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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편. 신발 탓

결론은 누구나 내릴 수 있는 법.

by 김현이

“엄마! 이 운동화 아주 마음에 들어. 푹신푹신하고 아주 편해. 발에 딱 맞고.”


“그래? 다행이네. 네 운동화가 질리는 날 가끔 한 번씩 신어.”


“아니, 그 반대가 더 좋을 것 같아 엄마.”


올 봄 선배 아들이 신던 운동화를 한 켤레 얻어왔었지. 몇 번 못 신어보고 발에 안 맞게 되었다고 신발장에만 있었던 거라고 하면서 내게 조심스레 내미는 선배에게 나는 속마음의 두 배 이상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그 신발을 집으로 가져왔어. 물론 속으로는 큰 애한테 조금 클 것 같았지만 내 말대로 제 신발이 질릴 때 한두 번 신겨도 될 것 같았던 거야. 가져오면서도 에너지가 넘쳐나는 큰 애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신발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고 마침 아이 발에도 맞지 않는 거야. 보기에는 별로 낡은 신발도 아니고 해서 나도 그대로 신발장에 모셔놓고 늦봄과 여름을 보내고 말았지. 여름이 끝나갈 무렵 왜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잖아. 얼마나 첨벙거리기 좋아. 큰 애는 갖고 있는 운동화 두벌을 모두 흠뻑 적셔 놓았고 당장 신발을 사 줄 형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선배 아들이 신던 신발을 꺼내게 되었던 거야. 하필 비가 계속 오니 빨랫줄에 걸린 운동화도 눅눅한 채로 마르지 않았던 거지. 운동화 끈을 내 식대로 잘 묶어서 큰 애를 신겨보았어. 그랬더니 큰 애가 보인 반응이 바로 이 글의 첫머리에 써 둔 몇 마디 대화와 같아, 여전히 큰 애와는 어울리지 않는 얌전한 신발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가 좋다고 하니 나도 그냥 내 마음이 쓸데없는 걱정 같더라고. 그래서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지. 그런데 언제나 내재된 문제는 어느 때라도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이 영영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던 그 우려가 마침내 수면으로 동동 떠올랐던 거야. 저녁 밥상에서 밥그릇을 절반정도 비운 큰 애가 이제야 말할 기운이 났다는 듯이 엷은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을 시작하더라고. 나는 말을 시작한 걸 보고 큰 애가 드디어 허기를 면했구나 싶었어.


“엄마! 나 저 운동화 맘에 안 들어!”


나는 물론 큰 애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할지 예상하고 있었지만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았어. 그냥 아이의 상한 기분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거야.


“신발이 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니?”


“신발이 너무 무거워, 제대로 달릴 수가 없어.”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 입속에서 근질근질한 이 질문을 해서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왜 항상 이런 순간에 아이들을 골려먹고 싶어지는 걸까.


“오늘 계주 선수 뽑았니?”


“응.”


“그래서 몇 등 한 거야? 설마 범준이 – 아이 반에서 언제나 꼴찌를 차지하던 아이 – 에게도 진거니?”


“아니, 신발이 너무 무거웠다고. 나는 달려 나가는데 신발이 자꾸만 땅속으로 꺼지고......”


왜 갑자기 내 말투가 친절하게 변했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데 있지.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골려먹을 때는 가장 친절하고 자상한 말투로 대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이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더 억지스럽게 다정하게 물어보고는 했어. 나는 정말로 내가 생각해도 이럴 때는 짓궂은 엄마야. 아이의 자존심을 갖고 놀려먹기를 작정하다니. 그런데 잠자코 엄마와 형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작은 애한테 불똥이 뛰는 게 아니겠어!


“야! 너는 계주 선수 뽑았냐?”


“형아! 그게 뭔데?”


“가을 체육대회 때 학급 대표로 나갈 계주 선수 말이야!”


“그러니까 계주가 뭐냐고?”


