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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1. 2020

제 10 장

95.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나의 밤 잠은 그대를 따릅니다

오늘 밤도 역시 나는 잠 못들어요

그리움은 인정없이 고단함 모르고

나를 홀로 깨어있게 합니다    

나도 기어이 마음먹고 배우는 사람처럼

책상위 펼쳐진 노트를 치워버렸습니다    

거기에 나는 없고 그대만 있어서

곧잘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며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한 이유입니다    

나는 가장 쉬운 일, 눈을 감습니다

몰입은 오히려 나를 전부 소멸시키고

그대만 완전히 보이게 하는 이유입니다    

웃음이 없는 미소, 낯선 익숙함

얼마만에 그대안에 안기는 것인가요    

나는 오늘 밤, 여기까지만 숨 쉽니다

여기까지, 이제부터 눈 못 떠도

슬프지는 않을 것 같아요    

눈 뜨면 또 다시 보일 그리움에

여전히 잠 못들어 못 견뎌도

오늘 밤 그대품까지만 살아요    

해에게 가장 가까운 구름은 제일 환해도

그 그림자는 가장 무거운 검은색이지요    

그러니까,

닿지 못하는 그대에게 가는 그리움에

오늘 밤 어제보다는 더 괜찮은 거에요    

그러니까,

오늘 밤 눈감고 안긴 그대 품에서

나는 그만 숨쉬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밤은 오늘보다 더 좋을거에요


덧붙임 : 비교의 대상은 늘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를 기준으로 어제와 지금과 내일을 견주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괜찮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삶의 태도와 상태에 비교적 만족스럽다 느껴도 될만하다 생각한다.                                                                                                                                                            

96. 그대의 사랑에게    


당신, 어떻게 그 아픔 감추었나요

허나, 사랑하면 안된다고 말했지만

알고 있어도 거스를 수는 없었을테죠

그건, 신과 사람에게 같은 본질이니까요    

당신 이름, 클리메네여!    

인간을 사랑한 것이 지옥이고

사랑을 인정한 댓가를 끌어안고

사랑의 인내로 고통을 잊어갔어요    

그의 이름, 프로메테우스!    

내 지옥은 그대 사랑이 있는 곳

오직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아도

달려가 안기지 못하는 그대 있는 곳

그곳이 나에게는 지옥이에요    

그래요

내가 사랑에 빠진건 그대 때문이에요

하지만 또, 그래요

누가 사랑앞에 상식을 들이댈 수 있을까요    

사랑이 있는 곳,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흔한 사람은 고개 흔들죠

사실이긴 해도 진실은 아닐 수 있단 걸

그걸 모르는 사람, 나에게 고개 숙여요    

그대가 여전히 지옥에 있다면, 나는

운명에 맞서 받아들이기를 체념하고

그 길의 안내자 비극만 휩쓸어 와도

어떤 곳이라도 맨발로 달려가겠어요    

내 선택이 거기 그곳, 그대라고 한다면

내 마음이 진정으로 가는 것이라면

어떤 비극이라 한대도 중요치 않을테죠    

지성도 사랑의 본능한테 안되고

논리도 그대에게 가는 마음에는 안되고

이성도 내 사랑의 열정앞에 녹아버려요    

가엾은 그대가 내 앞에 찾아왔는데

그대, 그대를 내 밖에서 녹아버리도록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면

나를 활짝 열고 그대 들어오라고 

그리하여 꽁꽁 얼어붙도록 가둔것이죠    

그대가 내 마음속에 살고 있으니

나 가는 그 곳 어디라도 지옥이에요

이제 죽음도 영원한 행복한 지옥입니다  

  

덧붙임 : 클리메네의 네 아들 중 두번째인 프로메테우스는 금지된 일로 고통에 처하게 된다. 죽음인 줄 알아도 빛이 좋아서 뛰어드는 나방은 적어도 그 비극이 우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도 그냥 보고만 있기엔 하늘이 너무 예쁘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못 견뎌낼 정도로 예쁘다.                                                                                                            

97. 당신의 우편 배달부   

 

