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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편. 재회

goodbye라고 말하기 보단 meet again라고 말해야 한다.

by 김현이

그 날을 천천히 회상해 보면 나는 마치 꿈을 꾸는 사람이 된다. 11년 전 가을이 막 시작할 무렵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보내었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만나는 지점은 볼 수 없는 고깃배들이 즐비한 조금은 어수선한 어항, 처음 전어라는 물고기를 알 게 된 날이었었다. 나는 이렇게 그 날을 아주 조금씩 천천히 조심스럽게 눈을 감고 회상할 때 만일 누군가 나에게 그 날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한다고 우리들의 진지한 표정과 세밀한 몸짓을 똑같이 표현해 낼 수는 없을 테지만 그 날을 둘러싸고 있었던 설렘과 다정했던 분위기만큼은 그려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그 날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특별한 날들의 하루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11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들은 또 다시 만났다.


재회. meet again.


재회라는 말이 언제나 이전의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우리들의 재회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헤어질 때 맛보는 그런 극단적인 감정이 우리들에게는 없었기에 goodbye가 없었던 그 날의 우리들의 이별, 그래서 나는 재회라는 단어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어색하고 서툰 표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장소와 시간. 우리들은 다른 옷, 다른 나이, 다른 표정, 다른 마음으로 다시 만났다. 그 중에서 유달리 나 혼자만 늘어진 양쪽 볼만큼 늘어난 수다로 느슨한 아줌마로 재회하였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여전히 어촌의 작은 항에서 보았던 그날 그 분들의 그 모습 그대로를 나는 보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마흔을 넘겼다면 쉰을 넘긴 두 분은 여전히 그 날의 젊었던 그 분들이었고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 분들을 만나고 온 듯, 마치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사춘기 소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비슷한 감수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유쾌하고 부드러운 인상이 젊었던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얼굴들, 그 인상 그대로였다. 이제 변한 건 나 하나뿐이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그 날처럼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시는 빛나는 눈빛도 여전했다. 하지만 퍼지고 쓸 말 대신 허투루 지껄이기만 하는 지금의 나는 재회하기 전까지 그렇게도 마음속으로 ‘느긋하게 편안하게’ 긴장감을 지워보려고 외우던 주문을 재회 순간 즉시 잊어버렸고 우리들 중에 오직 나 한 사람만이 심각하게 달라진 모습을 하고 마주하고 있었다. 수줍음 타는 순수한 꿈이 있었던 젊었던 그 날의 나는 11년 만에 쉽게 화를 내고 별다른 희망도 꿈꾸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아줌마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불성실한 딸과 냉정한 동생이 되어 있었다. 슬펐다.


우리들이 또 다시 헤어지고 돌아와 앉으며 나는 조금씩 다른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의 젊었던 나도 어쩌면 지금의 다소 늙어진 나와 변함없이 똑같은 매우 그저 그런 나이지만 그 분들은 오래 전 그 날에도 그리고 오늘도 이런 나를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그 분들의 신비로움을 정말로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슬펐던 기분이 기쁨으로 변해갔다.


11년 전 그날의 태양은 가을이 막 시작할 무렵의 태양으로 낮은 구름과 바다 빛에 반사된 더욱 더 짙푸른 배경으로 강렬했었지만 오늘의 태양은 가을이 끝나가는 무렵의 태양으로 높은 구름과 희미한 먼지가 섞인 육지의 잿빛에 조금은 엷은 빛의 태양이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던 머리카락의 색깔, 둥근 이마의 모양, 태양빛을 반사시키며 반짝거리던 피부, 말하고 웃을 때 움직이는 입술의 다양한 모양들 그리고 부드럽게 들려오는 목소리까지 이렇게 그 분들을 뺀 나머지 전부가 고약하게도 바뀌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의 기쁨을 나의 큰 꼬마에게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는 오늘 꿈을 꾼 것 같다고.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이제 잠들기 전까지는 나와 아이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한 시간쯤 남았을 무렵 그 보다 훨씬 더 앞서 시작된 또 다른 인연이 있는 분에게서 문자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울릉도 해국이 가을 하늘과 조화를 이룬 귀엽고도 세련된 이중적인 느낌이 나는 훌륭한 사진도 함께 있었다.(위 사진) 가끔 시간의 흐름을 절대로 물리적으로 이해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까. 젊었던 그 날들은 나에게는 참 오래전의 일들이었다. 나에게는 갑자기 딴 데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제법 많이 큰 세 꼬마가 있는데 지난 날 들을 회상하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런 것을 두고 추억이라고 하는 걸까. 그렇다면 추억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건 마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그토록 신비한 ‘사랑해’를 들으려고 마음을 졸이는 것과 같이 눈을 뜨면 눈을 감고 있을 때 다가오던 그 추억들이 사라져 버릴까봐 뜬 눈으로 현실을 마주하기를 조마조마해 하며 눈 뜨는 것을 불안하면서도 기쁨으로 느끼는 심정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잠들어야지 생각했다.


