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꼬마의 얼굴이 인쇄되어 장식을 이루고 있는 수박크기 만한 동그란 벽시계를 한 번 더 쳐다본다. 2분? 1분? 그래도 여유가 있다. 분리수거를 하고 간다고 해도 늦지 않을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수 십 차례 나와 얼굴을 마주치는 저 벽시계는 큰 꼬마가 7살 유치원을 졸업할 때 기념 선물로 받아온 것이다. A3건전지 1개만으로도 몇 개월은 쉬지도 않고 잘 움직인다. 고장이 났던 적도 없다. 초침이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건전지만 바꿔주면 어김없이 잘 갔으니까. 아마도 낙상하여 보호 유리가 깨지지 않는 한 계속 쓰게 될 벽시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짧은 생각을 멈추고 거실 중앙에 앉아 종이를 여러 장 어질러 놓고 오징어 비행기를 접는다고 신겨놓은 양말까지 벗어던진 채 몰두하고 있는 막내 꼬마를 보니 답답하다. 남은 1,2분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막내 꼬마를 보니 조급해 지기 시작한다.
“이제 비행기는 그만 접고 양말 신고 나가자.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작은 형 학교에도 지각이겠지만 엄마도 지각하고 말거야. 어서 단우야!”
“아니, 그것보다 오징어 비행기 접는 순서를 잊어버렸어. 기억이 안 난다고.”
거의 울기 직전이다.
엄마는 애꿎은 작은 꼬마를 시켜서 자기 몫으로 접은 오징어 비행기를 동생한테 양보해 줄 것을 부탁해 본다.
“왜 또 냐야!”
한 마디 투덜대더니 입을 쭉 내밀고 세상에 그마저도 자리에 주저앉아 처음부터 비행기를 접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부터 다 접으려면 3분? 2분? 그래, 조금 침착하게 기다리자. 어차피 1, 2분은 늦어도 늦은 티도 안 나는 지각이니.
오징어 비행기가 완성되자 막내 꼬마는 또 다시 새 종이를 한 장 꺼내고 그제야 현관으로 걸어 온다. 엄마는 이미 양손에 무게가 나가는 짐들이 들려 있어서 신발 신는 것을 돕지 못한다. 왜냐하면 짐을 내려 놨다가 손에 맞는 식으로 다시 들기에는 또 시간이 걸릴 것이며 막내 꼬마는 이제 신발쯤은 혼자서도 잘 신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손에 오징어 비행기를, 남은 손에는 빈 종이를 들고 어떻게 신발을 잘 신을 수 있겠니. 내려놓고 차분히 신는 게 어때?”
이제까지는 말을 잘 들었다. 그런데 이미 완벽하게 집을 나설 준비를 마치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작은 꼬마가 승강기 쪽으로 뛰어간 것이 오늘 아침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언제나 잘못의 원인은 예상 밖에서 나오는 법이다.
“내가 먼저 버튼을 누를 거야!”
아까 겨우 참았던 눈물을 거의 터트리기 직전이다. 막내 꼬마는 두 개의 승강기를 앞에다 두고 이미 도착해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승강기를 마다하고 1층에서 주저하고 있는 남은 승강기를 타야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가 그 승강기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라는 것.
엄마는 협박한다. 이 승강기를 안탄다면 승강기 앞집에 살고 있는 무서운 아주머니와 함께 타고 내려가야 될 것이라고.
그것은 싫었던 모양인지 울먹이는 꼬마를 겨우 승강기에 태웠다. 그런데 또 자동차를 타는데 문제가 생겼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씩씩하게 잘도 타고 내리던 자동차를 혼자서는 절대로 못 탄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직 아기라는 이유로.
심호흡을 하고 운전석에서 내려 막내 꼬마가 서 있는 쪽으로 가서 조금 거칠게 아이를 들어 차에 태웠다. 거의 짐을 싣다시피 했다.