나 열 다섯, 그 분 처음 봤어요    

나는 그 분 잘 알게 되었죠

유명하니까 이름의 성 'ㅎ' 만 해도

모를 사람은 없는 분이에요    

지금 내 나이를 말하기는 싫지만

당신을 처음 보았던 날 이후,

며칠간을 앓고 난 후 그랬어요    

해결할 방법이 생각난 거죠    

그 분 찾아가 사정했어요    

당신에게 내 마음 알려주고 싶다고    

그 분은 그러셨어요

우편 배달부가 되어 보라고

그러고는 몇 개의 낱말을 적어줬어요    

나는 그 후로, 오직 한 사람

당신만을 위한 우편 배달부가 되었어요    

한번에 꼭 한 개의 낱말만으로 쓰고

마침표 찍는 그 순간 주인은 당신이기에

두번은 읽지 않고 당신한테 가져갔어요    

내 나이는 지금도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아직도 한 낱말만 쓰고 있을 뿐    

혀로 우표는 붙여도 말소리로 내지 않고

썼던 낱말이 수 천가지 넘었어도

그 말 만큼은 쓰지도 말하지도 않았어요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못쓰고 소리내지 못한 이유는

어쩐지 그렇게 하기에는 아까운

당신, 당신을 너무, 너무나도 나는

사랑하고 있다는 걸    

부디 그대, 나보다 먼저 죽지 말길

내 마음의 혀로 붙일 수 있는 모든 낱말

다 듣기를 바라는 것, 오직 그 소원뿐이죠    

나는 지금도 내 나이 말 안해요

열 다섯, 그 때 그 분이 알려주신것만

연애편지로 남는 부산물은

사랑한다 쓰지 않아야 남는다는 것

그러니까 이것만 말 할 수 있어요    

나는 당신만을 위한 우편 배달부    


덧붙임 : 당직을 견디면 다음날 꿀같은 보상을 누리게 된다. 참고 인내하는 것만이 언제나 최선의 방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 여지는 줄일 수 있다. 단점이 지나친 참을성이란 말도 듣지만 내 단점을 단념하고 싶지는 않다.                                                                                                        

98. 거짓말 하기엔 비겁한 사랑    


파도가 거의 없던 날 나는

너의 이름 시험삼아 모래위에 새겼다

끌려가지 않길 바란 소원은 이율배반

느닷없는 파도의 모순에 서글프다    

마른 땅 물 스미듯 빠르게 꺼지고

흔적도 없는 네 이름엔 물거품만 남았다    

사랑과 고통의 나눌 수 없는 마음

진심이라면 아픔도 떼낼 수 없고

시험에 들지만 않는다면 

혼자만 알고 있어도 괜찮다    

그러고 보니, 그와 그녀는

평생 얼마나 가슴 애태웠을까     

감추는 마음은 생각의 소용돌이 

절벽 끝에서 만나는 최후의 웅덩이

바다가 파도속에 교묘히 감추는 것

속 파도, 세상을 거스르는 이안류    

고독한 알리기에리,

일생의 단 두번, 그의 슬픈 포르티나리    

고백하지만, 나는 시인이 두려웠다

내 영혼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을까

시작하면 알아버리고 고통만 받을까봐

걱정하였기 때문이었다    

모래 위에 너의 이름 새긴 건

단념의 의미로써 너를 죽인 것    

나는 바닷가에서 그럴것이 아니었다

어쩐지 여인과도 같은 바다곁에서

어둠속에서 더 간청하게 하고

기다린 사람에게만 온전함 보여주고

한없이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차갑기 그지없는

달의 흐름따라 다니는 바다, 꼭 여인같은데서    

내 마음 어떻게 알고 데리고 가는 건지

바닷가 모래에 파묻히도록 버린 너를

속파도는 내 속마음 전부 다 알고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저 깊은데로

너를 데리고 가 버렸다    

이제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파도 따라가는 너의 이름

손 붙잡고 있었으니까    


덧붙임 : 어떻게 비는 일주일도 참을 줄 모를까. 바다는 반대로 흐르는 이안류를 파도안에 감추고 쉽게 그 모습 보여주지 않는다. 현란한 겉옷 속에 진짜를 감춘것과 같다. 단테는 평생 짝사랑만 하지만 결국 초월적 존재로서 그 대상을 승화시킨다. 바로 베이트리체. 바다는 여자와 같이 달의 움직임대로 흐르고 모양도 바꾼다. 보이지 않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99. 말로 그리는 가을    


