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토리 한 알의 무한한 가능성

by 김현이

13. 도토리 한 알의 무한한 가능성


2019. 10. 07.


고난은 인간을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인격체로 완성한다.


10월에는 아이들 학교에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아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거나 조퇴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10월 자체가 본래 쉬는 날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회사의 1년 농사가 사실상 10월을 기점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기분상 벌써 올해가 다 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휴일의 새벽은 출근하는 날의 새벽 시간보다 똑같은 양의 시간일지라도 모든 게 여유롭다. 책 한 장을 읽어도 그 내용이 더 풍부하게 와닿고 기지개만 켜도 여유롭다는 것을 벌써 몸부터 알아차렸다. 조금 늑장을 부려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오히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새벽에 일어났다는 평소와 다른 뜻 모를 성취감마저 들기까지 했었다.


주말마다 나가는 작은 아이의 브레인센터는 이제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가면 소파의 위치, 정수기 사용법, 화장실 비밀번호,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까지도 이제는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작은 아이도 그런 낯익음 탓인지 처음보다는 조금씩 더 적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몇 차례 들락거리던 전과 달리 일단 교실에 들어가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온순하고 잘 생겼고 또 마음이 참 따뜻하다. 하지만 한 번씩 굉장히 예민하게 돌변해서 사소한 다툼에도 큰소리를 지르는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이 아이에게 잠재된 억울함, 불만, 그리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답답함의 표출이라고 여긴다. 아이는 분명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더 아이의 그런 행동에 과민반응하지 않는다. 그냥 바라보고 인정하고 여유가 조금 더 있는 날에는 뭔가 대단히 속상한 일이 있는지 묻는다. 사람은 누구나가 감당이 어려운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표현해 보아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거푸 두 번째 인근에 있는 대학교로 산책하러 나갔었다. 그 학교는 낙농과 농축에 대한 특화 대학교라서 일단 조경이 매우 훌륭하다. 아이들 걸음에 맞춰 중간중간 눈이 가는 곳에서 머물기도 하면서 돌아보면 대략 한 시간 넘는 정도의 산책 거리이기 때문에 적당한 피로감을 느끼기에도 매우 적당한 코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곳곳마다 정말로 경치가 훌륭하여서 계절감이 더해주는 요소는 이미 그곳이 얼마나 감상할만한 지를 설명을 뛰어넘을 정도다. 마치 자로 잰 듯, 시선의 소실점을 정확하게 맞춘 원뿔 모양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의 세련된 장엄함, 떡갈나무 숲의 활수함,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도록 그 모습 그대로 탁월한 섬세함을 지닌 분재 화분의 식물들은 그야말로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학교 밖을 나와 100m 정도 걸으면 몇 종의 동물과 세트 놀이터, 그리고 음료수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잡화점이 있다. 아이들은 그곳 때문에 꼭 이곳에 오는 것처럼 필수코스처럼 원하는 음료수를 고르고 키 작은 둥근 나무가 그려낸 그늘 그림이 그려진 작은 벤치에 우리 넷은 나란히 앉아서 목을 축이며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을 구경한다. 그럴 때면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갔던 창경궁의 원숭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원숭이 두 마리, 검은 점박이 흰 토끼, 공작 두 마리, 그리고 남은 비어있는 세 개의 우리, 또 전혀 말할 줄 모르는 앵무새가 전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동물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모양이다. 가져간 간식을 창살 밖으로 내민 원숭이의 작은 손에 쥐여 주는 것이 그렇게도 신기하고 즐거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창살의 간격이 좁아서 큰 간식은 주지도 못했다. 쥐어봤자 창살을 통과하지 못할 게 뻔하다는 것을 애들도 모두 다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왠지 우리 안에 갇혀 지내는 원숭이가 안 됐다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평생 저 우리 안이 전부인 줄만 알고 살 테지, 분명히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았는데 그 정도 영리한 머리를 가진 원숭이들이 얼마나 갑갑함을 느낄까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와 그리고 아이들과 분명히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땀이 나도록 신나게 술래잡기 놀이도 하면서 세트로 된 놀이터를 미로처럼 갖고 노는 아이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그중 한 명이 이제 돌아가자고 말하면 나는 나설 채비를 한다. 아니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에 또 와요. 말하는 애들에게 꼭 그러자고 약속을 한다. 