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어블릭 Sep 12. 2019

웰컴 파트타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엄마,

"우리 회사에서 일해보실래요?"

라고 누군가가 제안을 해왔다.

프리랜서로 일한 지 이제 일 년 가까이..

1년 전 나는 월급도 잘 주고, 누구나가 취업하고 싶어 하는  대기업을 ,, 육아+남편의 업무상,, 누가 들으면 픽, 하고 웃을 이유로 사직서를 내고 씁쓸하게 이 작은 도시로 이사를 오고 프리랜서로 전업하게 되었다.


,, 뭐 하러 그 어렵게 외국서 공부를 하고, 뭐하러 그 고생을 하고 커리어 쌓는다고 애도 늦게 나았는데,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가느냐,, 

친정엄마의 걱정 섞인 말은 내 가슴에 못을 박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가슴에 박혀있다. 물론 먼 한국에서 내가 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더 찢어질 것이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할 경우 회사가 나에게 제안한 것은 6개월간의 풀타임 업무였다. 그리고 출장이 잦았던 예전의 해외바이어 케어는 내 몫이고 말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이었는데... 왜 아이가 생기면서 나는 그 일을 꺼려하게 된 것일까? (훌쩍....) 육아휴직기간 동안 만약을 대비해서 나는 관심이 있었던 인사과정 전문가 과정을 준비를 했고, 합격을 했고, 그렇게 틈틈이 인턴도 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혼자 이 바닥에 떨어진 나는 참 허무했다. 

개인 의료보험도, 연금도, 직업 법률보험, 소득세 등등 기본적으로 나가야 할 금액은 정말로 벅찼다.

취업과 직업교육 문의는 정말 많았지만 단물만 쏙쏙, 정보만 알아내고 다른 곳을 통해 취업을 결정하는 이들은 아주 자주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에게 이렇게 제의한 곳은 소기업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아주 작은 도시이다. 큰 회사도 없고,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이다. 나의 커리어 컨설팅을 도와주는 나의 파트너는 나에게 내 이력의 오점이 될 것이라고 말을 했다. 큰 물에서 놀던 물고기가 작은 웅덩이에 고이는 꼴이 된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쌓은 경력인데 금전적인 문제로 그 작은 곳에서 일할 거야?"라고... 그렇게 나도 자존심을 세우면서 버티려고 했었지만 기본적으로 나가는 금전은 내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 회사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하루 네 시간을 근무시간을 제공했고, 3대 보험, 그리고 원하면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해도 된다고 제안을 했다. 아이가 방학일 경우 일을 당겨서 해도 되며, 방학기간 동안 휴가를 가져도 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하였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차라리 아이를 돌봄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아예 다른 중소기업이나 한 시간 떨어져 있는 룩셈부르크의 인사 경력자로 취업을 추천을 하였다. 정말 매력적이다. 다시 큰 물에서 놀고, 유명인들을 만나고, 높은 위치에 선다는 것 말이다. 그 맛은 정말 달콤하다. 

그런데... 나의 약점이자 강점은 내가 바로 ,, 엄마,, 라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랑은 언제 이야기 나누지? 

독일도 마찬가지로 오전반, 종일반 수업이 있다. 이제 갓 입학한 아이를 하루 종일 타인의 손에 맡겨둔다는 것 자체가 난 두려웠다. 이제 갓 작은 사회로 발걸음을 옮긴 아이를 8시간이 넘는 시간을 내 눈밖에 둔다는 것을 난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직장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듯이...

우리의 아이들도 하원을 하고, 하교를 한다. 

딩동하고 초인종이 울리면 우리 작은 아이가 있다. 밝게 웃으면서 "엄마 나왔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엄지를 척 올리며 "최고"라고 말을 한다. 


신나게 오전 수업을 설명을 하고 무엇을 했는지, 나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제서야 나는 그 아이의 작은 세계를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손으로 깨작깨작 숙제를 하고, 숙제를 끝내고 뿌듯하게 자랑하는 모습,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 나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동생을 데리러 가는 것, 다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내 경력이 중요하다고, 그래 돈을 더 많이 벌겠다고, 이 작은 아이를 그 긴 시간 동안 때 놓았을 때, 나도 지쳐서 퇴근을 하고, 아이도 하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일과를 공유할 시간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불안한 마음은 항상 있다. 

한국에서야 어디서든지 밥이야 못 먹고 살겠냐만은 타국에서는 더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울게, 엄마


" 엄마가 한 일 년 동안 아이들을 봐줄까? "

라고 친정어머니께서 제안을 하신다. 며칠 전 언니와 파트타임 이야기를 나는 것을 전해 들으셨나 보다. 

"파트타임"이라는 말이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여쭤보신다. 

계약서와 수입 관련 서류, 세무자료를 챙겨주는 일을 하는 거라 하니 영 찜찜하신가 보다. 

"어떻게 공부를 했는데.."라고 말을 꺼내시면서...

그래....내가 어떻게 공부를 했는데..

우리 두사람 사이에 약간은 정적이 흐르다 엄마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엄마, 내 애들은 내가 키울래요. 그러려고 낳았잖아. " 

"모르겠다...네가 알아서 해.." 


친정어머니는 내가 밖에서 일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신다. 그리고 내가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하는 내 모습도 충분히 이해하실 거다. 그러니 더더욱 애가 타실 것이고 말이다. 자랑스런 그 작은 딸인데 말이다. 잘난 사위도 뒀지만, 그 잘난 사위덕에 시골에 박혀있는 딸 모습을 정말 애가 탈 것이다. 


가끔은 그 생각도 한다. 아이들을 두고 풀타임으로 일하는 내 모습 말이다. 

그리고 그 많던 오퍼들...내가 거절했던 것들 말이다...슬프다. 당연히, 정말로.

10년이 지나서 후회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아침에 허겁지겁 어린이집과 학교를 데려다주고, 아플까 전전긍긍하며, 출장을 가야 할까 두려워하며, 그렇지만  내가 성취한 일에 만족해하며 , 월말에 통장에 찍히는 액수에 흐뭇해하는 내 모습 말이다. 

그 모습을 그리며 내가 아이들을 낳은 것이 아니단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과 항상 동반하는 엄마 말이다. 불안할때 지탱해지고 어떤 것도 들어주는 엄마 말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지 뭐! 

나는 이 회사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며 나에게 다짐을 했다. 

이제 천천히 다시 시작한다고, 

이 작은 회사의 싸인은 나를 어느 정도 세금의 압박에서 해방을 시켜줄 것이며, 내가 원하고 그리는 내 회사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 주는 감사한 선물이라고 말이다. 


화이팅! 





 







이전 13화 이제, 그만 미안해할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