나에겐 생일을 여섯번 지낸 아이가 있어요    

아이는 옛날 페르시아 코카서스 사람들이

거룩하다 믿어 따르던 존재가 꼭 말하던

모든걸 뛰어넘는 상대, 꼭 그 어린아이예요    

이렇게 말하는 나를 의심하나요?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스스로가 '나는 무엇에도 믿음이 없어'

마치 억지로 들어야 하는 성사로 들리거든요    

그러면 당신은 이런 말 들어봤나요?

'은행나무는 참 눈치도 없다고,

눈치도 없는게 참 숨바꼭질도 못한다고'    

침엽수림 속에서 지금 혼자 노래진 것

열매 냄새 눈치없이 방귀도 못참는 단 것    

그렇다면 당신은 이말은 들어봤나요?    

이슬도 말라붙은 너무한 한 낮

온 산에 수 백개의 무지개가 걸렸던 것을요

두손모와 감탄하는 어린아이 본 적 있나요?    

나는

어제부터 진짜 가을이 시작된 줄 알아요    

하늘은 거인의 커다란 아이스크림 

소다 향, 바닐라 향 한 데 섞여

'혀로 한 입만 핥아 보았으면'

내 어린아이는 그랬거든요    

그래서 나는 하늘 볼 때 입속에 침이 고이면

이제 진짜 '가을이 왔구나' 생각해요    


덧붙임 : 막내는 가끔 나를 꼼짝못하게 할만큼 놀라운 말을 한다. 노벨문학상을 받는게 꿈인 꼬마, 어린아이, 내 아이는 말을 아는데로 한다기보다 보이는 것을 그냥 그대로 말로 해 버린다. 그게 참 어려운 것인데, 그야말로 아이라서 가능한 모양이다. 참, 사랑스러운 내 아이다.    


100. 아픔은 감추고    


물 속에 작은 돌멩이 한 개 던졌습니다

처음에는 없던 꼬리가 생긴 돌멩이는 

일단 던지고 본 내 눈만 실없이 놀리고 

속저고리 옷고름같은 흰꼬리 흔들면서

안보이는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분풀이로 던졌던 돌멩이에

다시 또 그대 생각이 나는 바람에

물위에 남은 울퉁불퉁한 동그라미

강둑까지 닿아서 없어질 때까지

바라보는 내내 마음 아팠습니다    

그대는 점점 커지는 파장처럼

나 혼자 알아듣는 강물의 말로

그렇게 그랬으니까요    

무거운 아픔은 깊은 곳에 가라앉히고

처음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덧붙임 : 30년전 거의 이맘 때, 추석을 코앞에 둔, 나 열 두살 적에 아버지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그때의 내 나이만큼 자란 큰 아이에게 그 날의 쓰라린 기억을 1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아주 짧게 아야기 하는 중에도 나는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랫집 뒷마당 굴둑에서 키가 큰 흰 연기 기둥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난 그 사고 장면이 너무나 두려워 똑바로 못보고 고개를 돌렸던 탓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날만 생각나면 마음이 아프다.                                                        

101. 그 이야기, 그의 얘기  

  

나는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하나의 낱말만 있으면

하룻밤 한 숨 들지 않게 들려주고

호기심많은 아이를 태양계 밖으로

아직 표시되지 않은 곳까지 데리고 갑니다    

아주 시시한 일을 꼬리 긴 향기처럼 

오래 기억나거나 다시 또 듣고싶도록

누구라도 내 곁에 바짝 붙여 둘수 있어요    

지금 나는

아주 짧지만 한번만 들어도 잊히지 않는

그 이야기를,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자 내 곁에 있는 사람중

난 시작도 안했지만 가슴이 먼저 뛴다면

아마 그 이야기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암담해도, 마음 누르는 책임에도

코 앞에서 숨조차 가로막는 문제에도

이처럼 그런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기만족의 그 비결에 관한 이야기죠    

이건,

그 말고 그녀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실망이 염려되면 안들은 척 하면 됩니다    

꾸밈없는 꾸밈에서는 꽃 향기 날리고

가식 빠진 말소리 계속 들리길 바라죠    

그 여인, 참 잘 차려입었다고 말하는 것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말하고 싶은 건

여인으로서 최대한 무엇도 걸치지 않음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진실입니다    

진실은 단순함, 치장의 벗어남

꼭 자유로 묶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진실은 명백하고

비겁한 사람이 되는건 원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하는데 유리한 날씨란 없어요

꼭 어디를 가야만 유리한 것도 아니지요

다만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그만 있으면요    

나는 이야기를 그만 하려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 이야기와 상관이 있는

그 얘기, 그의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에요.   

