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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Mar 10. 2021

미국에 온 지 5년차 향수병이 1도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사실 많이 울어. 네 앞에서 안 울 뿐.

미국에 온 지 5년차 향수병이 1도 없다.

 

'그렇게 미국이 좋냐?'라고 물어온다면 '남의 나라 사는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을 니가 뭘알어 좋긴 뭐가좋냐?' 멱살을 잡고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거기 왜 살아?' 라고 되묻는다면, '그러게 별게 다 궁금한 너 있는 거기가 싫어서'라 대답할 수 밖에.  


엄마는 내가 이렇게 아예 미국에 눌러 살아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어제 저녁 별일없이 그냥 하는 안부전화에서 '너가 너무 멀리가버렸어'하며 새어나오는 진심에 울컥한건,

글쎄 '나라고 이렇게 멀리 오고싶지 않았어'하는 마음에서였다.


진짜다.

나도 내가 이렇게 멀리 올 줄 몰랐다.

올 생각도 꿈도 태초엔 없었으니까.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조금만 숨 쉴만 했다면, 집이 좀만 더 편했다면.


나로 살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맡겨둔 것처럼 당당히도 거는 암묵적인 '기대'일랑 가볍게 무시하고, 모두가 기를 쓰고 마땅히 해낸다는 그 수많은 '역할'따윈 사뿐히 즈려밟고, 나로 살고 싶었다.


망해도 내 인생. 잘 되도 내 인생.

그냥 쫌 내가 내 하고 싶은거 하면서 내맘대로 살아 보겠다는데,

누구의 '덕'도 보지 않고 '탓'도 하지 않고 그냥 좀 이렇게도 살아보겠다는데, 왜들 그렇게 말들이 많은지. 어휴 귀아파.


특별할거 하나 없는 사이는 특별하지 않은대로 세상에나 '너 걱정되서 하는 말이라고, 너 잘되라고 하는말이라고'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아무말을 아무렇게나 열심히들 그렇게 지껄여대고.

심지어 처음봐도 지껄여대고. TV에서도 각종 매체에서도 지껄여대고.  


특별한 사이에서는 특별하니까 '일단 나를 온전히 이해시키고 내 인정을 어디한번 얻어내봐' 하는 태도로 에너지를 빨아가 버리니. (아니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냥...내 번호지워..그냥 너를 치우자..)  


이건 뭐 시작도 하기 전에 인간이 웬수다 웬수.

어휴 시끄러워.

그냥 다들 자기 인생 사시면 안될까요?

저한테 제발 신경 좀 꺼주세요.

망해도 그쪽 탓 안합니다.


그거보다 우선 당신 의견 물어본 적이 없어요.

왜 혼자 유난이세요, 혹시..할일이 참 없으신가봐요?



유년 시절이 상처로 남는 이유는 하나인 것 같다.

내가 훨씬 더 나를 잘 아는데.

부모는 자꾸 자기 기준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란다.

뭐가 자꾸.

또 너는 이게 맞단다.

아니 또 뭐가?



'저기요. 죄송한데 제가 본인이에요. 증인도 아니고 목격자도 아니구요. 제가 본인이에요.'



그런데 아직 작다.

더럽고 치사해도 문을 박차고 나갈 힘도 돈 벌 능력도 없다.


내 인생인데 왜 당신의 의견이 더 중요한지요.

제 생각엔 저에 대해서 참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제가 왜 당신을 설득해야만 하는지요.


심지어는 알고 싶은 제 모습과 모르고 싶은 제 모습의 기준 또한 가지고 계신 거 같은데, 그 부족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그 근거 없는 확신은 어디서 나오시는 건가요?


예?

이미 인정받은 외부인의 '인정'이 있어야 마음 편히 먹고 제 선택을 '인정'하시겠다고요?


예?

제 말은 안들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말은 참으로 잘 들리시나 봅니다.

그렇다면 제가 무슨말을 합니까, 애초에 제 말을 들으신 의향은 진정 있으신지요.


물론 좋아하는 일로 밥 잘 못 먹고 살 수도 있지요.

제가 그 정도도 모르는 멍청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꾸로 하나 물어봅시다.


싫어하는 일로는 밥 잘 먹고 살 수 있습니까?

제가 볼 땐 그 확률이 더 낮아보이는데요?



망해도 내 인생.

잘되도 내 인생.

탓하거나 비빌 생각 없는데 그냥 좀 두시면 안될까요?


이건 뭐 본격적으로 뭐 해보기도 전에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기빨려서야..

안그래도 체력도 안좋은데 너무 힘들다 힘들어.





그래서 떠나왔다.

편했으면 거기 살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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