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엄마도 가끔씩 휴식이 필요해.
뭐라고 농담 아니지? 진짜로 휴가 갈 거야!!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하루가 어땠냐는 내 질문에,
"피곤해.... 진짜 잠 한번 푹~자고 싶어. 책도 원 없이 읽고, 해변에 누워서..."
라고 아기마냥 옹알거린다.
평소 같았으면, ' 왜 이러셔? 밤에 애들 깰 때마다 누가 애들을 돌보는데..'라고 말했겠지만, 그날 따라 남편은 유난히도 늙어보였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엄청 비싼 취미도 가졌던 에너자이저같던 남편이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정말 눈가에 주름도 자글자글한게 눈에 띄고, 다크서클에... (원래도 주름이 많기도 많았지만..) 뿔상하게 보이려고 한건지 진짜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생기가 없는게. 참 지쳐보였다.
어떤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의사란 직업은 요즘 같은 세상에 쉽지가 않다. 병원에서 끊임없이 환자도 대하는 사람이고, 요즘같이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에서 환자 다루는 것도 쉽지도 않고.. 참 그날따라 지쳐보이는 남편에게,
"그래? 그럼 혼자 휴가라도 가보지 그래?"라고 말을 꺼냈다.
잠시 침묵...
남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보며,
"왜 이래? 나 주말마다 집 비운다 그렇게 투정을 하더니..."
맞는 말이다.
지난 3년 동안 남편은 정말 자신을 혁신적으로 업로드시키느라 1년 내내 세미나, 강좌, 교육으로 주말에 집에 있을 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건 휴가가 아니니까...
" 그냥 놀다 오라고, 푸~~~~ 욱 쉬고 싶다며? 원 없이 놀다 와"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내 남편, 점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스멀스멀... 참...그렇게 좋니?
"농담 아니지? 나 진짜 여행 갈 거야!! 진짜로!!"
"그래, 가~누가 뭐라니? 잘 놀다 와. 일주일 정도로"
내 마음이 바뀔까 남편은 황급히 여행사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어린 아이처럼 예약한 티켓을 나에게 자랑을 한다. 그렇게 이 남자는 비행기를 타고 훌~~~ 쩍 떠났다.
뭐, 하도 주말에 자주 없는 아빠여서 아이들은 별로 신경을 안썼다. 아빠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편히 쉬라고, 화상전화는 하루에 한 번만 했다.
시차도 있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직전이였기 때문에 난 너무나~~~ 아이 둘과 바빴다. 쿠키도 굽고, 트리도 장식하고, 선물들도 준비하느라..
일주일 뒤 기차역에 남편을 픽업하러 아이 둘과 기다리고 있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오는 기차에서 내리는 구릿빛으로 그을리고 환하게, 그것도 엄청 환하게 웃으며 오는 남자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와 같은 미소를 머금고 그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으로 웃으며 우리에게 달려오는 남자, 몇 년 동안 잊고 지냈던 내 남편이었다.
마중 나온 우리를 부둥켜안으며 키스세례를 하며, 조잘조잘 아이처럼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바로 슈퍼에 가 그날 저녁 재료를 사서 룰루랄라 하며 요리를 하는데!!!(왜 저러지...? 안 하던 짓을..) 저녁을 먹는 내내 아이들과 나에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를 하며 아이처럼 까르르 웃고, (특히나 밤에 한 거품 칵테일파티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참.. 진짜 잘 놀았구나...) 일출을 보며 해변가를 조깅한 것, 그리고 지도를 보며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디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거 하며.. 참 오랜만에 보는 여유 있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여행이 어땠냐는 내 질문에,
" 처음에 기차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너무 죄책감이 들었는데, 비행기에 타는 순간 정말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어. 일주일이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정말 일주일을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려고 했어."라고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덧 붙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남편은 나에게도 휴가를 가라는 제안을 했다. 애들은 본인이 보겠다며...!!
지난 5년간 애 을 두 시간 이상 본 적도 없는 자가, 그리고 특히나 둘째 딸은 밤에 일어나 엄마가 없으면 거의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인데, 이 겁 없는 이가 나에게 휴가를 준다.
