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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어블릭 Jul 22. 2019

이제, 그만 미안해할게.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친정에도, 이제 그만 미안해할래.

집에서 도대체 뭐해?

깜박깜박하던 기억력이 가끔씩 아예 셧다운이 될 때가 있다.

10분전에는 생각나던게 그 이후에는 머리속에서 십분후에 증발해버린다.

특히나 여름방학 전에는 빨래 더미에 질식한다고 말할 정도로 하루에 최소 두 번은 돌려야 하고, 아이들 관련해서 뭐, 주야장천 졸업파티, 환별식, 생일, 스포츠클럽 그릴 파티 등등 무엇인가가 끝이 없다. 과부하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초대만 받아서 되는 것도 아니라, 초대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에 아이들 깨기 전에 글도 쓰고, 일도 하고, 오전에 아이들 유치원을 보내고 오기 전 한 시간 집중적으로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정말 혼비백산할 정도로 이 마법의 시간이 슈라라 락~~~ 하고 지나간다. 이 시기에는 난 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는 대부분을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남들 눈엔 (특히나 남편 눈엔) 참 한가 해 보이 나보다. 재택근무를 하지만 난 항상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고, 옷도 가능하면 이쁜 옷을 입고 있으려고 하고..(내 기분이 훨씬 낫다. )

아침에 어수선하게 아이들 깨워서 옷 입히고 밥 먹히고 하는 전쟁은 나는 다행히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싫어 사표를 냈고, 계속 그렇게 유지하기 위해 내 시간을 가능하면 내 일에 쓰려고 한다.


그러나 나도 다른 직장인들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 내치장을 다하고, (그 이후에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이후는 애들이 붙어있다. 매의 눈으로 샤워하는 것부터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 커피를 마시고, 그날 일을 체크를 해야 한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5시경에 "짜잔~~ 나 일어났지요"하고 경우엔 정말 계획했던 것들이 10배속으로 느려진다.  애들과 함께 하다 보면 치운 것도 도루묵, 저녁에 다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빨래를 보면 참 허무하다.


하루를 다 보내고, 아이들을 재우고 부엌 정리, 빨래 정리를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나에게

"너, 오늘 하루 종일 뭐했니? "라고 한다.

난 진심으로 버럭!!! 하고 화를 내면서

"몰라서 물어!!!!!!!!!!!!!!!!!!!!!"라고 큰소리치고 싶으나...

참자. 우리 나머지 40년도 같이 살아야지.  

훗, 웃으면 쿨하게

"다리 뻗고 커피 마시면서 놀았다. 왜?"라고 말한다.


나랑도 좀, 놀아주지?

나도 저녁에 애들을 재우고 남편이랑 놀아주고 싶다. 남편은 강아지처럼 애들이 잠들고 내가 거실로 오기만을 기다린다. 참... 나랑 같이 술도 한잔하고 싶고, 내가 수고했다 어깨도 주물러줬으면 좋겠고, 내가 애교 피우면서 홍홍홍 거렸으면 좋겠나 보다.

근데 피곤하면, 애교도 피우기 싫다. 나도 내 남편이 내 옆에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고 애교 부리면 너무 웃기고 즐거운 거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오죽하겠나.... 흑.

그래서 나는 그게 미안했었다. 내가 이 계속 반복되는 집안일에 남편에게 시간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미안함의 연속이었다.

첫째에게는 둘째를 너무 텀을 적게 두고 동생을 두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모범을 보여야지~"라면 나물랐고, 둘째에게는 첫째 프로그램에 맞춰 무조건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게 미안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는 본인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었고, 본인도 운동을 하고 싶어 했으며, 자기 방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곳 삶에 바빠 한국에 있는 친정식구들도 잘 챙기지 못하는 것도 미안했으며, 친구들과의 약속도 정해놓고 아이들이 아파서, 아이들 수업 때문에 그렇게 몇 번을 미루고 미룬 것도 미안했다.


또, 그렇게 운동도 좋아하고, 그렇게 여행도 좋아하고, 그렇게 배우는 것도 좋아하는 나를 방치해 두는 게 제일 미안했다.




누구도 나에게 어구 불쌍해~ 네가 제일 힘들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일기를 쓴다.

매일매일 쓰는 일기가 아니라 가끔씩 생각이 날 때 쓰는 일기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전부다 미안하고, 잘못했고,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다 라는 이야기 들이었다.

'뭐..... 이런.. 우울하게.. 쓰...'

읽는 내가 다 무안할 정도로 자기 자책으로 가득 찬 일기였다.

아무도 나에게 미안해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했고, 누가 나에게 강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이곳에 있기로 결정했고, 내가 아이들을 낳기로 결정을 했고,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정을 했고, 내가 내 시간을 잘 못 쪼개 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이들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안해할 이유를 찾기보다 내가 잘한 일을 찾는 게 나를 위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본다...

첫째야, 나는 네가 심심하지 않게 동생을 만들어줬단다. 너는 네가 천재라 다 읽고 쓰는 줄 알지? 내가 옆에서 붙어서 읽혀서 그런 거야. 한국말 좀 열심히 공부 좀 해라.

둘째야, 여름방학 지나면 진짜로 네가 원하는 학원 다 보내줄게. 나중에 학원 안 다닐 때가 좋았다는 것을 느낄 것이야. 후후후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아, 내가 보통 직장 다녀봤어 봐라 너는 벌써 백발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얼굴에 로션도 안 바르고 다니던 니 얼굴을 탱탱하게 보습크림으로 유들유들 만들어 준 것도 나고, 애들 뒤집어지고 소리 지를 때도 거둬가는 것도 나란다.


미안함이란....

물론 이런 말을 내가 직접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해야 할 말은 엄청나게 많지만, 어쩔 때는 서로를 위해 간직하고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가 미안함을 가지고 산다. 미안함으로 말로 표현하는 이도 있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미안하게 생각할 이유는 찾으려고 하면 끝이 없다.

그 미안함을 찾기보다, 내가 지금까지 내가 행동했던 것들에 대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 것들을 찾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제 나도 그만 미안해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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