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 적응기_문화와 질병_'나는 건강한가?' 쪽글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이다. 자칫하면 너무 평범한 답변이 나오거나 불필요하게 심오해질 수 있는. 동시에 지금 나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건강’에 부합하는 상태에 있을까. 나는 ‘건강’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나아가 나의 삶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 나는 질문의 답을 최대한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의욕 없이 주어진 책임만 다하고 싶은 현재, 나는 선뜻 위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생활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몸이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아서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난감하다. 이렇듯 내가 정의하는 건강에는 체계가 존재한다. 일차적으로 건강은 신체적·심리적 고통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종종 두통, 복통, 감기 등을 겪기는 해도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오래 지속되거나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위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할까? 이는 내가 내린 건강의 고차원적인 정의 때문이다. ‘건강’은 사람 그 자체만을 수식하지는 않는다. ‘건강’은 관계, 환경, 습관, 사고방식, 일상, 삶 등의 단어 앞에 붙어 이상적인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결국 건강은 이상(理想)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개인, 문화마다 건강을 다르게 정의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 혹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가?’라는 질문은 ‘나는 나의 이상에 근접한 상태에 있나?’라는 질문으로 해석되었다. 그랬기에 엄격한 잣대로 나를 몰아세웠고 ‘그렇지 않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나의 이상은 이렇다. 생활에 활기가 가득하고 하고 싶은 것이 넘쳐난다. 주말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거나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의미 있게 보낸다. 계획했던 바를 실행하려 노력한다.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나 자신에게 당당하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귀찮다. 생활은 활기가 아니라 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오래 잤는데도 그렇다.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여전히 그것들을 실행하고 싶은데 그보다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주말은 게으름을 형상화한 형태로 보낸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 이상과는 정반대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에 나는 건강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이유 없이 찾아온 지친 상태가 곧 있으면 지나가리라 믿는다. 애초에 ‘건강하지 않다’ 혹은 ‘이상적이지 않다’라는 말을 ‘실패’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나에게 있어 건강은 단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지, 성공의 잣대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의기소침할 뿐이다. 그럴 때면 다른 측면의 건강을 생각하고 거기에 충실해져 본다. 사소한 취미를 가지거나 친밀한 사람들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나름대로 건강한 삶이 되지 않을까.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다. 건강을 좇다가 건강하지 않게 될 바에 건강하지 않은 현재를 긍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