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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Apr 03. 2023

우리를 인간이라 부르는 이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거리, 틈


 무리를 짓는 동물은 의사소통 대신 우두머리의 지도하에 한 마리의 개체처럼 일체가 되어 움직인다. 그러나 사람은 좀 다르다. 인간관계에는 거리가 중요하다. ‘사람’을 뜻하는 사람인(人)과 ‘사이’를 뜻하는 사이간(間)을 합쳐서 사람을 인간(人間)이라 부르는 이유다.


 사이는 사람과 사람을 심적으로 결부시키는 것과 동시에 일정한 틈을 설정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일정한 거리를 설정한다는 건, 폭력이나 충동에 의해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벌어져서 사이가 난 자리를 '틈'이라 말한다. 즉, 틈은 ‘일정한 거리와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다. 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뭇가지 사이의 틈, 꽉 닫히지 않은 창문의 틈, 빽빽한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냈을 때 생기는 틈처럼 말이다.


 틈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틈이 존재해야 무언가 채워 넣을 수 있으며, 그만큼 비워내야만 새로운 걸 채워 넣을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살랑 바람,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에서 일정한 틈이 없다면, 나와 상대는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어지게 된다. 상대방과 내가 너무 가깝다면, 언어를 통한 소통보다 감정이 앞서곤 한다. 충동과 욕망에 사로잡혀 상대가 허용하지 않는 선을 넘게 된다. 상대의 선을 넘는 순간, 나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방과 내가 너무 멀다면, 감정은커녕 언어를 통한 소통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상대방을 방관과 무관심으로 대한다. 어떤 상황이든 두 상황 모두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혹은 일면식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폭언, 갑질, 범죄가 발생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존중과 존엄은 상대방과의 거리에서 나온다.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거리, 인간관계에서 틈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요즘 같은 사회에선 더욱 절실하다. 상대방이 가진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싶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문 앞에 틈이 없다면 문을 열고 닫을 수 없기에.


 한걸음 물러나서 상대의 언어를 해석하고, 상대의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런 서로의 말과 행동에 울고 웃는 우리를 인간(人間)이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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