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불안 집단 상담 ep1.

일상 기록_습관처럼 글쓰기 8일 차

by 정현아
2025.08.03.

7월 28일~7월 29일 이틀 간의 집단 상담을 마치고 푹 쉬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그 보상으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는.. 여태 글을 올리지 않은 데에 대한 변명을 괜히 써본다. (일주일이나 안 쓴 건 반성한다)


지난번 글부터 일기 형식이 아닌 형태의 글을 도전해보고 있다. 한 인물의 이야기, 즉 인물이 겪은 고뇌 혹은 서사, 인물이 내린 결론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자 한다. = 한동안 <습관처럼 글쓰기>의 컨셉이 될 터!




"지금부터 20분 동안 닉네임을 정하고 선정 이유,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 상담 목표를 생각해 둬. 한 사람씩 초대하면서 우리 모두 이야기할 거야."


닉네임이라... 괜찮은 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와 비슷하게 두리번거리던 사람들마저도 하나둘씩 4등분한 A4의 한 면에 무언가를 써 내려갈 때쯤 '연'이 떠올랐다. 소중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글자이자 인연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닉네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제부터 이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연을 초대할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마음이 말랑해진 상태에서 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은 이야기하기 전에 할 말을 A4용지로 만든 이름표에 자기만 보이게 써뒀다.

'조바심, 무기력, 토대'
'세상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 마음가짐을 달리 가져보고 싶어서'
'내가 해온 것들의 의미'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음'
'내 진정성이 우스운 상황'

연이라는 닉네임을 소개하고 연은 상담 목표를 말했다.

"상담 목표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온 계기랑도 연결이 되는데 내가 최근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목메어 물을 들이켰던 연은 인턴에 떨어졌다고 말하려고 할 때 감정이 북받쳤다. 연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정말 원했던 인턴에 떨어졌어. 그 뒤로 내가 해온 것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하고 싶은 게 다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아. 그래서 되게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 조바심이 들고 도태될 것 같아서 불안해. 세상 탓도 해봤거든?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데 그러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내 마음가짐이라도 달리 가져보고 싶어서 왔어."

말하는 중간에 눈물을 닦을 때 리더가 말을 건넸다. "그만큼 간절했나 보다."

애써 웃어 보이며 연이 대답했다. "응."



"연이한테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 있어?"


한 사람의 소개가 끝나면 두 사람 이상이 질문을 해야 했다.


"연이가 상담 목표를 얘기할 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구별해서 말하는 것 보고 되게 놀랐어. 나는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잘 구별하지 못하거든. 연이가 좋아하고 잘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뜨개질, 잘하는 것은 음.. 글쓰기?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런 질문 되게 많이 받잖아. 하고 싶은 게 뭐냐는.. 나는 그런 질문 들을 때마다 대단한 걸 하고 싶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질문의 의도가 그게 아니었어도. 솔직하고 편하게 대답하고 싶었어. 사실 좋아하는 게 그냥 빈둥거리기일 수도 있잖아.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야."


한바탕 눈물을 보이고 나서 편해진 연은 진정된 채로 답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다른 사람을 초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연은 느꼈다. 불안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불안해하는 이유는 조금씩 겹쳐 있었다.

예컨대, 고시를 계속 준비할지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리더가 해준 말은 연에게도 도움이 됐다.


"그러면 고시에 붙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떨 것 같아? 엄청 좋겠지? 당장은 시험에 떨어지고 여태 투자한 시간이 너무 커 보이겠지만 실은 됐을 때의 행복이 훨씬 크단 말이야. 그런데 안 되는 이유만 계속 찾다 보면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어. 우리가 조금은 되는 이유를 들여다봐도 괜찮지 않을까?"


자기소개서가 도저히 안 써지는 경험도 연을 포함한 3명이 겪은 고민거리였는데 리더의 질문으로 세 사람 모두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잘 써진 자기소개서도 있었어? 그건 왜 잘 써진 것 같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일 때."


"안 써진 건 안 하고 싶어서였네. 안 하고 싶은 거면 안 쓰면 되지. 억지로 자기소개서를 썼어. 붙었어. 붙어도 안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왜 굳이 안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들여?"


연은 지금 다른 인턴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게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스스로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필요한 외면이었다니!




반신반의하며 집단 상담을 신청하고 큰 기대가 없었던 연. 신청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이 가장 좋았던 점은 자신이 털어놓는 이야기가 절대 가벼운 반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슷한 고민을 오래 해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연의 상황에 대한 판단보다는 공감이 앞섰다. 집단 상담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보편화와 객관화의 과정도 연에게는 긴요했다.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들뜬 채 하루를 마무리한 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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