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onin Mar 03. 2021

상처의 공유, 그 진실성

(feat. 인생드라마 '네멋대로 해라'로 인해 심겨져버린 멍청한사랑관)

인생드라마가 무엇이냐 만일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 이제는 무슨 반사조건처럼 나는 ‘네 멋대로 해라’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모르겠다’ 할 수 밖에. 정말 모르겠다. 2002년 나 초등학교 5학년때 나온 그 드라마가 도무지 내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전경은 확실히 멍청한 여자이다. 만일 내 주변 누군가가 복수와 경이 같은 관계의 경이 역할에 빠져 있다면, 그 이를 아끼는 만큼의 강도로 빠져나오라 목청을 높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의 사랑관은 전경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왜 그 멍청한 여자를 동경하는가 왜 또 이해하는가. 세상이 쓰레기라고 일컫는 복수에게 아쉬울거 하나 없는 경이가 다가가 “자기 안에 쓰레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는 내 쓰레기도보고 복수씨 쓰레기도 볼래요. 나는 비위가 강해서 토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하던 장면을 나는 왜 잊지 못하는가.

이 장면이 문득 떠오르면 두번째 인생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9화에 나오는 나레이션이 자연히 재생된다. 이는 "어떤 관계의 한계를 넘어야 할 때 반드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유해야 하는 건가 그냥 어떤 아픔은 묻어두고 깊은 관계를 이어갈 순 정말 없는 걸까?” 에 대한 물음이다.

어떤 이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느낄 때,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명명하기 어려운 부동산 계약이 되어 서로의 공유된 비밀, 그 여집합적 삶의 영토에까지 어느새 암묵적인 동의가 되어버린듯 이젠 쫓아 낼 수 없는 세입자처럼 그저 들어와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형식이든 한번 비밀을 공유한 사이는 무를 수 없는 관계처럼 그 궤도 그 만큼에서 멈춰 서거나 오직 진전만 있을 뿐, 여튼 후퇴선언을 하기에는 어떠한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상태에 놓여 지는 것이다.

결국 질문의 요는 이것이다. 어떤 끌림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쓰레기를 보고 싶게 되며, 끝끝내 그것을 보며 같은 값만큼을 털어 놓으며, 그 알 수 없는 계약으로 인해 왜 우린 서로를 놓기 어렵게 되는 것인가?


골이 아프다고 이것을 단순히 '인연'이라는 단어로 퉁치기엔 따지길 좋아하는 예민한 성정으로 태어난 나는 그저 알고 싶은 것이다. 허나 능력부족이다. 구백살 정도엔 답을 찾을 수 있길. 오늘도 숙제로 남겨본다.

아픔은 공유했지만 무르고 싶은 관계와 아픔에 대한 공유없이 깊어지고 싶은 관계 사이에 길을 잃은 어느날의 일기.

p.s) 비밀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도 결국엔 제각각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지나간 과거사의 일부인데 상대에게는 간격을 좁히는 지름길을 놓아주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때도 있으며, 나의 현재를 관통하는 핵심을 놓아준 것이지만 이를 바로 읽어내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이 관계의 이름이 '나의 환상' 이었음을 깨닫기도 하니까. 그러니 결론은 누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주는 상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찾고있는 '연'이 라는 것도 이를 지칭하겠지. 당신이 진짜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우리의 만남은 정녕 현생에 이루어질 지가 미지수이기에 나는 외로운 것이겠지. 그러니 길어진 허락된 시간에 감사하며 그저 기대를 걸어 볼 수 밖에.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불행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