"뭬라고? 나 지금 이 말 녹음해 둘 거야. 그리고 오늘 바로 비행기표 예약할 거야!!"
"뭔 비행기표?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부산, 내 가족 보러 갈 거야!"
"그게 휴가야?"
"응, 부모님이랑, 언니랑 동생이랑 시간 보내고 싶어"
그렇다. 난 친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그 날 바로 예약을 했다.
지난 10년간 난 항상 친정으로 가는 동반자들이 있었다. 남편이었던, 아이들이었던, 항상 통역을 하고, 애들 기저귀에 음식에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내 가족과 제대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돌아오면 항상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형제자매들에게 미안하다는 느낌밖에 없고, 눈물만 핑 돌았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왜 아이들을 때 놓고 오느냐, 가족이 함께 해야지, 애들은 누가 보고, 우리 사위 힘들어서, 서 어쩌누... 등 온갖 설교를 다 하셨다.
아이들은 유치원 (만 3세에서 만 6세)에서 아침 7시부터 5시까지 등록이 되어있고, 픽업 시간은 점심시간 이후부터 자유롭다. 남편 근무 시간이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이고, 병원에는 아내가 휴가를 가니 그 주는 일찍 퇴근을 하겠다고 동료들에게 미리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매일 오후 4시부터 계획표가 있는데, 난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체조 수업, 수영, 음악, 체스까지.. 독일은 픽업을 모두 부모들이 해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스트레스받을 남편이 눈에 보였다.
그렇지만, 사서 걱정은 그만하고, 그래 비행기표를 끊어야지. 아니면 영원히 난 혼자 여행 못 간다는 생각에 클릭!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출력을 하고는 그냥 멍하니 그렇게 한 5분은 바라보았던 같다.
출산 전에는 업무가 유럽 자동차 고객 매니지먼트여서 스페인, 체코 등등 비행기는 수십 번은 탄 것 같은데.. 첫 비행기를 타는 거 마냥 설레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일주일 동안 한국에 간다고 설명을 하니 첫째는 " 잘 다녀와~ 마미~"라고 말을 하고 둘째는 울고불고 바닥에 드러눕고 난리가 나는 거였다.
유치원에도 담당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 (남자분)께 이 기간 동안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올 것이며, 아이들에게 주의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이웃분들께도 남편이 수술 때문에 오지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이들을 픽업해 달라고 말씀도 드리고, 일주일치 장을 봐 두고... 그렇게 준비를 끝냈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는 새벽 5시 50분에 출발을 했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렸고, 아이들과 남편은 자고 있었다.
여행가방에는 평소 입지 못했던 하얀 스웨터 3장, 청바지 2벌, 운동화 한벌 그걸로 끝이었다. 나머지는 선물들로 채우고, 자 출발한다. (아웅, 설레~~)
비가 언제 내렸냐 싶게 기차에 올라타자 일출이 시작한다. 커피를 마시며 모젤강을 지나는 모습을 감상하는데, 숨이 갑자기 확~트이는데 (아 진짜로 확~트였다.) 기차로 지나가는 풍경이 다 그림 같았다. 아이들 화장실가는 것 신경쓰지 않고, 어디 올라타고 메달리는 거 주의 시키지 않고, 그냥 바깥 풍경만 바라보는것도 좋았다.
아이들과 남편은 그 순간 잊게 되었다. (미안~)
비행기 연착으로 장장 24시간에 거쳐 늦게 공항에 도착한 딸을 기다리고 계시는 내 부모님 뵙는 순간 눈물이 핑~ 하고 돌며 드는 생각은
'아, 우리 엄마 아빠다... '
난 지난 수년간 아내로, 아이 둘의 엄마로 지내온 시간들이 머릿속에 순식간에 사라지고, 난 다시 이 두 분의 딸로 이 곳에 도착했다.