하기야, 작은 애처럼 아직 말에 오염이 없고 순수한 아이에게 ‘계주’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서 마침 궁금증이 더해 진 내가 설명을 해 주었지.


“달리기 뛰는 거 했는지 묻는 거야.”


“아니.”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쯤 너희도 달리기 뛸 거야. 그러면 누가 계주 선수로 뽑히게 될지 알게 되겠지.”


큰 애는 큰 동생이 운동신경이 남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였어. 녀석이 1학년 1반 계주 선수로 나가기를. 왜냐하면 여섯 살 때부터 도장에서 체력을 테스트 하는 각종 시합에서 항상 유치부 일등을 했었고 심지어 학교에 입학하고 치른 첫 줄넘기 대회에서도 연달아 두 번이나 우승을 하면서 학교 현관 출입구 유리 장에나 진열되어 있던 것과 닮은 커다란 트로피를 벌써 두 개씩이나 타 와서는 엄마 책을 가로막으면서 책꽂이 정 중앙에 마치 나를 보란 듯이 진열해 놓았거든. 그건 큰 동생의 자부심이었어. 왜냐면 가까이 구경을 하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해도 꼭 먼저 물어봐야 했거든. 암튼 계주 선수를 아직 뽑지 않은 거야.


“너 무조건 열심히 뛰어라. 솔직히 네가 계주에 나가도 내가 너를 응원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우리는 청백으로 팀이 나뉘잖아.”


“정우 너! 그런데 정말로 선우가 계주 선수가 되어도 응원 안 할 거야?”


“몰라! 봐서.”


“그런데 엄마 나는 달리기를 뛸 때면 기운이 없어. 그래서 마음껏 달리지 못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던 큰 애는 이미 절반이나 더 비운 밥공기의 밥을 크게 떠서 큰 동생의 밥그릇에 덮는 거야. 그러면서 밥을 많이 먹어야 기운이 난다고 하는 거야. 어쨌든 팀이 달라도 응원을 해줄 것 같았지. 나는 그냥 웃음이 났어.


다음 날 아침, 언제나 20분 먼저 나가는 큰 애가 갑자기 신발장에서 평소에 잘 안 신는 신발이 어디 있냐고 물어 보는 게 아니겠어. 입구가 좁아서 신고 벗기가 불편하다고 언제나 다른 신발을 세탁했을 때만 신던 그 신발이 새삼 달리기에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야. 가볍고 발에도 딱 맞고 부드러워 밑창이 고무처럼 둥글게 말리기도 했으니까. 난 처음부터 그런 신발이 큰 애와 잘 맞는 신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푹신하고 딱딱한 신발에 잠시 마음을 팔렸던 건 이해할 만 했어. 왜냐하면 아이라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고 탐내하니까.


마침 작은 애에게는 일주일동안의 비로 인해 신발을 다 빨아 놓았기에 평소 잘 안 신기는 단화를 내주었어. 그다지 불평 없이 잘 신고 가더라고.


또 다시 우리들은 모두 저녁 밥상 앞에 둘러앉았지. 나는 큰 애한테 이번 달리기는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지. 만일 이번에도 꼴찌를 했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말았을 거야. 그런데 묻기도 전에 큰 애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을 하더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큰 애가 계주 선수라도 된 줄 착각을 했을 정도라니까.


“봐요! 엄마. 전부 다 신발 탓이라니까요. 범준 뿐만 아니라 영훈이까지도 따라 잡았어!”


큰 애가 말 속에 존칭어를 섞어서 쓴다는 것은 상당한 자만심에 빠져서 잘난 체를 하고 싶은 상태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 그리고 말속에 이미 선두에서는 꼴찌로 달리고 있었다는 걸 고백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아이의 기분을 망칠수가 있었겠어?


“다행이네 정우야. 역시 네 말대로 신발 탓이었네. 그래서 앞으로 저 신발을 안 신을 생각이니?”


