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후 사춘기도 이럴까 싶을 정도로 변하는 아이를 경험하면서 나는 그렇게도 가을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행여나 4년 동안 함께 할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시작부터 나쁜 경험을 하지 않을까?라는 특유의 "엄마들은 사서 걱정해"라는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으면서 나는 이 2주간의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독일은 초등학교가 4년 제이며, 한 담임선생님이 전 4학년을 담임한다. )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지난번 하교 때 나누었던 대화가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네요~후후"라고..
단 4시간의 수업이지만, 한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있고, 단 4시간이지만 새로운 친구, 새로운 환경, 그리고 시간에 맞춰 생활하는 습관을 단기간 동안 배우느라 아이들은 상당히 지쳐있었을 것이다.
지난번 여행 매거진에서 소개한 것처럼 우리 가족들은 가을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쥐드트롤로 여행을 떠난다. 매번 가면 식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흐지만, 강원도에 강릉과 속초만 있는것이 아니라 다양한 도시와 마을이 있는 것처럼 이 곳 역시 내 딛는 곳곳마다 그 마을만의 매력, 등산로만의 매력을 발견 할 수있다.
유럽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도 없거니와 정말 가을스러운 알록달록 가을 나무들과 푸짐하고 칼로리 높은 쥐트트롤의 음식도 맛볼 수 있고, 그리고 <장미정원 Rosengarten >을 유모차 없이 등반을 시도하는 첫 해 이기에 우리는 유난히 큰 기대를 하고 떠났다.
"유모차 없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리 한번 산 좀 타볼까나?"라는 올해의 야심차 목적으로 승합차를 빽빽이 일주일 동안의 식량과 등산용품으로 꽉꽉 채워서 우리는 그렇게 출발을 했다. 올해는 정말 원 없이 산 좀 타봅시다라며 UNO카드 게임과 아이들이 즐겨있는 동화책 한 권, 색연필, 체스만 달랑 들고 아이들 장난감 가방을 닫아 버렸다.
짐 다 싼 거야? 정말 이게 다야? 확실해?
워낙 꼼꼼한 성격인 남편은 아이들 짐을 의심스럽게 눈여겨본다. 나와 아이들 물건이 80리터 가방 안에 모두 다 들어간 것이 믿기지가 않았나 보다.
올해는 기저귀도 없고, 물수건도 없고, 아기들 용품도 없거니와, 뒤늦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알았지만 내 등산배낭과 등산재킷도 챙기지 않았기에 우리들 짐은 달랑 하나뿐이 었던 것이다.
워낙 꼼꼼한 이 남편분은 일주일 여행임에도 신발도 네켤래, 재킷도 네 개.... 짐도 엄청 많다.
양말도 종류가 엄청 다양한다. 등산양말, 조깅 양말, 방한 양말...
"뭘, 이렇게 많이 챙겨? 피난 가니?"
"혹시 모르잖아~"
"뭘 모르는데?"
"자동차가 고장 나서 1박 호텔에서 묶을 수도 있고, 아주 추울 수도 있고, 산에서 등산만 하는 게 아니라, 조깅도 할 수도 있고......"
"......"
"왜 그렇게 봐?"
"매번 아이들 짐 많다고 하면서, 인간적으로 당신 짐 보면 양심에 가책이 안 느껴지니? 사고가 나면, 입고 있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1 박하면 가지고 간 옷들이 사라지니? "
"풋~"
그렇게 올해는 약간은 덜 꽉 찬 자동차를 몰고 우리는 십 분이면 우리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믿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가을 휴가를 떠났다.
가을 시즌은 특히나 주말이나 공휴일이 있는 주는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Rechenpass, Brennerpass *는 엄청난 독일인, 오스트 리인들의 자동차들로 넘쳐난다. 운이 좋지 않으면 이 도로를 통제해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바심을 내며 누구나 설레는 "아~휴가야 설레어~모든 게 좋을 거 같아"는 기분을 가지고 출발을 했다.
언제 도착해? 왜 아직도 도착 안 해? 배고파, 쉬 마려...
첫 째아이는 참 진득하고 호기심이 많다.
자동차 여행을 할 때 첫 아이는 둘 중에 하나다.
4시간이건 5시간이건 논스톱으로 자거나, 아니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뭐, 워낙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있어 난 주로 청취를 한다.
활발한 둘째는 둘 중에 하나다.
먹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러나 이동시간이 4시간대를 넘기기 시작하면 살짝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앉아있기만 하면 본인들도 엉덩이가 아플 것이다.
나도 아픈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수백 번 그 노래를 듣고 나니 어느덧 우리가 일주일 동안 머무르게 될 농가가 보인다. 아이러니는 이 노래를 꺼도 우리는 계속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는 거다.