아버진, 얼굴 보자 하시는 말씀이,
"야, 네 엄마가 다른 여자 붙잡고 너라고 그러더라. 딸내미 얼굴도 이제는 못 알아보나 봐."
어머니는,
"아이고, 오는데 무슨 스무 시간이 넘게 걸려~~~ 뭐 먹고 싶어? "
우리 부모님 식 인사, 나보고 뭐 먹고 싶냐고 물으신다.
오랫동안 잊었던 내가 먹고 싶던 것, 내가 가고 싶던 곳, 내 약속들.. 다시 한국에 나로 돌아왔다.
기차로 4시간, 비행기로 상해를 거쳐 부산까지 오는데 장장 24시간이 걸렸다. (오는 내내 참, 아이들 데리고 오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이제 내가 가진 시간은 다음 출국까지 5일...
누군가는 그랬다. 뭔 고생을 해서 5일 보내자고 돈 쓰고, 시간 쓰냐고. 그런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 아닌가? 난 부모님께 그랬다. 여행도 필요 없고, 쇼핑도 필요 없고, 그냥 부모님과 산책도 하고, 장도 보고, 언니네도 보고, 제일 친한 친구들도 만나고... 그게 다라고.
정말로 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첫 조카의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서프라이즈~~ 이모 왔지요~~~ 따단!"이라며 놀라게 해주고, 작은 딸은 너무 말을 많이 시켜서 피곤하시다는 아버지를 팔짱을 끼고 산책을 가고, 작은 것에도 스트레스받으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좋아하시는 쇼핑몰 투어를 하고... 멀리서 카페를 열어 열심히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도 몰래 방문도 하고, 그래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왔다는 것만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모여졌고 (독일에서 현아가 왔는데!!! 당연히~) 나를 위해서 친척들이 다시 모이고, 내가 보고 싶던 사람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하고 나는 5일 뒤 피곤하지만 너무도 행복하게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나의 여행가방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들로 가득 채워서 (뽀로로 자동차, 단소, 자동 연필 깎기, 한국식 시끄러운 장난감들) , 우리 남편은 홍삼즙~~!!
집으로 돌아가 오는 기차에서 나는 내내 집은 난장판이겠지, 아이들은 어떨까? 며칠 전 통화를 했을 때 엠마는 울기만 했었는데..(남편은 나에게 아이들 계속 운다고 화상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ㄴ-)
집 대문을 여는 순간, 난 정말 너무나 놀랐다.
너무나~~~ 너무나~ 집이 깨끗한 것이었다.
집에 키우는 식물들이 말라죽은 것 외에는 잘 정리된 빨래에, 모든 게 정말로 깨끗했다.
'오호~장난 아닌데? 좀, 치웠나 본데~'
라고 중얼거리며 아이들 픽업을 갔다. 담당 선생님들과 원장 선생님은 휴가가 어떠셨냐~머리 스타일이 바뀌셨다~라며 아이들 너무 착하게 잘 있었다고 말을 해주셨다.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에 있는 체육관에 데리러 가는데 둘 다 "엄마 아아~~"라고 달려오는데 그 행복감이란!!
이 이쁜 내 강아지들~~ 못 본 사이 더 이뻐졌네.
남편에게 어떻게 이렇게 집이 깨끗하고 아이들도 단정하냐고 하니, 어깨를 으쓱대며 그는 "아, 시스템이 필요한 거야. 계획도 미리 해놓고~"라며 대답을 한다. 피식... 아구 구구
며칠 후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엄마는 (남편 예전 동료이기도 한) 나에게 오후 3시 반이면 내 남편은 헐떡 대며 유치원에 와 아이들 픽업을 해서 아이들 운동에 음악교실에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너무 헐래 벌떡이라 긴 대화도 못 나눴다고... 풋. 장하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공백을 느꼈고, 그 공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의 개인 휴가로 인해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 행복한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행복도 중요하다는 것도 느끼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 없이 행동만 반복이 되면 불만족스러워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빠와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이다. 우리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내 미래는 어떻게 계획할 것이며, 지금 나의 모습이 어떤지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말한다.
지금,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