찌르는 한 낮의 햇살도 점점 그 기운을 잃어 둔감한 빛으로 부드러워지고 있다. 곧 이마저도 싸늘한 시선으로 바뀌리라. 2018년 가을이 끝나가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두려워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 순간 내년의 봄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여름 내내 썬 크림도 바르지 않았던 덕분으로 메추리알 껍데기무늬 같은 주근깨로 덥혀 있는 내 양쪽 볼도 겨울 내 점점 엷어져 사라져있길 기다리는 소박한 마음으로 내년 봄을 바라는 중이다.


어떻게 이렇게 오셨냐고 정말로 깜짝 놀랐다는 나의 말에 ‘그냥 온 거야.’ 조금은 심심한 대답이 오히려 우리들이 지나치게 많이 쓰는 ‘보고 싶어서.’보다 오래 귓전을 돌았고 마음에도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냥 저절로 그랬다.


나는 ‘재회’를 말하고 있으면서 이 글의 끝을 이별로써 하려는 냉정한 사람이다. 우리들의 인생이란 어차피 재회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의 이별을 담고 있는 재회, 이별이 기쁠 수야 없겠지만 그렇게 슬픈 일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겪어 본 지나치게 슬픈 이별은 무척 과하고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점점 그 기억을 지워낸다. 그것은 의지로써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뇌 기억 스스로가 엷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이 대단한 슬픔도 기쁨도 끝내는 비슷한 감정의 형태로 남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치열해서 피곤한 일이 천지니까, 그렇지 못하면 너무나 복잡해서 도저히 제대로는 삶을 이어나가지 못할 테니까, 차갑게는 들리겠지만 내가 나쁜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이별 앞에서 두고두고 슬퍼하며 결국은 그 감정이 무뎌질 때 까지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재회를 기약하지 않는 이별, 결코 사랑의 증거가 이별일 수는 없을 테니. 달 토끼를 만나서 함께 방아를 찧고 싶던 어린 시절의 마음과 같이, 금방 식어 사라져 버리는 끓는 열정의 가을 석양과 같이 어쩌면 허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설 때 ‘goodbye’ 하지 말고 ‘meet again’이라고 말해야 한다. ‘we’ll meet again.’이라고.


두 분을 보내고 나의 보통으로 돌아오면서 그 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된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우리들 각자는 변했고 변하고 있는 중이야. 전과 같다는 것도 어쩌면 변한 모습의 다른 형태로 보이는 것일 뿐이야. 그렇게 보고 싶은 착각 같은 것이지. 시간이 우리의 마음보다 빨리 앞질러갈 때 남겨 놓았던 흔적들, 내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그 순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비로소 기억으로 보일 때, 그것을 때로는 상처라고 말하기도 추억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지. 등을 돌리고 돌아설 때의 그 서늘함보다 결국, 마침내 우리들이 공유하는 시간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어쩌면 이별이 완성되는 시점일거야. 그래서 끝내 이별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도 틀린 말일 수도 있는 거야. 자신을 기만하는.'


지나간 여름 동안, 나는 썬 크림도 바르지 않은 채 얇은 모슬린 천으로 짠 성긴 모자 한 장을 쓰고 그렇게도 돌아다녔었다. 아무리 챙이 넓고 둥글어도 쏟아지는 빛줄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모자였다. 오히려 머리카락 구멍에서 나는 땀이 제대로 증발하지 못하고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려 등줄기만 더 축축해졌고 얼굴은 고스란히 볕에 탔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나 나에게 많이 탔다고들 말했다. 전에는 흰 얼굴이었는데 많이 탔다고. 그건 다 썬 크림 탓이라고 둘러댔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는 걸 안다. 모자. 형식적으로 쓰고 다녔던 모자.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말도 설명도 하지 않고 그냥 웃었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많이 탔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그들도 이유는 알고 있으니까. 모자가 문제라는 것은 나 혼자만 잘 알고 있는 원인이었다.


나를 두고 아쉬운 점이 없고 언제나 당당하게 행동한다고 아주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자신감에 차 있고 두렵고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내가 겪었던 처지와 앞에 닥친 현실에 내 능력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또한 남들이 나의 현실을 알고 나서 던질 동정 혹은 무시하는 마음이 싫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정했지만 외형적으로 잡혀있는 보통의 상식적인 규범적인 생활이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렵의 가을은 여름날의 소낙비같이도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나는 알고 있다. 또 다시 이 무렵의 가을이 온다는 것을. 그러므로 헤어질 때 goodbye하면 안 된다는 것을.



2018. 11. 2.(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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