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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편. Memory

그 순간에 머물수 있다면 꽃은 져도 괜찮아.

by 김현이

“엄마? 저기 언덕 가운데 있는 저 하얀 열매는 뭐야? 솜사탕 같아.”


“응, 저건 목련꽃나무야. 어때? 예쁘지? 단우처럼 뽀얗지만 꽃잎도 얼마나 부드러운데.”


“그렇구나. 그런데 엄마! 좀 아플 것 같아. 멍멍이가 들었어.”


몇 년째 오르던 산 가운데 구불구불한 언덕길에서 올 해는 능선을 연둣빛으로 밝히던 배꽃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다. 5분 앞당긴다는 이유로 1차선으로 난 도로의 양 옆의 땅을 뒤엎어놓았으므로 도로 바로 옆에 피어나던 작은 꽃나무들, 잡초 틈사이의 노란 민들레, 바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던 개나리꽃도 더는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시뻘건 황토만이 양쪽을 뒤 덮은 삭막한 길에서 우리집 꼬마 눈에 간신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았던, 산 중턱에서 살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키가 큰 목련꽃 나무가 들어온 것이다. 4년 째 같은 길을 매일 반복적으로 다녔으면서도 나는 저 목련나무보다는 언제나 낮고 평평한 치마모양의 배나무 과수원을 바라보았었다. 도로확장 공사계획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나도 꼬마도 저 늘씬한 목련꽃나무를 무심코 지나쳐버렸으리라. 꽃잎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군데군데 떨어진 것을 보고 아이는 멍이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멍멍이는 멍이 들었을 때 내게 아프지 말라고 ‘멍멍이 없어져라’ 낮게 주문을 외우며 오동통한 손으로 상처를 문질러 주던 아이만의 그리고 아이들과 나만의 암호 같은 거였다. 4월의 고개에서 꽃잎들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 말처럼 정말로 아파보였다.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목련꽃은 질 때 다른 꽃잎들에 비해 유달리도 슬퍼 보인다. 멍이 상처로 보이는 거다. 그리고 조금 뒤 꽃잎이 진 자리에서 보드랍고 반짝이는 이파리가 돋는 것을 왠지 멍든 마음이라 짙은 연둣빛으로 나오는가 싶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부지런히 땅을 고르는 포크레인을 보면서 응원하고 있었다.


“역시 포크레인이 최고야! 땅 파는 건 나에게 맡겨!”


주황색 포크레인이 자기에게 꼭 저렇게 인사를 했다고 말한다.


매년, 아이들 상담을 다녀오면 나는 잊지 않기 위한 방책으로 또는 새롭게 마음을 먹기 위한 계획처럼 글로써 기록해 두었었다. 학기 중에 꼭 한 번씩은 있었으니 벌써 8번이나 학부모 상담을 경험한 것이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터득한 요령이 한 가지 있다면, 물론 선생님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을 수 있을 사실이지만, 순번을 가장 마지막에 있는 시간으로 약속을 잡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차례에 대한 부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와 큰 아이는 저학년, 고학년으로 분리되어 올해도 나는 어김없이 가장 마지막 순번이 되는 시간에 상담을 희망하는 요청서를 보냈었다.


그날, 나는 상담을 마치고 막내를 데리러 가는 길의 약 10분 동안을 조금은 슬프게 흐느끼면서 울었다. 내 자신이 느끼는 슬픔보다 타인이 나를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더 큰 슬픔으로 느껴질 만큼 가엾고 쓸쓸하게 울었던 것 같다.


큰 아이의 선생님과 아이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는 자연스레 비슷한 또래로서 자식을 키우면서도 특정 조직에 몸담고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세워야 하는 엄마의 입장으로서 서로 공감대가 있었기에 우리들은 짧은 대화에서도 매우 친밀감을 느꼈었는가 보다. 어느 분야의 권위자는 늘 당당하고 자신에 차 있기 마련이지만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아이의 선생님 앞에서의 부모의 입장일 것이리라. 부모만큼 내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선생님의 의견과 조언을 먼저 새겨듣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것이 상담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줄곧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던 중 지난 2~3년간 자신이 힘들었던 것을 언급하시면서 순간 눈물을 글썽거리는 거였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보고 잠시 당황하였지만 가볍게 손을 잡아드렸고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그날 선생님과 나는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서야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를 성급하게 끝내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울었던 것은, 선생님의 이슬처럼 그렁거리는 눈 속에 비치던 서글픈 내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인 눈물 한 방울에 감춰진 수많은 고통과 상처들을 읽을 수가 있었고 그건 선생님의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진심으로 이해했다기보다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허우적대며 울었던 나의 시간들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눈물방울이 내 상처를 건드렸고 되살아난 나의 슬픔 때문에 서글프게 조금은 불쌍할 정도로 흐느끼며 울었었다. 그 날의 눈물 한 방울의 의미, 그건 마치 바퀴벌레 한 마리 출현으로 그것의 수 백 마리의 생존을 짐작하는 것과도 같이 그 한 마리를 퇴치한데서 밀려오는 엄청난 부담과 미심쩍은 껄끄러움, 그런 불쾌한 잠재성의 발현과도 같은 것이었다. 조금은 그래도 아주 조금은 괜찮아졌다고 내 자신을 위로했던 것이 나를 속이기 위한 또 다른 나의 가식이자 허영심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날 밤, 그렇게 나는 큰 아이의 선생님과 못 다 나눈 이야기를 편지로 썼고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은 어색하게 끝났던 우리들만의 오해를 풀었다. 최소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나의 욕구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부축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왠지 아이 선생님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목련꽃잎은 거의 다 졌다. 이제 벚꽃나무도 이파리를 돋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꽃들이 활짝 피어났던 그 순간은 그 때 그 자리, 그 시각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되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한 경험들, 포장해서 담아두지 못한다는 기억의 영속성을 지녔기 때문이지만 여전히 담아서 가져오려고 노력해보는 것 그것을 두고 'memory'라 부른다는 것을 안다. 고독하다고 느끼는 건,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감을 얻지 못하는데 서 오는 감정이리라. 이런 기억들도 우리들이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결코 외로움은 아니리라. 서글프지만은 않으리라.