차를 타고 작은 꼬마 학교로 이동 중에도 막내 꼬마는 엄마에게 이유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면서 작은 주먹으로 엄마의 오른쪽 팔을 때린다. 성가시고 위험하여 큰 소리로 무섭게 말했다.
조금 효과를 본 것 같다.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조용히 있었으니까. 작은 꼬마를 내려주고 인사로 가볍게 포옹해 준다. 교문 저 쪽에서 예쁘장한 여자애가 우리 작은 꼬마를 보며 미소 짓는다. 나는 그 꼬마 둘이 나란히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작은 꼬마의 뒷모습에서도 엄마는 느낄 수가 있다. 지금 저 녀석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인다는걸.
다시 차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막내 꼬마는 화가 나 있다. 엄마는 이제 막내 꼬마와 단 둘이 차안에 있다. 지금이야말로 진실하게 화해할 수 있는 순간이다.
“단우야! 이제 엄마랑 화해해!”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토라져 쳐다보지도 않는다.
“정말로 화해 안 할 거야?”
“싫어. 엄마가 내 말 안 들어줬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먼저 화해하자고 그러잖아. 우리 이제 화해하자.”
막내 꼬마는 이쯤에서 엄마와 화해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인지 한참 있다 내민 손에 슬그머니 작고 보드라운 손을 올려놓는다. 엄마는 그 통통한 손 등에 뽀뽀해주고 화해를 받아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은 단우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해서 이렇게 쉽게 화해를 받아주는 것이지 다른 꼬마들 같았으면 절대로 안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이를 달래준다. 엄마는 알고 있다. 곧 도착할 유치원 앞에서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혼자서는 들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마의 화해를 받아야만 했다는 것을.
몇 주 전부터 도로 옆 작은 산을 깎고 있는 포크레인을 보고 막내 꼬마가 말한다.
“포크레인은 참 착해.”
“왜에?”
“저렇게 지저분하게 있는 흙을 잘 파서 한 쪽에 정리를 하고 있잖아.”
“그렇지. 포크레인은 정리를 참 잘하는구나. 우리 단우처럼.”
“그런데 엄마! 불도저는 나빠!”
“그건 또 왜?”
“불도저는 나무들을 밀치고 있잖아. 저러면 나무가 얼마나 아프겠어.”
“맞아! 그러고 보니 불도저는 나쁜 것 같아. 우리 단우는 포크레인 같이 착한 대.”
“아니야, 엄마 단우도 사실은 조금은 나빠. 엄마한테 투정부렸잖아.”
'아가야, 절대로 그렇지 않아. 우리 단우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영리한 아이인지 엄마한테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엄마의 기쁨은 거의 언제나 대부분 너희들한테서 오는 거란다. '
“단우야! 사실은 엄마가 더 나빠. 우리 단우를 이해해 주고 조금 더 기다려줬다면 아마 단우는 그렇게 떼쓰지 않았을 걸 엄마는 알고 있거든. 엄마가 다음부터는 더 노력할게. 우리 다 같이 서로 노력해 보자?”
막내 꼬마는 이제 기분이 완전히 다 돌아왔다. 오히려 스스로 느끼는 뿌듯함에 마음은 더 편안해졌을 것이다.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막내 꼬마의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뒷모습에 엄마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느낀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엄마는 지금 막 써내지도 못할 글을 억지로 30분 만에 써 버렸다. 이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엄마가 주변의 조롱과 비난 섞인 사회적인 편견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하는 일종의 방어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거침없이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써 내려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 엄마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전보다 오히려 더 명랑해졌고 더 잘 웃었고 무리할 정도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녔고 그것이 가면을 쓰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복하기 위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다툼은 길지 않다. 화해하는 방법 또한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여운만큼은 마음속에 남아서 오래토록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싸움과 화해는 쉽게 잊혀 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일정하지 않은 또 다른 형태로 남는다. 나는 이것을 훗날 이야기 하게 될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