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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May 02. 2023

이산화탄소 살인 사건

아무개의 사랑법에 대한 시

이산화탄소 살인 사건


서늘한 밤 당신과 나란히 걷다

당신 입김 새털구름처럼

하얗게 피어오를 때

나는 급하게 숨을 멈추고

당신 한 숨 들이마시네


시간과 공간 동일한 좌표 속

당신이 뱉어낸 날카로운 아밀레이스 결정들

목구멍에 박혀버려도 그냥 좋아


겹겹이 축적되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당신과 만들어낸 반복된 에너지들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아


나란히 목적지를 걸으며

당신에게 맞춰 온

보폭, 호흡, 시선, 심장박동

모든 세포를 갖다 바치네


당신이 뱉어낸 모진 말들

분노와 짜증, 원망과 증오

구름 뒤에 숨은 저릿한 천둥번개

상처 입어도 그냥 좋아

당신 모든 한 숨 들이마시네


메말라가는 나날

친구가 내게 말했지

이산화탄소 중독은 되돌릴 수 없다고

고장 난 헤모글로빈

내 피는 더 이상 붉지 않은 허여 묽은 무언가


변절되어 버린다고

이건 피라고도 물이라고도

정의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개라고


이미 늦었다

내일 밤 아무개의 묘비에 적힐

사인(死因)은 산소 결핍

범인은 이산화탄소

당신이라고는 말하지 않을게

나는 그냥 좋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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