‘어느 늦은 봄날에 나는 보았었지. 낮은 담벼락 너머로 포도송이처럼 라일락 꽃송이들이 담장 끝에 기대어 있는 것을. 그래, 라일락은 어린 시절 나에게 매우 신비로운 꽃이었어. 정말이지 깜짝 놀랐어. 그런 향긋한 내음은 어디에서도 맡아볼 수 없었으니까. 시궁창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도 라일락 꽃향기는 정말로 매혹적이었어. 지금도 그 길목에는 여전히 그 라일락 꽃나무가 살고 있지만 나는 그 어린 시절의 나로는 다시 되돌아 가지 못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추억이란 그때 그 자리에 남겨 둬야 할 하나의 공간이자 대상물인지도 모르지. 현재로 되가져올 수도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야. 다만, 가장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결코 똑같은 것은 찾을 수 없어. 어쩌면 이런 이유들로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면서 만족을 찾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몰라. 어차피 지금이라는 시간도 곧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될 테니까. 그래서 모두 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들 하는가봐. 정작 자신은 과거에 기대어 살고 있으면서도 설령, 잊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할지라도 말이지.’


그날 저녁, 둘째 아이를 끌어다 앉혀 놓고 ‘앞으로 엄마는 누구보다 너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거야.’ 라고 선언하듯 큰 소리로 말을 하자, 사춘기가 왔다고 하는 큰 아이는 도대체 사춘기가 무엇인지 엄마의 관심을 동생에게 뺏긴다는 과잉반응으로 거의 관심도 없던 것에 대한 갑작스런 호기심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래, 사춘기란 말이지. 너에게는 정다운 친구 같은 거야. 너에게 관심이 있고 궁금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온 친구지. 그러니까 너는 특별히 잘 대해 줄 의무가 있어. 언제든 엄마를 동참시켜준다면 기꺼이 감사하게 받아줄게.”


우리 셋이서 이렇게 꽤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 몸집이 가장 작은 우리의 꼬마는 욕조에다 물을 가득 받아 놓고 한참동안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를 혼내는 듯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참 한심하다 한심해! 그게 정말로 그렇게 안 되니?”


그건, 엄마 몰래 샤워 볼에 거품을 잔득 내고 목욕을 즐긴 뒤 엄마에게 야단을 맞게 될까봐 아무것도 안했던 것처럼 샤워 볼을 원래 있던 자리게 걸어두려고 몇 번을 던지고 뒤꿈치를 들고 몸을 가장 길게 늘려보아도 번번이 실패한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러니까 막내가 자기를 두고 한 자조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꼬마의 그 말이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은 샤워타월을 못에 거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쉬운 일 조차도 하지 못해서 발버둥치는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데서 오는 자괴감이었다.


그날을 가만히 생각하면 ‘참 한심하다 한심해! 그게 그렇게 안 되니?’ 하던 꼬마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가도 정작 내 자신이 정말로 한심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밀려와서 나를 짓눌러 버리고 달아나버린다. 마치 겨뤄보기도 전에 패배 판정을 받은 듯 우울한 감정과 억울함이 대조적으로 교차함을 느꼈다.


P.S. 일주일 후에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첫 기일이 된다. 이럴 때야말로 시간이 간다는 것이 참으로 속절없이 느껴지는 때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 염이 시작되기 전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의 시간에서 창백하고 작고 동그란 할머니의 얼굴을 감싸며 슬프게 우시던 아버지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솔직히 그날 나는 아버지의 우는 얼굴에서 이제까지 보았던 아버지의 가장 슬픈 모습을 본 것이라고 여겼다. 보드랍고 반은 투명한 봄철의 산들과 향긋한 공기내음을 내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아직도 마음속에는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할머니와의 시간들, 나는 지금 그 시간들을 추억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2019. 4. 16. 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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