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들
2019. 09. 07.
좋은 책은 우리를 침묵하게 만든다.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는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당시 여성의 창작에 선입견이 많았던 시절에 20세기 영국의 작가이다. 울프는 의식의 흐름에 대한 장르를 탄생시킨 작가 중 한 명으로 어린 시절 의붓오빠들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로 인한 정신이상 증세로 평생 고생하다가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불운한 운명을 가졌기도 했다. 그녀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뒤, ‘일종의 늪’이라고 말하며 ‘이 책이 있는데 앞으로 더는 무엇을 더 쓸 수 있겠는가!’라며 그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 정도로 ‘만일 내가 만약 저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결코 다시는 위로 올라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잠기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프루스트의 생애가 개인적인 인생 자체를 두고 보았을 때 조금은 불행한 삶이었다는 것을 본다면 아마 울프가 그런 면에서 더 많은 공감을 받게 된 것은 아니었나 짐작된다. 어쨌거나 역경은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킨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 방향이 어느 쪽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지독한 성찰과 고독한 침묵으로 결정된다는 것만 달라질 뿐이다.
2019. 09. 16.
한참 전에 제제는 떠났다. 낭독을 끝낸 지 오래되었으므로 다음 책을 무엇으로 고를까 하다가 시간이 좀 오래 지나가 버렸다. 뽀르뚜가는 살인마 망가라치바에 당해 하늘나라로 갔고 제제는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의 상실감으로 생사를 넘나들었고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밍기뉴를 잘라내 버린다. 제제의 마음속에서. 나는 들키지 않으려고 했으나 낭독하는 내내 울먹이는 목소리와 젖은 눈을 아이들에게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을 닮은 제제, 또 다른 모습을 하고 내 아이들로 나타난 제제는 마흔이 넘은 나에게 여름 한 철 소나기처럼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몸과 마음을 흠뻑 적셔놓고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 던 때.
평년보다 보름 정도 빨리 찾아온 이번 추석에는 미리 집에 다녀오게 되는 바람에 온전한 연휴를 아이들과 보낼 수 있었다. 작은 추석에는 함께 음식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송편 반죽으로 아나콘다, 악어, 개구리, 곰돌이 모양의 송편을 만들었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내가 꿀을 잔뜩 넣어 만든 송편 소 때문에 나중에 쪄낸 송편을 먹을 때 단 것을 싫어하는 둘째가 일부러 소를 넣지 않고 쌀가루 반죽을 그냥 송편 모양만 내어서 마치 정말 소가 든 송편같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냥 흰떡을 먹는다는 기분보다는 아이의 작은 장난과 마음을 함께 먹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명태전을 상어고기 전이라고, 동그랑땡 양념들은 모둠 곤충 튀김이라고 속이는 것이 막내한테까지는 통했지만, 우리 각자는 한나절을 그렇게 우리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고 한 상 가득 차려 놓은 앞에서 제 각자 자세로 사진을 찍은 뒤 정신없이 음식을 먹었다. 배가 차고 살도 오르고 마음도 느긋해진 날을 보내고 추석의 클라이맥스인 보름달을 보겠다고 우리는 각자의 양손을 잡고 나란히 놀이터로 나갔다. 두꺼운 구름으로 가로막힌 달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커다란 보름달을 갖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집안의 전등을 모두 끄고 촛불을 하나 밝혔다.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소박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처럼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큰아이의 소원이 내 소원과 다를 바 없었고 작은 아이들 소원이 우리들의 소원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소원이 아니라 가족의 서로를 위한 소원을 빌었고 비록 자기를 위한 소원을 빌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빌어준 자신의 소원들이 간절하게 이뤄지기를 소망했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밤이 깊어갈수록 하늘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가위 보름달이었다.
2019. 09. 23.
어김없이 돌아오는 학부모 상담, 무슨 일이든 잘 챙길 줄 알고 있는 작은 아이가 상담신청서를 가져온 날 뒤로 이틀이 지나간 터라 큰아이에게 너의 상담신청서는 어찌 된 것인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 상담이 꼭 필요하지 않은 부모님은 상담을 되도록 신청하지 말라세요. 그러다 보면 정작 상담이 필요한 부모님이 상담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알림장에 꼭 적으라고 했어요.”