 

덧붙임 : 모처럼 나왔다. 오늘부터 나는 이제 앞으로 며칠안에 귀뚜라미가 나타나 울음소리를 내는지 하루하루 셀 것이다. 아! 그리고 이 글은 마릴린 먼로의 명언같은 말 한마디-'나는 잠을 잘 때 CHANEL No.5 만 입어요'- 가 문득 떠올라서 그랬다. 요즘 방향제 만드는 재미에 빠진 탓이다.                                                                                            

102. 진짜 첫사랑  

  

이상하게 잠 못들던 그날 밤

나는 20년이 다 된 그날로 갔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해와 고깃배를 보며

석양따라 얼굴까지 붉어진 나에게 너는

첫사랑은 내가 아니라고 당연하게 말했고

나 역시 네 첫사랑이 아님을 순순히 인정했다    

저녁빛은 아침볕보다 강해도 부드러워

그렇게 바로 보는 눈 아프게 하지 않듯 

어쩌면 너도 그렇기를 바라였나 모른다    

하지만, 그 때 나에게 너는

꼭 첫사랑이라 해도 될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첫사랑을 이룬다는 건

인생이란 게임 규칙을 어기는 것

알면서도 반칙으로 이긴 순간부터

나의 순수함과 부드러운 마음은

하루씩 조금씩 둔하게 굳어졌다    

사실 나 그날 밤은 그날의 너 말고

온통 그대 생각에  잠들지 못했다    

그대를 향해가는 사적인 감정에

방안의 공기마저 엄숙해 진지해지고

내 몸의 끝까지 누르듯 덮어버려서

그 무게는 내 마음을 차지한 그대만큼

벅차올라 숨 가쁘게 했었다    

아프기만 한 것도 사랑은 아니지만

무작정 기쁨만 주는 것도 가벼운 유희일 뿐    

애정에 대한 만족, 기다림을 참는 애절함을 

그대는 나에게 둘 다 알도록 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너의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새벽까지 잠 못든 건 오직 그대 탓이었다    

아침 해는 힘 없어도 바늘같이 날카로와

차갑게 찔러 눈 못 뜨게 하는 첫사랑같아도

잠못 잔 나는 또 채비하고 문밖을 나선다    

아! 부지런한 이 가을 국화야

이슬 속 꽃망울보다 향기부터 서둘렀구나     

잠 못잔 나에게 오늘 밤이 간절한 만큼

국화 향기 지금 내 마음 다 가졌구나    

아! 나혼자만 그대를 독차지 할 수 있다면

한껏 예민해진 몸, 둔해도 영리한 내 코

향기에 온 마음 넘어가면서도 낮게 말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의 사랑은

꼭 그대, 두번째 사랑부터 시작된 것이구나

   

덧붙임 : 돌아가는 것, 혹은 돌아오는 것은 '안정'이라는 말로 묶인다. 그건 편안함이다. 날씨도 정상으로 돌아온 9월이면 좋겠다. 또, 백로가 지나간지도 며칠째 아닌가.                                                                                                

103. 가을 문턱에서    


하룻밤 사이 키가 쑥 자란 하늘

철없는 구름은 아직 정신 못 차려

홑이불 덮고 늘어진 잠 원하지만

부지런한 새벽바람은 성가시게

구름 이불 들춰보고 그 안에 숨은

그녀의 뽀얀 맨 살을 훔쳐보고 싶다    

부드러운 그대 손길은 아이의 숨결

축축하고 비릿한 빛으로 쏟아진다    

물길 못찾은 폭포수같이 무너지는 빛

얇은 구름에 스미면 골짜기로 흘러넘쳐

호숫가에 닿자 다시 부서져 솟아오른다    

물길을 가르며 날으는 텃새 한 마리

다시 갈 길을 정한 것인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바삐 나는구나    

그와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을 

다정한 미소로 새벽 인사하는 그녀는

오늘따라 이런 풍경이 새로와도

가장 그 사람부터, 그 사람부터 보고싶다   

 

