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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아 Jan 15. 2024

시선이 가지는 힘

아동가족학 전공생의 글쓰기_언어지도_텍스트 《위를 봐요!》 비판적 고찰

   

  시선
  1.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2.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선이 아래를 향해있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아마도 아파트 고층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길거리에는 시선이 앞에 고정된 사람들이 있다. 아이의 시야에는 앞만 보는 사람들의 검정 머리가 가득하다. 아이는 여전히 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그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모든 이의 시선은 일방적이다. 위에 있는 아이는 아래만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앞만을 본다. 아이는 시선을 원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용기 내어 외쳤다. “내가 여기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까만 머리로 가득했던 거리에 한 아이의 얼굴만 남았다. 시선들이 마주하게 된 첫 순간. 위, 아래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대화를 시작한다. 아래에 있는 아이는 위에 있는 아이를 알아간다. 아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왜 아래가 궁금한데 내려와서 보지 않는지, 위에서는 뭐가 보이는지. 머리 꼭대기만 보인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그럼 이건 어때?” 아이는 머리 꼭대기가 아닌 자신의 전부를 보이기 위해 길에 눕는다. 시선은 여전히 위를 향해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말고 아이를 따라 눕는다. 이제 길은 누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외친다. “모두 위를 봐요!” 위에 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위를 본다. 환한 미소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 두 아이는 같이 위를 바라보며 웃는다. 아이가 있던 위에는 자라나는 새싹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렇게 거리는 봄을 맞았다.

  정진호의 《위를 봐요!》는 시선을 통해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한 그림책이다. 본 글에서는 책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텍스트가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이며 책이 대상에게 어떤 가치를 지닐지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익숙하지 않은 시점을 사용하여 낯선 세상을 담은 연출에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는 그림책에서 흔치 않다. 내려다보는 사람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아동이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현실 세계에서 휠체어에 탄 사람은 서 있는 사람보다 시점이 낮다. 고로 휠체어 사용자가 서 있는 사람의 머리나 얼굴을 보려면 그의 시선이 위를 향하고 서 있는 사람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야 한다. 책에서는 이를 완전히 반전시켜 놓았다. 휠체어에 탄 아이가 위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내려다보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위를 봐야만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누움으로써 위에 있는 아이에게 전신을 보여주자 아이까지 웃는 얼굴로 위를 본다. 같아진 시선의 방향은 곧 같아진 마음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연출이 지닌 함의는 새로운 시야를 통해 생각의 전환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위를 보는 행위는 노력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독자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노력을 강요하기보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시선, 즉 관심의 방향을 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 그림의 시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책은 사고로 다리를 다쳐 세상과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의 시야를 그려낸다. 초반에 아이는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오지 않고 내려다보기만 한다. 바깥에 호기심을 가지는 동시에 앞만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원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래가 궁금했으면서 왜 직접 내려가지 않고 있었을까? 아이는 “다리가 아파서 못 내려가.”라고 답했다. 아래에서 위를 본 아이는 그 이상 캐묻지 않았지만 나는 더 궁금해졌다. 내려가고 싶다면 휠체어를 타고 충분히 내려갈 수 있지 않나? 장애아를 너무 소극적인 존재로 묘사한 게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텍스트를 비판하려 했던 이 지점에서 텍스트가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대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바라봐서는 안 됐다.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타개하는 장애인만을 주인공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됐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에 세상이 두려워져 버린, 그럼에도 세상과 어울리고 싶은 아이 역시 모두의 시선을 받아 마땅한 주인공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텍스트가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대상도 그런 아이일 것이다. 책 속의 아이가 거리에 있는 모두의 노력에 마음이 움직여 밖으로 나온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을 향한 세상의 관심과 배려가 갖추어졌다는 확신이 아이를 밖으로 이끈다. 이러한 텍스트는 그것이 반영하고 있는 대상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운 세상으로 나오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스스로 세상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그러니까 마음을 열어주지 않겠냐고.     

  한편, 텍스트상에서 단어 선택을 더 신중히 했으면 하는 표현이 있다. 사고 장면에 잇따라 나오는 “수지는 다리를 잃었어.”라는 문장이 그렇다. 수지는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태일 뿐, 다리를 잃지는 않았다. 위 문장은 ‘서거나 걷지 못하는, 소위 말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다리는 다리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자동차는 바퀴를 잃었고”와 대구를 이루게 하고 기능의 상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겠으나, 유아가 독자이며 반편견을 지향하는 그림책임을 고려할 때 그보다는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동시에 그림책 작가가 정확한 내용 전달과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 제공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영어로 번역된 버전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럴 때는 과감히 글을 없애고 그림으로만 표현하는 방법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텍스트가 가진 시선은 책임을 낳는다. 독자와 독자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이자 텍스트가 반영하고 있는 대상을 편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의 표현법을 고안하는 것이 바로 그 책임이다.     

  《위를 봐요!》는 작은 비판점을 제외하고 모든 독자에게 좋은 그림책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휠체어를 탄 아이가 내려다보는 세계를 반영함으로써 낯선 세상을 그려내고, 삽화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유아 대상 문학적 언어교육에 적합한 책이라고 판단된다. 그런 국내 저서가 세계로 퍼져나가 2015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으로까지 거듭났음에 매우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시선의 힘을 담은 다양한 그림책이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면 좋겠다. 나아가 그림책이 갖는 시선에서 소외되는 아동이 없기를, 시선이 가진 힘이 결점 없이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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