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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Mar 06. 2021

나도 모르는 '나'

알코올 그 마법의 물약

나는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맥주 이상 도수의 알코올이 들어가면 필름이 나가는 탓이다.

다행히도 기억을 못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진 않더라.

놀랄만한 '귀소본능'+ 정한 인생의 철칙은 지키는 연단된 '윤리 의식'이 - 윤리의식이다, 준법정신이 아니다 - 그나마 나의 존엄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최후방 수비대'가 되어 감사하게도 여즉 사명을 다해주었다.



나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다.

물론 모든 살아있는 것엔 감정이 있지만, 나의 감정은 꽤나 진폭과 파장이 변화무쌍한 그래프를 그려낸다.

좋지 않은 체력에 에너지 가득한 감정 리듬이라니.

꽤 오랜시간 나와 살기 어려웠던 이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범인은 늘 이 안에 있는 법.


내 안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유독 어색한 상황에 대해 내성이 없는 나는, 심지어 명절의 TV 속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나와 선보이는 불안한 장기자랑 앞에서도 처절히 무너져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곤 하는데 - 그 '퍼포머(Performer)'가 나와 가까운 사람일 수록 또한 '퍼포먼스(Performence)'의 강도에 비례하여 고개의 각도는 더욱 하강한다 -, 이러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쉬이 날 부끄러움이 많은 내성적인 아이라 판단한다.  



옳으신 판단이다.

난 부끄러움이 많은 내성적인 사람이다.

아직 편해지지 않은 관계에서, 그리고 주로 취하지 않았을 때.



알코올이 들어오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예컨대, 마음 한켠에는 늘 있지만 안부를 묻지 않은지 오래된 관계들에 절절한 사랑문자/전화를 한다던가 - 지나온 남자에는 연락하지 않는다, 연단된 윤리의식의 마지노선의 좋은 예 중 하나이다 cf. 연단되었다는 표현에서 많은 걸 유추해 낼 수 있으리라 - 다음 날 방안에 각종 경품이 놓여있다거나,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새로운 나를 단톡방 속 동영상에서 만나보게 된다거나 하는..



가장 최근의 예로는, 한달 전 이직한 잡지사에 에디터로 참가한 첫 촬영이 길어지자 스테이지 뒤에서 와인을 홀짝거렸는데, - 맥주를 간절히 찾았으나 이미 촬영은 시작되었고 맥주 냉장고는 스테이지 뒷편 냉장고에 위치했었다 -, 하하하 예외없이 집엔 잘 돌아왔으나 오랜만에 필름이 끊겼다. 엄빠가 선물로 보내온 목걸이도 끊겨 방안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일 '에디터' 겸 '호스트'가 되어 촬영장에 간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일까?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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