덧붙임 : 사람마다 다 그런다. 새벽바람이 차가워졌다고. 나는 말 한마디 안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곧 가을이 올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당장 산부터 얼굴 붉힐 거라고.                                                            

104. 불안한 연인을 두고    


당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와 그대를 알고 있는 그 누군가가

그대 이름 불러 나는 듣지 못한 척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 기분    

이런 상황은 되도록 나 혼자만 아는

은밀한 사랑의 속삭임같이

남의 눈을 피해서 나누는 안타까운

사랑과도 같은 심정이 되는 이유로

묘한 긴장감에 떨려오기도 하지만

이 마음 또 다시 혼자만의 상상일까

걱정이 앞서 울적해 집니다    

턱을 괴고 있어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며

생각하는 사람은 턱을 괴고 있어야 한단 건

꼭 사유하는 전형의 보장이 아닙니다

그건, 오귀스트 로댕만의 고집이겠지요    

연락이 없다고 사랑하는 마음마저 없단 건

사랑하는 마음 여전해도 연락 못하는 

안타까운 사정은 더 큰 그리움탓이란 걸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일인 것이죠    

나 솔직히 말한다면,

어젯밤에도 당신이 많이 보고싶었습니다

꼭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내게 미안하다

보고싶지 않았다고 침묵으로 부인하는 건

설마 설마 아니겠지요    

보잘것 없는 나이지만

당신에 대해서 만큼 누구라도

하찮은 것 이라고 자신하지 못합니다    

지난밤, 당신의 열열한 맹세가

무엇을 감추려는 과장된 어조는 아니겠지요    

나는 당신의 말이 그 순간의 기쁨을

생각도 없이 표현한 방식이 아닐지라도

헛되이 기약하며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조건없이 기다려준다는 건

기쁨인 동시에 미안함을 키우는 가책이니까요    

그래요

내 사랑은 참 어리석죠

아마 당신도 가끔 이렇게 생각하겠죠

나는 그래도 더 이상 덧붙일 말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 사랑하고 있다는 말 밖에는   

 

덧붙임 : 창밖에 서서 나를 바라봐주는 저 날씬한 나무가 고맙다. 그냥 나 이래도 괜찮다고 이파리로 손짓해도 가는 가지 조용히 흔들려도 내 마음 꼭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아서 고맙다.                                                                                                                    

105. 마음이 되는 소리    


아이에게 누구를 가장 좋아하나 묻는건

부끄러운 행동이란 걸 알아야 한다    

마음속에서 상대의 순위를 매기는 것

무척 미안한 일임을 어른은 모르는 이유다    

아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나눌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나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아가야! 엄마 말씀 잘 들으렴'

하시는 것이 꼭 그 이유라고 했다    

포동포동한 장딴지 흔들고 까불며

무척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어떻게 목소리가 마음이 돼요?'    

엄마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나 지금 아픈지, 슬픈지 또 기쁜지를

금방 알아차리는 이유이다    

개구쟁이 아이는 고작 일곱살 

이렇게 쉽사리 어려운 감정을 알까    

비오는 소리에

저 멀리 그 사람도 듣겠지

내 마음 주저앉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덧붙임 : 막내는 아무래도 언어를 타고난 것 같다. 작은형을 이유로 한글을 가르쳐준 없어도 이제 혼자 짤막한 동화책은 쉽게 읽고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하는 중간중간의 질문들은 어쩌면 이 아이를 잘 키워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만든다.           

