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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아 Aug 09. 2023

세 자매의 명절 문화 개선 투쟁(9)

아동가족학 전공생의 글쓰기_2022 서울대학교 인권·성평등 에세이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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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우리의 대화는 엄마의 입으로 고모에게, 고모의 입으로 가족 전체에게 전해졌다. 의도 전달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아빠에게 “이번 명절에는 설거지도 좀 하고 그래 줘요.”라고 말했을 때 아빠는 어김없이 발끈하며 말했다. “내가 언제는 안 했나?” 엄마가 한 말이 그런 반응을 낳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이러한 아빠의 사고방식이 행동에 반영되어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나의 화를 불러오긴 했으나 우리의 명절은 분명히 달라졌다.

  추석 당일 사촌 오빠네가 우리 집에 옴으로써 가족 전체가 모여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와 친하며, 리더십도 있는 고모가 상 중앙에서 선언했다.


“자자, 명절에 일하는 사람만 하고 놀 사람은 놀기만 한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이 문화를 좀 바꿔보려 합니다. 3시쯤에 다 같이 운동장에 나가서 저녁 설거지 내기 배드민턴을 칩시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동의하는 눈치였다. 5살, 7살배기 아이들은 모래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어른들은 나와 언니 이렇게 두 팀으로 나뉘어 2대 2 배드민턴을 쳤다. 언니 팀은 언니와 엄마, 사촌오빠 둘, 사촌 동생 둘이고, 내 팀은 나와 동생, 아빠와 큰아빠, 고모와 새언니(사촌오빠의 아내)였다. 결과는 2대 1로 우리 팀의 승리였다. 저녁을 다 먹고 사촌오빠 둘이서 설거지를 했다. 오전에 부엌일을 하던 엄마와 언니 대신 둘이서 설거지를 하게 된 거면서도 언니는 왜 안 하냐고 구시렁대는 모습이 얄밉긴 했다만, 원래는 엄마나 우리가 해야 했을 엄청난 양의 설거지를 처음으로 둘이서 끝마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다 치우고 난 후에는 노래방이 시작되었다. 이건 내가 몰랐던 계획이었는데 배드민턴 내기만큼이나 좋은 아이디어였다. 가족들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웃으며 노래하고 호응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진심으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명절의 본질을 되새긴 따뜻한 가을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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