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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Mar 04. 2021

'숫자'로 하는 일에서 '글'로 하는 일로

야매 회계인의 잡지사 정착기

2021.1.25의 일기 - 이직 성공 DAY1


태초에 문과로 태어난 나는 재수때 공부를 안하고 연애를 해버린 탓에 발언권을 빼앗긴채 경영학과에 갔다. 수능과 함께 인생에서 퇴장할 줄 알았던 숫자로 된 학문이 전공이란 이름으로 한층 더 강력해져 삶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애증의 그 학문으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너무나 놀랍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글로 밥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언제나 교과서 밑에는 책이 있었다. 나의 유년은 나의 학창시절은 늘 책이 그리고 영화가 전부였다. 돌고돌아 드디어 나의 원래 전공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모니터에서 숫자가 사라졌다. 할렐루야 아멘! 



2021.1.26의 일기 - 이직 성공 DAY2

사람은 간사하다. 아침9시 반, 새로 시작한 일의 실무자와의 통화에서 인터뷰 때 오너에게 들었던 이야기보다 적은 일이 맡겨진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놀라 급하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그 결과,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생활비에서 빵꾸가 난다는 결론이 나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근1년을 거의 백수로 살아온 주제에 예상보다 적은 업무와 그만큼 응당 적어진 급여가 예산으로 잡히자 갑자기 큰 손해라도 난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다! 초짜한테는 처음부터 많은 일이 오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나온 이야기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우선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최소한의 기간이 있을 거라는 그 당연한 이치를 왜 놓쳤을까? 처음으로 원하는 분야의 일을 하게 되어 그저 마냥 들뜬거지. 갑자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와 주어질 급여의 틈이 메꿔내야만 하는 블랙홀이 되어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여러 군데 레주메를 넣고 점심에 인터뷰도 하나보고 또 레주메를 넣고 밥도 안 먹고 심지어 저녁에는 전에 같이 일하던 회계사님께 안부연락도 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3분도 안 되어 잘 지내신다며 연락 반갑다며 혹시 이번 시즌 일 할 수 있냐는 답장이 왔다(미국에서 회계는 1-4월이 시즌이다).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바로 어제였다. 드디어 모니터에서 숫자가 사라져서 행복하다고 글을 쓴 게. 


아무런 답장도 보내지 못하고 하던 빨래를 끝마쳤다. 미친듯이 집을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침대 밑까지 다 닦았다. 깨끗해진 방에 앉아 그냥 솔직하게 지금의 내 상황을 전해드렸다. ‘괜찮아요 나중에 여러가지 정해지고 나면 연락해요’ 라는 답장이 왔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사하고 약해 빠진 날 지탱해주어 왔구나. 정말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구나. 쫓기는 사람처럼 발발거린 하루 끝에 반짝이는 방 안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기회에도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었던 기회에도,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마음을 알아주신 분들에게도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지 않는지 알면서도 그나마 잘 하지도 못하는 나를 써 주셨던 분들께도 한 분 한 분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만나게 해 주신 걸음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한 하루다. 아무래도 좀 더 울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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