          

106. 여름이 슬프다는 건    


나 한번도 엎드린 채 당신께 편지쓴 적 없어요

나를 그대가 못 보아도 가장 단정한 모습을

단 한 줄로만 내 마음 글로 적는다 해도

오로지 가장 바르게 적고 적었습니다    

나 사실은 어젯밤 아주 조금 울었어요

혹시 부은 눈을 오늘 당신이 알아볼까봐

일부러 큰 눈웃음을 지었던 걸 알고계실까요    

낮이 되면 해가 나고 달이 보이는 밤 되어도

하늘가에 맨 먼저 그대 얼굴부터 보입니다    

행복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만족할 줄 몰라 실망으로 가득차고

그대 모습 볼 수 없는 시간이 되면

일부러 싫어졌다는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그런 뒤에야 괴로움은 온통 내 몫이죠

하지만 지금 가장 어여쁜 내 모습을 

그대에게 달려가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련한 이 그리움도 못 견디게 아픕니다    

사실은 그대가 알고 느끼는 대로

내 마음 얼마나 깊은지 나도 몰라요

이 고민의 끝은 당신뿐이라는 것 밖에는요    

이토록 정상적인 분위기에서

당신께 편지를 쓰고만 있어도

마음이 두근대는 이유는 한가지 뿐입니다    

만일 그대 마음이 같은 거리면

이 편지를 읽는 곳 아무리 삭막해도

마음 설레 얼굴 붉어지실테지요    

나는 지금도

그대 이름만 적었을 뿐인데

심장부터 떨려옵니다    

아무래도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순종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덧붙임 : 갑자기 비가 쏟아져 그 비를 그냥 다 맞았다. 종아리 치맛자락까지 다 젖고나니, 어쩐지 오늘은 마음마저 서글픈건 여름은 최소한 여름그대로의 자존심마저 지킬 생각도 없는 것 같이 보여서 그런것 같다.                                                                                                                                                        

107. 이별의 결심    


내 사랑은 시작도 없는 결말의 희곡    

끝난 뒤 쓸쓸함이야 내 몫이더라도

나를 보던 그대들에 이 노래 불러주면

깊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한 점의 빛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한여름 노동의 끝에 더운 바람에도

일시적으로 느껴지는 한기처럼

끝날 줄 모르는 당신을 향한 그리운 원망은

실컷 울고 났을 때는 그래도 사랑탓이라고

위안이 되곤 했었지요    

이렇게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는 건

오늘 밤, 이 마음 당신께 전해져

나처럼 잠 못이룬 이유겠지요    

나는 그래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두가지 다 고통스러운 건 한가지죠

계속 사랑한대도 그립고, 어차피

이별로도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는 것    

다만, 어느 선택을 해도 만족합니다

그건, 해 볼 수 있는 건 해 보았으니

사랑의 실패란 처음부터 없는 말

행복의 정점에서 이제 내리막길일 뿐이죠    

그것도 지나고 나니 양심도 안아파요

난 조금도 누구의 비난 겁나지 않고

오로지 내 모든것으로 사랑한 이유로

홀가분한 마음이 될 겁니다    

당신 스치던 그날 , 마지막 모습이지만

마지막 한마디도 분명히 들었어요    

그제야 참 부지런하신 당신이군요

내 마음 이제 느끼시나요?

나 보고싶다 그립다 사랑한다 하신거죠?

난 이제 내리막길도 다 내려왔는데..    

당신 매력은 줄 잘린 오르골 같아라

보름달은 어젯밤 정점부터 기울고

나는 이제 당신 생각에 울지 않고 

다시 빌 소원도 사라져 없으니

보름달 다시 못보아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108. 구름    


너는 언제나 멀리 두고 보아야 보였다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너그럽게도

원하는 모습으로 전부다 변해 주었다    

너의 그런 모습 무척 신기한 아이는

어떤 느낌인지 만지고 싶다며 나를 보채는데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말해 주었다    

볼 수 있기만 할 뿐

만져볼 수는 없는 존재라고    

아이의 소망이 램프의 지니처럼

내 소원이 왕자를 재우는 수메르의 유모처럼

마냥 헛된 것이 아니라면 좋았겠지만

너는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의 눈을 희롱하고 상상력만 자극했다    

멕시코 사나운 흑곰의 얼굴에서 테디베어를

실체없는 용 머리에서 버젓한 스피노를

뭉게진 뭉치를 도데의 스테파네트 아가씨로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뤼르봉 산 목동으로    