“응. 별로 신고 싶지 않아. 내게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엄마. 그런데 선우 너! 달리기 했어?”


“응. 그런데 체육대회 날에는 어떻게 하는 거야?”


큰 애는 신발을 바꿔 신고 가서 겨우 꼴찌를 면했고 큰 동생은 멋도 모르는 엄마의 실수에도 구두를 신고 달렸는데도 계주 선수로 뽑혔던 거야. 신발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건 말이야. 달리기에 일가견과 남다른 경험 – 조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서 지금은 생략하는 게 좋겠어. – 을 갖고 있는 나에겐 그런 결론이 가장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그 남다른 경험이라는 게 말이지. 나도 달리기에 조금은 특별한 기억이 있어서. 경찰관 공개채용 체력 검정 시험에서 달리기에서만 다섯 번 과락을 벗어나 낙방을 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런 것인지 나도 사실은 큰 애는 왠지 나를 더 닮았는가 싶어 항상 신발에 더 신경이 쓰이더라고.


그런데 큰 동생은 자꾸만 기운이 없어서 달리지 못하겠다는 거야. 아들이 1학년 1반을 대표로 가을 체육대회 청백 계주 선수로 발탁이 되어 1번 선수, 스타트 라인에 서야 하는8년 간의 일생의 역사적인 순간 앞에서 기운이 없다고 말하니까 나로서는 난감하잖아. 걱정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이 상황을 어제부터 죽 지켜봐왔던 막내 동생이 한 마디로 기막힌 정리를 해주는 게 아니겠어. 큰 형대로 제 밥그릇의 밥을 한 술 떠 작은 형 밥그릇에 덮어 주면서 많이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거야. 그 때의 내 마음 상상이 되니? 나는 정말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 대신 진심을 다해 따뜻하고 다정하게 막내의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포동포동한 볼에 입까지 맞추고 싶었어. 아마 막내가 ‘밥 다 삼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숨 막힐 정도로 꽉 껴안아 주고 싶었지. 사실은 신발 탓이라고 신발을 바꿔 신어가면서 두 명이나 재친 큰 애도, 구두를 신고도 계주선수로 뽑힐 만큼 달리기를 잘한 큰 동생도, 너무나 명확하게 상황 정리를 해준 막내도 내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거야.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밥숟가락이 오고가면서 상 아래로 흘려버린 밥풀 따위는 아무런 안중에도 없었어.


그런데 그날 저녁 ‘내일까지는 아이들을 골려먹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내 계획은 목욕을 끝내고 30분이 넘도록 맨 몸으로 돌아다니던 녀석들을 보고 무너지고 말았지. 역시 다짐을 지켜내는 건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야. 배가 불룩한 큰 애를 보고 하도 웃겨서 그만 저팔계 같다고 말해 버린 거야. 저팔계가 누군지 모르는 큰 애는 계속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확인하려 달려들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렇게 궁금하면 내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물어보는 게 나을 거라고 대답해줬어. 그랬더니 아마 선생님도 대답해 주시기 않을 거라고 하더군. 그 이유를 묻자, 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그냥 ‘조금 더 생각해 볼게.’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그 대답을 피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 적이 있었느냐 묻게 된 거야. 그러니까 큰 애는 ‘그 루돌프 볼펜을 가지면 안되요?’하고 물어보았지만 선생님은 그냥 생각해 보신다고만 대답하셨다는 거야. 루돌프 볼펜이라면 참관 수업 때 학부모에게 의견을 듣고자 바구니에 내 놓았었던 그 펜을 말하는 거 같더라고.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갖고 싶어 했을 거야. 나조차도 스무 개가 넘게 있는 것 들 중 한 개를 가져오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선생님은 이번에도 저팔계를 알려주시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나는 아마 이번엔 너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실 지도 모른다고 했지. 왜냐하면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를 골려먹을 기회를 그냥 지나치는 적은 없는 법이니까.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나 싫어하나 나는 나는 저팔계 도대체 모르 겠네

