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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May 22. 2023

당신과 나는 매일 밤 별의 궤적을 읊었다

한 달간 야근하다 지쳤을 때 쓴 시

당신과 나는 매일밤 별의 궤적을 읊었다


새벽이 찾아오면 존재의 궤적을 읊었다

고통과 절망 속 고해성사

우리 모두 태초에 별이었다

당신과 나를 구성하는 원소는 별과 똑같다고


이팝꽃숭어리 쏟아지듯 당신이 웃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오긴 오냐고

당신은 뽑기를 잘못한 것 같다며

죽어가는 별에서 튕겨져 나온 원소라고 말했다

반짝이게 살아가는 법을 모르겠다고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


달빛이 기울 때 당신의 눈에서 어둑한 불안을 보았다

오래된 시소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삐그덕 흔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도 부패도 허영도 굳어졌다  

잘못 앞에 질끈 두 눈을 감아버렸다


쳇바퀴 위를 정처 없이 뛰어다니며 받았던 품삯

하나, 둘, 셋 궤짝으로 늘어나는 해바라기씨

시큼한 화학 약품 잔뜩 묻어

더 이상 먹을 수도 꽃피울 수도 없는 것들


해바라기씨가 아니라 포르말린이라고 불렸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울음을 터뜨렸다

악착같이 얻어낸 것은 진실된 거짓들, 거짓된 진실들

잡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아득바득 살았지


아침이 오기 전 먼 옛날 길잡이의 삶을 떠올렸다

그는 정답을 찾다 외로워서 죽었을 것이라고

인공위성이 있었다면 그는

덜 외로웠을까 더 외로웠을까

당신과 나는 타인의 인생을 가늠하며 껄껄거리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고해성사를 했다  


매일 밤 목격하는 별은 이미 수억 년 전 죽어버린 별

빛나지 않아도 빛나는 것들

죽어서도 남겨놓은 별의 궤적들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선

당신도 나도 한줄기 빛이려나

마지막 주문을 읊었다

죽어감으로써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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