 저렇게까지 어려운 호칭을 고수하려고 하지?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서로 존중하는 호칭으로 바꿔 사용하면 안 되나?”
“사람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렇게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건 아니다. 그리고 여기가 무슨 미국이냐? 그렇게 다 따라하면 우리 문화는 어디가고?”
“그래도 지금 우리나라 호칭들은 너무 위계가 잡혀있고 성 불평등하잖아.”
“그러면 있는 거를 없애냐? 가족에 위계가 있는 건 당연하지.”
“엥? 가족에 왜 위아래가 있어야 해? 가족은 수평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허? 수평? 그래, 느그가 말하는 그런 세상이 오는가 함 보자. 한번 잘 해봐라.”
우리를 저주하는 듯한 말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세상에 만연한데 세상을 너무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문득 이게 아빠만의 문제 혹은 우리 가족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성 불평등한 호칭 문제를 지적한 여성들이 많아. 근데 그럴 때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아빠처럼 전통 편을 들었지. 결국 우리 사회의 문제인 거야.”
아빠는 말없이 끄덕였다. 내 말이 아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국립국어원이 여성들의 외침을 한낱 불편에 찌든 문의 사항으로 여기듯, 아빠에겐 우리가 가시처럼 내뱉은 말도 자신의 꽃들의 재잘거림으로 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재잘거림의 힘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 가족의 변화를 향한, 우리 사회의 변화를 향한 약하지만 강한 꽃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