사실 우리가 가는 그곳은 자동차로 20분 정도 달려야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드라이브를 즐겼다는 시간이 되고 더구나 이 가을 녘의 길이 어찌나 보는 눈을 평화롭게 만드는지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날에는 햄버거를 사 먹고 또 어떤 날에는 간단한 간식거리를 먹고, 또 어떤 날에는 정말로 배가 불러오는 게 눈에 띌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또 해가 지기 전까지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자고 조른다. 나는 막내가 어리고 큰 애들도 관심을 떼버리기엔 아직은 좀 어리기에 꼭 함께 나간다. 코스모스가 중간중간 피어있으면 막내는 항상 작은 꽃잎을 따와 나에게 준다. 언제나 공주님이라고 불러주면서. 그러면 나는 정말로 공주가 되어 꽃을 선사하는 작은 왕자님에게 입맞춤을 해 주면서 고맙다고 말하며 애정을 표현한다. 큰 애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 놀이터 모래를 파서 뻔한 함정을 만들어 놓고 마치 누구나 다 속아 넘어갈 거라고 믿는 어설픈 그 함정이 가까운 곳으로 일부러 나를 불러서 정말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고 나는 정말로 아이들이 파 놓은 함정에 한쪽 발을 실수로 빠진 것처럼 하면서 놀라운 척한다.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로 나와 나의 아이들이 주말을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매우 엄격한 엄마이기도 해서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을 대충대충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을 때의 분위기는 정말로 무섭다. 물론 자상하게 대한 후, 그 반대로 엄격하게 대한 후 엄마의 감정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 되지만 아이들은 안다고 알고 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왜 혼을 내셨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왠지 부끄럽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그 행동들이 나쁜 행동이며 다시는 해서 안 될 행동이라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아이구나!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작은 아이의 한글 인지 능력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나와 아이와의 관계는 전보다 더 원만해지고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 아이 사이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과 같고 나와 아이들 모두와의 관계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 여긴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되 헛된 희망으로 고통받지 않고 마음을 비웠으되,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런 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곧 허공으로 꺼져버릴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느끼듯, 그 삶의 역경이라는 것이 미우면서도 노력하고 생각하고 개선해 보라고 부축이는 게 왠지 좋았다. 새벽의 해가 차오르면서 점점 하늘도 넓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대낮에는 절대로 없는 것이며 이 새벽 경험이 없는 사람은 죽어도 볼 수 없는 그런 광경이라서 정말로 의미 있는 풍경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 타고나기를 조금은 바보 같은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상처 주려고 일부러 더 차갑고 냉담하게 굴었던 그런 기억만 생각해내서는 그 사람에게 너무나 큰 아픔을 남겨준 것이 아닌가 하고 괴로워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죄책감이 주는 슬픔이었으며 스스로 내려진 또 다른 의미의 형벌에 대한 흔적과도 같은 상처였다. 사실 힘들고 상처를 받았던 것은 오히려 나인데 왜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에 대해선 고민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밤, 막내를 가장 먼저 재우고 머리카락에서 나는 달콤한 샴푸 향을 맡으며 나도 거의 동시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새벽 시간 오늘, 이번 주에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겠다고 성실한 다짐을 하고 있었다. 이미 새벽 별은 진지 오래고 아까보다 하늘이 많이 넓어져 있었다.


아, 그리고 산책길에서 다소 시무룩한 막내를 부둥켜 끌어안고 왜 신나는 기분이 아닐까 물었을 때 막내가 했던 말이 문득 떠 올랐다.


도토리를 줍겠다고 찾아온 이곳에 기대했던 떡갈나무 대신 신갈나무 열매만 몇 개 떨어져 있어서 가져간 봉지에 아주 조금밖에 채우지 못했다며 실망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었다. 이미 작은 형이 도토리를 주워다 모아 집 베란다 넓은 소쿠리에 말리고 있어서 막내도 그런 형의 노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막내가 주워 담은 도토리를 아주 많이 칭찬해 주었다.


‘사실은 저 작은 열매가 얼마나 큰 가능성을 의미하는 줄 알고 있니? 저렇게 큰 떡갈나무도 전부 다 사실은 이 작은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 거란다. 도토리 한 알은 이 숲을 의미하는 거야. 봐! 엄마는 이렇게 도토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 듯 너희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단다. 어디 봐! 너희들이 얼마나 멋있고 훌륭한 인격체로 자라나게 될지 엄마는 한눈팔지 않고 지켜볼 거야.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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