Rosengarten 장미정원
장미공원이란 이름은 해가 질 무렵 이 돌로미트로 된 산들이 붉은 노을에 비쳐 장미밭처럼 비친다고 하여 장미공원이라는 이름이 부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돌로미트 산들과 수십 개의 등산로, 케이블카, 중간중간에 들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장으로 노인들과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넋을 잃게 만드는 그 돌로미트 산들의 장관에 한번 방문한 이들은 매년 이곳을 찾는 다고 한다.
최근에는 E Bike 대여가 활발해져 산악자전거를 타고 등반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었다
남편과 단 둘의 여행이었다면 다른 등산로를 찾았을 것이고, 고난도를 찾았겠지만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였기에 우리는 1시간 거리가 당연히 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란 것을 예감했기에... 아주 쉬운 등산로를 선택하여 매일 그렇게 등산(등산이라기보다 산책)을 하였다. 남편은 붙지 않는 속력에 몇 번을 뒤돌아 보며 맘마미아~라는 손짓을 하며 초조해한다. 보고있는 내가 다 초조하해진다. ;;
"엄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아~ 아직도 가는 거야?"
"아, 다리 아파. 엄마 안아줘..."
"엄마, 언제 도착해?"
걷는 동안, 이 수백 번을 아이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내가 왜 이 짓을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둘째를 등에 업고 내려가는 동안 한 노부부가 와서, 나에게 말한다.
"우리 애들도 그랬어요. 우리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참 가야 하는 길이 멀죠? 어느 해부터인가 아이들이 산을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중간중간에 군것질 거리도 주고, 어르고 달래서 몇 해를 보냈는데, 이제는 훌쩍 커서 친구들과 등산을 하러 다녀요. 몇 해만 참아요. 이것만큼 좋은 취미가 어딨나요?"
맞는 말이다.
3년 전 처음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곳에 왔을 때 첫째는 내 품에 안겨서, 중간중간 잠이 들고.. 잠자는 아이를 업고 내려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 아이는 몇 시간이 되는 거리를 투덜거리지만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커버렸다.
Meran 2000에 도착해 파노라마 등산로를 완주를 하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아이는 돌로 미트 산들의 이름을 읽어보고 기억을 한다. 그리고 지도를 보며, 이곳에 왔어 라고 흐뭇해한다.
본인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와, 엄마 이것 봐! 내가 이 먼길을 걸어왔어!!"라고 뿌듯해한다.
중간중간에 지나가는 헬리콥터를 보며, 반짝이는 돌을 보며, 소들을 보며, 산장에서 먹는 카이저 슈만을 먹으며, 본인이 들고 있는 지도에 체크를 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난 방금 만난 노부부가 한 말을 다시 기억해 냈다.
아이들 취미는 부모의 못다 한 꿈?
아이들의 취미나 활동은 부모들이 가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일과를 우리가 정하고, 아이들의 취미를 찾을 수 있게 우리가 그것을 다양하게 제공을 하고 말이다.
어떤 부모들은 본인들이 어렸을 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에게 제공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부모들의 학교와 연관시켜 후에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미리 어렸을 때부터 시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것을 좋아하기를 바라며.. 시도를 한다.
나와 남편은 산악이 취미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좋아한다. 킬리만자로, 몽블랑을 올라간 내 남편도, 산악부에서 활동했던 나도, 주말마다 등산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이 우리는 산을 사랑한다.
올라가서 정상에서 내려본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그리고 하산하는 것이 등반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산이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자연의 위대함 말이다.
그 묘미를 알기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간접적으로 체험시키고 싶다. 어떨 때는 아이들의 속도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어떨 때는 아이들의 기분이 흥을 깨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는 실망할 것이다. 우리는 즐기고 있지만 아이들은 정말 그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핸드폰을 하는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을 좋아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올바른 취미", "건강한 취미"를 경험 할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음껏 투정부릴 수 있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것, 우리가 함께 그 길을 다녀왔다는 것, 그것이 우리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미정원에서 머물렀던 그 기간동안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것을 보았을까?
그리고 어떤 것을 기억하고 집으로 돌아왔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왜 집으로 돌아가야냐고 묻는다.
" 왜 집으로 가야해? 여기 있어~"
" 등산하는 거 다리 아프다며? 집으로 가면 좋지 뭐"
" 힝~ 그럼 솔방울이랑 나무가지랑 못 줍잖아. "
" 집 주의 산책로에도 많아."
" 그래도 여긴 마법의 산이잖아"
마법의 산이라..
아이들의 눈에는 이 돌로미트의 산들이 마법의 산이었나 보다. 갑자기 눈도 내리고, 비도 내리고, 햇빛도 비추고, 붉은 빛으로 물든 책에서만 보던 마법의 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