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_습관처럼 글쓰기 9일 차
2025.08.05.
기숙사에 살면서 각티슈가 급격히 소진되는 시기가 있다. 분기별로 찾아오는 지독한 코감기가 범인이다. 인후통으로 시작해서 풀어도 풀어도 계속 축적되는 콧물이 끝나면 감기가 낫는다. 지금은 현재진형형..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한여름에도 감기가 찾아오는구나.
오늘부터는 주 4일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자란다라고, 돌봄 공백이 생긴 가정에 아이 돌봄이나 학습을 지원하는 아르바이트다. 오늘 처음 만나게 될 아이는 6살 여아. 기숙사에서 먼 거리에(편도 50분 소요) 주 4회라는 수업 횟수가 부담스러워서 고민했는데 1회 2시간 30분, 시급 15000원이라서 그냥 해보기로 했다. 어떤 아이일지, 무얼 하며 함께 놀지 기대된다.
돈을 벌어야겠다, 게을러지지 않게 루틴한 일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괜찮은 일감이 생겨도 늘 고민 끝에 결심하지 못한 적이 많다. 내가 중요한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 이 기회를 잡은 데에는 집단 상담이 큰 역할을 했다.
둘째 날 집단 상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길래 연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연의 순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다.
"내 고민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 첫째는 냐악한 내가 싫어. 객관적으로 난 아직 어리고 인턴 떨어지는 건 너무나도 남들 다하는 경험이야. 휴학 없이 4학년 1학기까지 마쳤고, 지원서를 오래 쓰는 편이라 몇 군데 지원해보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렇게나 지친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해. 두 번째. 반면에 그냥 다 외면하고 싶어. 면접 보고 2주 집에 있는 동안에는 동생이랑 종일 유튜브 보고 시시덕거리면서 정말 무기력하게 지냈어. 지원서가 안 써지기도 하고. 마지막은 그럼에도 '근데 돈 벌어야 하는데...' 생각한다는 거야. 내가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는데 우리 집이 여유로웠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거든. 이렇게 퍼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괴로워."
"내가 내년 1학기에 교환을 가거든. 독일로. 그래서 더더욱 인턴이 됐으면 했던 거야. 인턴은 6개월 동안 경험을 쌓으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까 최선의 선택지였지. 그런데 떨어졌고, 지금 이 상태면 앞으로도 다른 데 지원은 못할 것 같아서... 어떻게 경비를 모아야 하나 막막해."
미리 할 말을 정리해 둔 탓에 울먹이지도 않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연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이야기들.
"일단 같은 지역에서 온 사람으로서 연의 이야기가 정말 공감이 돼. 창원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거든. 나도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하게 돼. 그래서 서울 사는 사람들이 되게 부러워. 휴학을 해도 집에 있으면서 뭐라도 할 수 있잖아. 그리고 교환도 간다고 했으니까, 일본만 해도 천만 원은 들었다는데 독일은 더 들겠지."
"나도 딱 교환 가기 전에 한 학기가 비어서 비슷한 고민을 했어. 난 다행히 인턴에 붙었지만 요즘 인턴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래서 연이한테 물어보고 싶어. 경험과 돈 중에 무엇에 무게가 더 실려 있는지.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면 다음 학기 동안에는 자격증을 추천하고 싶어."
"사실 취업은 교환 다녀와서 한 학기 뒤에나 할 일인데 그걸 너무 앞당겨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 상태면 독일 가서도 즐기지 못하고 취업 생각만 하고 있을 것 같아. (리더의 질문: 000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다음 학기를 어떻게 보낼 것 같아?) 나는 쉬면서 독일에서 뭐 할지 계획할 것 같아."
다시 이어지는 연의 이야기.
"사실 다음 학기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은 꽤 오래 했어. 1번은 인턴 붙는 거였고. 떨어지고 나서는 휴학하고 집에 있으면서 알바하는 선택지가 있었어. 이러면 집에 있으니까 돈이 많이 안 들고 편하게 지낼 수 있지. 근데 집에 가면 서울에 있는 인연이나 기회를 잃으니까 보류했어. 다른 하나는 학교 다니면서 뭔가 하나 하거나 알바 하면서 지내는 거. 집이 멀다 보니까 자주 못 가게 되는 선택지에 앞서서는 고민이 더 많아져."
"연이 집에 자주 가려고 하는 이유는 뭐야?"
"음... 집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연이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가족이 되게 끈끈한가 보구나.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에 가족도 연관이 되고. 연이에게도 같은 질문을 할게. 연이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 연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무슨 말을 해줄 것 같아?"
눈물을 참으며 연이 말했다.
"사실 지금도 듣고 싶은 말은 들으면서 지내는 것 같아. 부담 가지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살라고. 지원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다 해줄 수 있다고."
"연이가 가족 이야기를 하면 슬픈 감정이 드는 것 같아. 어떤 게 연이를 슬프게 할까?"
"나는 엄마 아빠가 자기들을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 열심히 산다고 해도 돈이 많이 벌리지 않을 수 있잖아."
"..." 오래 고민하는 연.
"잘 모르겠어."
"꼭 지금 답을 해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걸 생각해보지 않고 지내다 보면 연이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어. 잘 생각해 보면 좋겠어."
"하나 떨어진 거 가지고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회복 탄력성이 너무 낮은 것 같아."
연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답했다.
"결과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면 그럴 것 같아." 연의 답이었다.
"나는 어떤 자리에 떨어지더라도 그게 내 가치가 훼손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거기랑 안 맞아서 떨어진 거라고 생각하고 똑같은 자소서로 다른 데 계속 넣어볼 것 같아."
"난 학기 중에도 그렇고 지금도 내가 많이 쉬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게 제대로 쉰 게 맞을까? 마음이 다른 걸 계속 생각하는데? 휴학 없이 여태 열심히 살아왔는데 조금 쉬면 어때. 그래도 연이가 해야 할 걸 안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쉼이라... 여기서 맘 놓고 더 쉬어도 된다고?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게 진짜 그냥 쉼이었을 수 있다고? 그럼 나 마음 편하게 좀 쉬어볼래.'
쉬어도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해 볼 만한 일들을 계속 찾게 되었다. MS자격증, 자란다쌤 활동, 근로장학 신청, 대외활동 등. 그래도 동태눈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해봄 직한 일들을 의욕적으로 찾아보았다. 상담의 순기능인지 내가 청개구리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게 중요한 것이 정리가 되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본가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따져보면 캥거루족이 되고 싶지는 않다. 집에 있으면 편안하지만 그게 가족 때문인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 때문인지는 모른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즐겁게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란다도 지원했고 근로장학 60시간짜리도 신청했다. 정 가족이 그립거나 집에 가고 싶으면 빼면 된다. 그럴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니까. 남은 방학은 쉼도 즐기면서!
그리고 대외활동(대기업 서포터즈 3개월)도 지원할 것이다. 다음 학기가 너무 바빠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붙고 생각하련다. 오랜만에 '쓰고 싶어서 쓰는' 지원이 되지 싶다. 이번 주 힘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