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의 사랑법에 대한 시
이산화탄소 살인 사건
서늘한 밤 당신과 나란히 걷다
당신 입김 새털구름처럼
하얗게 피어오를 때
나는 급하게 숨을 멈추고
당신 한 숨 들이마시네
시간과 공간 동일한 좌표 속
당신이 뱉어낸 날카로운 아밀레이스 결정들
목구멍에 박혀버려도 그냥 좋아
겹겹이 축적되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당신과 만들어낸 반복된 에너지들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아
나란히 목적지를 걸으며
당신에게 맞춰 온
보폭, 호흡, 시선, 심장박동
모든 세포를 갖다 바치네
당신이 뱉어낸 모진 말들
분노와 짜증, 원망과 증오
구름 뒤에 숨은 저릿한 천둥번개
상처 입어도 그냥 좋아
당신 모든 한 숨 들이마시네
메말라가는 나날
친구가 내게 말했지
이산화탄소 중독은 되돌릴 수 없다고
고장 난 헤모글로빈
내 피는 더 이상 붉지 않은 허여 묽은 무언가
변절되어 버린다고
이건 피라고도 물이라고도
정의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개라고
이미 늦었다
내일 밤 아무개의 묘비에 적힐
사인(死因)은 산소 결핍
범인은 이산화탄소
당신이라고는 말하지 않을게
나는 그냥 좋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