나의 심술 때문에 나를 그렇게 싫어하나 나도 알고 보면은 너무나 착한 사람이야.........“


내 심술은 극에 달한 거야. 내가 그 노래까지 부르게 될 줄은 나도 정말로 몰랐다니까. 큰 애는 저팔계가 사람이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았지. 실제로 저팔계 흉내를 내면서 부르는 엄마의 노래는 듣고 나서는 안달이 난거야.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린 나는 아이에게 불쑥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위로해 주고 싶어진 거였어. 그런데 생각해 낸 게 고작 동생들을 골려먹는 방법이라니. 그 순간에는 나도 '내가 이러고도 엄마야?’ 의문이 들더군. 큰 동생은 날씬했으니까 사오정, 막내는 손오공. 사실 손오공은 진짜로 일본 원숭이와 매우 닮은 큰 동생과 맞았지만 작은 동생에게 붙여줄 만한 캐릭터가 없어서 그냥 그렇게 해 줄 수밖에는 없었어. 그러면서 얼른 캐릭터 사진을 보여줬지. 큰 애는 그제야 웃더라고. 정말로 내가 봐도 웃기게 나온 사진이 검색되었던 거야.


또 다시 저팔계는 사람이냐고 묻는 큰 애 몰래 저팔계를 검색했지. 줄무늬 반바지에 나비모양 썬 글라스까지 낀 가장 날씬하게 나온 사진을 골랐는데 선뜻 보여주지 못 하겠는 거야. 저팔계 코, 그 돼지 코만은 어떻게 숨길 수 없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 서유기라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들인데 그 중에 저팔계가 주인공이라고. 큰 애는 주인공이라는 말에 사진을 보고도 그다지 실망하는 표정을 짓지 않더라고. 그런데 순간 아이의 실망한 눈빛을 보았던 거야. 나는 재빨리 나방을 토하는 가장 못 생기게 나온 사오정 사진을 보여주며 큰 애만 들리는 목소리로 ‘이건 선우야! 똑같지?’ 말하고 일부러 바보처럼 큰 소리로 웃었어. 엄마의 이상한 행동에 조금 당황한 큰 애는 어쩔 수 없이 그냥 같이 크게 웃더라고. 아마 자신도 그렇게 바보처럼 웃지 않으면 엄마가 실망을 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야. 큰 동생, 막내는 모르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재빨리 말해줬어. ‘둘만의 비밀’ 이라는 말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끌어올려 놓는 법이지. 더욱 그 자신이 아이라면, 그 비밀이 엄마와 단 둘만이 공유하는 비밀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거야.


어쨌든, 아이들 신발 탓은 제 각자의 논리로써 마무리 됐어. 누구에게는 오로지 신발 탓,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신발이란 처음부터 의미도 없는 것, 또 다른 누구에게는 그저 밥 한 숟가락 더 먹으면 되는 걸로 된 거지. 나에게는? 사실 내가 공개채용 시험에서 첫 번째로 떨어지던 날에는 나도 신발 탓을 하긴 했었어.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신발 탓만은 아닌 것 같았지. 만성 장염으로 인한 뱃속의 가스, 근육한 점 없는 가느다란 허벅지, 그리고 긴 운동복, 심지어 감독관의 초시계까지 잘못도 없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우기 시작했는데 글쎄 맨 마지막 내가 달리기에 통과했을 때 했었던 결론이 뭐 였는 줄 알아? 정말 지독히 분명한 결론이었지만 나 역시 큰 애와 같이 신발 탓을 했다는 거야. 난 그날 맨발로 뛰었거든.


그나저나 큰 애가 선생님께 저팔계를 알고 있느냐고 정말로 물어보았으면 어떡하지. 선생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하필 이번 주엔 학부모 상담도 예정되어 있는데.



2018. 9. 17. 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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