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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정신과에서 지능검사를 하다

기분은 왜 꿀꿀해진 걸까?

by 팬지

언어 지연인 우리 첫째 아이가 클리닉을 다닌 지도 1년이 넘었다. 작년에 잡아준 Ergo therapy(작업치료) 검사를 지난번에 치뤘고, 아무래도 에르고 테라피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테스트하는 중에 연필 잡고 선을 따라 그리는 것도 서툴렀고 선 따라 오리는 가위질도 어려워했다. 공을 목표지점에 던져서 넣지 못했다. 한 발로 균형잡고 서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대근육 발달, 소근육 발달이 약간 뒤쳐졌다는 판단 하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아직 프루포더룽 센터에서는 치료 스케줄이 정해졌다는 연락이 없다. 거기서 연락이 와야 에르고 테라피, 즉 작업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그 검사날이 지나 Phycology Test 날이 찾아왔다. 정확히 무슨 검사를 하는지 안내를 받지 못했다. 시간 맞춰 도착했더니 별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뵙는 선생님인데 정확한 직책은 모르겠지만 이 테스트 전문으로 하시는 선생님인 듯 싶었다. 나에게 아이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질문했고, 설문지도 작성해야 했다.

얘기 중에 아이가 유독 숫자와 알파벳을 좋아하고 심지어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가 너무 똑똑해서 다른 아이들과 잘 못 어울린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했다. 지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도 받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늘 하는 검사가 지능 검사예요"

아, 정말 이 병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확히 안내를 안 해 준다. 아니면 내가 언어장벽이 있어서 그런건가... 일처리가 원활하지 않거나 뭔가 소통이 안 되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독일어를 못해서 그런가?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친절한 곳은 말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원활하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 있다. 그런 이유로 집 바로 앞에 소아과를 두고도 차를 타고 다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이런 게 도시에 사는 이점인 것 같다. 고를 수 있다는 것.

아무튼 나는 아이가 지능 검사를 하는 동안 밖에서 설문지를 작성했다. 30분 가량 진행했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줬다. 아이가 집중을 잘 못햇나 보다. 쉬는 시간 이후 또 30분 가량 지났을까? 끝났다고 해서 들어갔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질문 없냐고 물어봤다. 나는 딱히 물어보고 싶은 게 생각 나지 않았지만 집중해서 잘했냐고 물어봤는데, 중간 이후부터는 집중을 잘 못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얘기하면서 멈칫하며 뭔가를 말하려다가 아직은 자기가 더 확인할 게 있어서 7월에 부모랑만 하는 검사가 있는데, 그때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혹시 통역가가 필요한 것 같냐고 물어보길래 영어로 하면 될 것 같고 설문지도 번역기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뭔가 석연치 않아 하면서 알겠다고 했는데, 문득 이게 자폐 검사라서 좀 더 디테일하게 소통이 되어야 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 언어 장벽이 문제인가...

그렇게 검사가 마무리되고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뭔가 기분이 꿀꿀해졌다. 별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까? 테스트가 마무리되고 선생님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웃은 것이 걸리는 걸까? 자폐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설문지 문항을 작성하면서 또래들과 아직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응답하는 대목에서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7월까지 결과를 기다리기가 초조한 건가? 아니면 그저 단순히 내가 독일어를 병원에서 의사소통할 정도로 못하는 것 때문에, 혹은 영어도 그리 완벽하지는 않아서일까? 매번 느끼는 이 언어 장벽 때문인가?

다른 건 몰라도 7월 검사 이후에 자폐 스펙트럼 범주에 있다고 하면 눈물이 많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경증으로 그 범주에 있다고 해도 지능이 떨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면 감정이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방송에 나온 엄마들이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건지 살짝 이해가 되려고 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이 갑갑한 기분,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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