작은 아이 신청서를 먼저 보내고 아이의 말을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정말로 아이가 진지하게 알림장에 그렇게 말한 대로 적어왔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입장, 선생님의 입장, 그리고 엄마로서의 입장에서 조금은 심각하게 생각했고 이번 학기에는 과감하게 큰아이 학부모 상담은 그냥 넘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아이에게 선생님께는 그렇게 말씀드리라고 당부했다. 솔직히 정작 상담이 필요한 부모는 아이가 가진 문제 자체를 다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상담이 꼭 필요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전화 통화로 끝내버리거나 아예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정말로 대부분은 학교생활을 무리 없이 성실하게 잘해나가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많으므로 선생님과의 상담을 더 절실하게 원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상황의 결론을 큰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최대한 아이를 이해시키고 엄마가 너를 믿고 있고 너의 의사를 존중하기 그 때문에 상담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이야기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막상 상담을 건너뛰자니 석연찮은 부분들이 있었기는 했지만 당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기에 나는 큰아이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에 더 의미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작은 아이의 상담은 정말로 필요했다.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고 계실 정도로 매우 절실했다. 아이의 난독증이 사소한 태도에서부터 많은 부분을 바꿔놓은 것이 사실이며 그 사실로 몇 달간을 많이 좌절하고 또다시 희망적인 기대로 부풀었던지 뒤돌아보면 슬픔과 기쁨들이 교차하던 시간이었다. 선우는 매우 영리한 아이다. 내가 보아도 외모부터 착한 마음씨까지 어디 한 곳을 빼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아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난독증이다. 여기서 굳이 물리적인 요인을 끌려들어 내 아이는 우뇌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외부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마치 기면 상태에 놓인 것 같은 좌뇌로 인해 그런 증상이 선우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 그 문제 한 가지뿐이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공부 잘한다.’라는 기준의 사람은 좌뇌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우뇌 중심의 사고자는 좌뇌 중심보다 감성적이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태도로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전체적인 안목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보다 포괄적이다. 특히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동감할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선우를 보면 정말로 그렇다. 이렇게 훌륭한 내 아이가 난독증으로 기존의 틀에 갇혀 조금은 어렵고 복잡하게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우뇌 중심으로 살아가는 선우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마음과 마음의 소통,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고 수용할 줄 아는 동정적인 마음이 아닐까. 선우는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한 아이였고 지금도 훌륭하다. 과학적으로도 말을 모르는 아기의 요람을 엄마들이,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상관없이, 주로 자신의 왼쪽에 두는 경향이 있는 것은 느끼고 소통하는 감성은 우뇌에서 더 활발히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경우에도 7년이 넘도록 세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돌보면서 왼팔, 왼쪽 위주로 안아주고 보듬고 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논리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경험상, 왼쪽 어깨에 염증이 생겨 물리치료까지 필요했을 정도로 상당히 왼쪽 중심의 육아였었다. 좌뇌 중심의 사고보다 우뇌 중심으로 사고하면 상대를 더 많이 동정하고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사람 간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더욱더 친밀해질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숲을 볼 만한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작은 아이를 포함한 내 아이들 전부를 장차 그렇게 따뜻하고 인간미가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삶의 무게가 너무나 힘들게 느껴질 때는 중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엄마가 흔들리면 가지의 흔들림에 따라 나뭇잎이 떨 듯 아이들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안의 삶의 중심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절실한 이 순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야만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꾸준히 똑바로 나아가며 이를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019. 09. 26.
물까치 한 마리가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날갯짓 없이 창공을 날고 있었다. 양쪽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 새란 자고로 저런 모습으로 날아야 절개와 기품이 있는 것이라 뽐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젊잖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건, 막내를 데리러 가는 퇴근길의 차 안에서 전면 유리를 통해 포착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멈춰있던 앞차가 이동하는 것을 나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물까치의 모습이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BBC 해양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해류를 이용해 넘나들기 수영을 하는 노랑가오리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막내를 데리고 들어오다가 작은 아이가 돌아올 때가 되어서 아예 우리 둘은 어린이 통학 버스 승차장에 나란히 앉아서 막내는 작은 형을, 나는 작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 학교 콜렉트콜 전화로 ‘엄마 나 지금 쉬는 시간인데 친구들이랑 놀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했어. 내가 오늘 저녁에 엄마에게 꽃다발과 다른 선물을 줄게.’ 하면서 신이 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던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마음씨가 착하다. 얼굴을 보더라도 정말로 흠잡을 데가 없다. 운동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감수성도 훌륭해서 가끔 그렇게 나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구슬을 꿰어 팔찌를 만들어 가져오기도 한다.
아이는 학교 수업에서 시장 놀이를 했다면서 아침에 챙겨준 사탕 초콜릿을 판 것으로 조화 꽃 한 다발을 샀다고 했다. 엄마에게 가져다드리면 정말로 기뻐하실 것 같아서라고 말하며 내게 두 손으로 쥔 조화 꽃다발을 내밀었다. 나는 아마 내가 어디로 가든 어느 집에서 몇 살까지 살게 되든지 평생 간직하게 될 꽃다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가을 운동회에 반에서 학년 계주 선수로 뽑히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 학년 중 1등으로 예선을 통과했다고 했다. 참 똘똘하다. 내 아이지만 참 똘똘하고 착한 아이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엄마에게 감동을 줄 수가 있을까 하던 중, 아이는 사탕과 초콜릿을 담아간 봉투에 가득 담은 도토리를 내민다. 방과 후 돌봄 교실로 가기 전에 학교 뒷산에서 뒤, 마당으로 떨어진 도토리를 하나씩 하나씩 모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묵을 좋아하시니까 그것으로 우리 엄마 맛있는 묵밥을 해 드시게 해야지 하고 말했다. 아이가 주워온 도토리는 제법 많았다. 저렇게 많은 걸, 주울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봉지에 한 개씩 담으면서 얼마나 내 생각을 많이 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연하고 부드러운 갈색빛이 감도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살포시 안아주었다.
