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Apr 28. 2024

'된다'의 마법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들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것이다. 요술 램프를 문지르면 ‘뿅’ 하고 지니가 나타나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모습 말이다. 집도, 돈도, 건강도, 멋진 연인도 순식간에 만들어내고선 놀라움과 행복에 겨워하는 자신의 모습.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첨되지 않은 복권을 손에 쥐고 인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며 푸념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대신,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장 잔고는 자꾸만 거덜 나고 시험 점수는 형편없고 되는 일도 없는 이 상황에서, 대체 뭘 하면 좋을까?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이 저기 멀리 우주까지 닿아. 그럼 우주는 우리가 말한 게 실제로 일어나도록 지구에 다시 신호를 보내지. 그러니까 '된다, 된다' 하면 진짜 되고, '안된다, 안된다' 하면 진짜 안 되는 거야. '못하겠다'라고 말하면 실패하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성공해. 그러니까 결국은 다들 말하는 대로 되는 거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2016년 초 나는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긴 수험생활을 견디기 위해서는 정신적 안정제가 필요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 중학교 때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합격하고 싶다면, 당연히 합격한다고 말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나는 '된다', '합격한다', '나는 될 놈이다'라는 말을 입에 붙였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생겨 오만 일에 '된다'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괜찮아, 난 될 놈이니까!', 깜빡하고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마셔 배탈이 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난 잘 될 거니까!'라며 최면에 걸린 사람 마냥 모든 일에 '된다'를 외쳤다. 


 그렇게 된다 된다 주문을 외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친구와 준비했던 대만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그런데 여행 시작부터 일이 터졌다. 항공편이 연착된 것이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무려 13시간 넘게 연착되는 바람에 우린 첫날 숙소비도 날리고 졸지에 공항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쉽게 좌절하고 불평할 우리가 아니었다. 내 친구도 나의 끝없는 '된다' 염불에 스며들어 영문도 모른 채 모든 일에 '된다' 타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비행기 연착쯤은 가벼운 시트콤 에피소드 정도로 여겼다. "괜찮아. 우린 될 놈들이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항공사를 향한 다른 승객들의 원성을 들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던 중, 갑자기 항공사에서 숙소를 제공해 준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거 봐. 진짜 되네? 역시 우린 될 놈들이었어!" 사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대체 숙소 제공이 '된다 염불'의 결과로 여겨졌다. 누가 보면 로또라도 당첨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기뻤고, 심지어 숙소는 대형 호텔이었다. 대만 저가 항공사였기에 숙소의 퀄리티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 보니 세상에, 가난한 대학생들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방이었다. 게다가 방 안에는 맥주와 주전부리가 있었고 우리는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며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러다 프런트에서 전화가 와서 맥주와 간식을 뜯으면 추가 금액이 청구된다고 말해주어 김이 샜지만, "카메라로 맥주를 찍기만 하고 안 뜯었잖아. 뜯었어 봐, 돈 내야 했을 텐데! 역시 우린 될 놈이라니까. 미쳤다 미쳤어."라며 이 또한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조식까지 제공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역시... 우린...!" 조식이 제공되는 레스토랑은 천장이 아주 높았고 계란 프라이 하나를 여섯 가지 방식으로 요리해 주는 곳이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거하게 마치고 주변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다시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갔는데 새로이 들려온 소식. 비행기가 또 연착되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연착은 쉽게 웃으며 넘길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입꼬리에 모래주머니라도 단 듯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애써 "괜찮아. 우린 될 놈들이잖아?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라며 서로를 달랬다. 


 우리는 2일로 극히 짧아진 여행기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방법을 찾다 결국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일반 국제전화는 너무 비싸서 국제전화 어플을 설치해 힘들게 대만 현지 항공사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우리 여행기간이 줄어들었으니 돌아오는 비행기를 미뤄달라."는 얘기를 영어로 전했다. 몇 번의 말이 오가고, 소통의 오류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수화기 너머 직원은 마침내 '미안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3일 미뤄주겠다. 그것도 공짜로!'라는 답을 주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우린 될 놈이야! 안 그래도 3박 4일은 좀 짧았는데, 6박 7일이라니 오히려 잘됐어! “ 


 그리고는 숙소를 추가로 예약하기 위해 호텔 사이트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에 가고 싶어 했지만 방이 없어서 예약 못 했던 숙소를, 늘어난 여행기간 동안에는 예약 가능한 것이 아닌가? 솔직히 우스갯소리로 '된다'라고 말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 '된다 된다' 말한다고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좋은 호텔에 묵고, 조식도 먹고, 공짜로 비행기를 미루고, 가고 싶었던 숙소를 예약할 수 있게 된다고? 선생님, 선생님 말씀이 정말 사실이었군요. 


 우리는 '된다'의 마법을 경험한 이후 전보다 더욱 열심히 '우린 될 놈이다'를 부르짖었다. 여행지에서 하늘로 날리는 풍등에도 '될 놈 2명! 임용 한방, 취업 한방'이라고 썼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나는 그 해 내내 '된다'를 외쳤다. 그 결과 '장학금, 당연히 받겠지!'라고 말하고 장렬하게 탈락했지만 기존에 없던 장학금이 새로 생겨 훨씬 큰돈을 받았고, 임용고시도 한 번에 합격했다. 친구는 취업에 성공했다. 왜? 우리는 될 놈이니까. 어차피 될 거였으니까. 


 '된다'라는 말은 아주 쉬운 마법 주문이다. 말 한마디로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생기고, 결국엔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그 여행으로부터 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작은 일에도 잘 흔들리는 나에게 다시 한번 '된다'의 마법을 걸어본다. 된다, 당연히 된다, 어차피 잘 된다. 난 될 놈이니까! 당장 안 이루어지면 뭐 어떤가? 요술 램프도 없이 당첨 안 된 복권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지금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어차피 잘 될 건데 뭐! 그러니 지금부터 '된다'를 외쳐보자.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요래도 '된다'. 믿거나 말거나.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모르는 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