’정말 고마워 선우야. 선우가 엄마를 정말로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구나. 고맙다 아가야!‘
그 순간, 이 아이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어디에 있을까.
2019. 09. 30.
퀴즈 1. 존재하는 모든 것 중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저녁상에 도란도란 둘러앉은 우리 넷은 입속에 원하는 만큼씩 음식을 채우고 우물우물 퀴즈 내기하면서 정신이 팔렸었다. 작은 아이는 수수께끼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무슨 문제를 내야 친구들이 모두 맞추지 못할까 고민했고 이제 내 차례가 되어 아이들에게 문제를 내야 했었다.
“얘들아! 잘 들어봐! 엄마의 수수께끼는 상상의 초월하는 정답이 있으니까 정신을 딴 데 두면 절대로 맞추지 못할 거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아이들 입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큰아이는 “빛’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낸 퀴즈의 정답은 아니었다. 빛은 물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지만 이 퀴즈에 대한 정답은 아니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조금씩 필요 없는 말을 줄이면서 정말로 진지하게 정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 각자 고민한 정답을 댔지만 모두 오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답을 맞힌 사람한테는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하자 모두 다 답을 맞히려고 고민했지만 좀처럼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힌트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은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다.’라고 했다. 빛은 빠르긴 하지만 아주 작은 먼지에도 맞서지 못하고 꺾여버리지만, 이것은 어떤 두껍고 무거운 장벽도 아무렇지 않게 지날 수 있다고 하자 더 혼란스러워했다. 그런데 그때, 작은 아이가 무심결에 혼잣말했다.
‘아니, 마음속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 퀴즈를 맞히란 말이야.’
나는 갑자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내가 웃자 큰아이는 눈치를 챈 모양인지 뭔가 수상하다는 듯 내가 생각하고 있던 비슷한 정답을 대기 시작했다. 내가 이미 정답은 누군가 입에서 나왔다고 하자 아이들은 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게 어디 있냐고. 그래서 수수께끼를 낸 내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이 수수께끼는 내가 그날 저녁상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문제와 정답이었으니까. 정답이 이미 선우가 말한 말속에 있다고 하자, 큰 애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엄마 나는 알 것 같아. 그건 바로 ‘마음’ 이지? 마음이잖아. 그 순간 나는 숟가락을 상에 내려놓고 아주 크게 웃었다. 아이들이 퀴즈의 정답에 담긴 뜻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답은 큰아이 말대로 ‘마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빛보다 빠른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어쩌면 이것은 수수께끼라기보다는 진리에 가깝다. 결코, 굴절되는 법이 없이 모든 것을 관통하여 어디라도 내달리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 작은 아이는 아예 수수께끼 책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아이 친구의 엄마한테서 동영상을 받고 나서 나는 좀 울었다. 작은 아이가 운동회 계주 연습을 하는 영상이었다. 우연히 학교 봉사활동에 갔다가 선우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보내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손바닥만 한 영상 속에서 같이 겨루는 아이는 내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키도 훌쩍 크고 체격이 컸다. 노란빛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고 흙먼지 보다 앞서나가는 작은 아이의 모습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엄마는 아이가 달려오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엄마니까. 그 순간 내 마음은 그 어떤 장애물도 거슬러서 이미 작은 아이의 마음에 닿았다가 또다시 내게로 돌아와 눈물로 그 대답을 들고 온 것이다. 어쩌면 도저히 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시간이며 속도이자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분명히 느끼고 눈물을 흘린 것이리라.
저녁에 아이가 돌아오면 아이는 분명히 엄마에게 달려와 안기며 이야기할 것을 알고 있다.
‘엄마 오늘 운동장에서 계주 연습을 했어요. 함께 겨루는 친구는 키가 2학년 중에 가장 커요. 꼭 4학년 형아 같아요. 그래도 난 이겼어요. 엄마가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달렸거든요.’
그러면 나는 아이를 살짝 안아주면서 ‘신발은 불편하지 않아?’ 하고 물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무엇보다 지혜로운 것은 시간일지 모른다. 참아보고 기다려보고 지켜보면 어떻게 되는지 꼭 알게 되니까. 시간을 참는 것도 마음 때문이거니와 마음은 도저히 잴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안다면 시간이란 가장 지혜로운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마음으로 느끼고 우리의 마음으로 공유하면서 그 지혜로운 시간을 기다린다. 난독증이 있는 내 작은 아이, 그리고 큰아이와 막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