너를 대하는 방식은 이렇게 달랐다

나는 너를 볼 때 슬픔부터 번질 때

아이는 상상의 호기심으로 들떴어도

너를 만질 수 없는 건 나에게만 안타까움

쉽사리 낮게 가라앉지 않는 계절이 가까운데

어쩌면 넌 더 높게 여유롭다 도망치겠지만

아이는 원망도 없이 감탄하겠지    

아이는 실체를 다 알면서도 

쉬지 않고 너를 칭찬한다    

'구름은 변신의 요술쟁이

방금 흰 나비 보았는데 어느새 

흰 코스모스 꽃밭으로 변했어요'    


덧붙임 : 이틀 연속으로 비 오지 않은 날씨가 어찌나 신기하게 느껴지는지 그 짧은 산책길에서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치 않으면서도 걷는 내내 계속 하늘을 보며 구름 모양을 점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다지 맑은 하늘도 모양이 예쁜 구름도 아닌데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자꾸만 예쁘다고 말했다. 나는 비가 오지 않는 하늘보다 그렇게 보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하늘과 구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109. 빗물에 진 가을    


가느다란 나뭇가지 바람속에 덩그러니

그 모습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아이는 시원한 방안에 앉아있고

유리창 한 장만 가린 시선의 거리를 둔채

내 마음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엄마! 나뭇잎이 뽑혀 날렸어요

지금은 잎 떨어져 시원할지 몰라도

곧 겨울이 오면 어떻게 할까요'    

무겁고 세찬 빗물 견뎌내지 못하고

반쯤 죽은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도

결국 살기를 포기하고 떨어졌구나    

나는 안다

너 얼마나 이 가을 단풍들기 원했는지를    

처음부터 나무도 마른가지는 아니었고

나뭇잎은 그런 줄 모르고 바짝 붙은거겠지    

저렇게 말 못하는 나무도 사연이 있거늘

이제 막 말문 튼 아이도 느낄 줄 알거늘    

하물며 다 큰 나는 

나 혼자만 아픈 줄 생각도 없었구나    


덧붙임 : 단우는 한번씩 나를 놀라게 하는 말을 한다. 이미 말문이 트였을 부터 문장의 모든 구성요소를 꽉 채워 말을 했고, 한 번씩 굉장히 심오한 뜻이 담긴 말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말을 아이는 그냥 한 말 이였을 테지만.                

                            

110. 곧 죽게 된다면    


곧 죽게 된다고 믿는 사람은

가장 단순한 것에만 힘쓰게 된다    

많은 일을 벌이는 사람은 

바쁜 것을 자랑삼아 말하면서도

정작 그는 골치 아픈 일 가득할 것이고    

필요 이상으로 더 가지려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자신하지만

잃게 될 것을 늘 걱정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바라는 사람은

군중속에 있을 때만 오로지 웃으며

원하면 원할수록 의심만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단 생각은

삶을 비관한다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삶의 태도를 존경해야 한다    

죽음이란,

애초부터 생명의 시작과 같은 것

하지만, 죽음을 달리 생각하는 건

두렵다는 생각자체로 실체도 모르면서

무서운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죽을 준비가 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싶어질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소유 불가능한 것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잃어버릴 이유도 뺏길 이유도 없는 것    

오로지 오늘만이 기억되고

담담한 오늘만이 내 삶이다    


덧붙임 : 이사를 해보니 살림은 최소한 간소하게 꾸려야 한다는 걸 느꼈다. 어디라도 당장 떠날 수 있을 때 최소한 내가 가진 물건들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될 상황을 만든다면 어쩐지 낭비하는 삶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겐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111. 사랑에 있어 믿음의 의미    


오늘 나와 그대는 마주 서 있습니다

우리의 입김은 하나가 되고

세상 무엇보다 따뜻합니다    

나는 알고 그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둘만의 입맞춤이 만든

닫힌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저 멀리 들판을 달리는 나는 보세요

빛을 머금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반짝거리는 강물처럼 흐릅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

나는 그대를, 우리가 서로를 미리 알았더라면

안타까운 벽을 두고 서있지 않았겠지요    

그날 나는 죽었지만 그대는 죽으면 안돼요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주는 암브로시아

죽음으로 가서라도 찾아와 바치겠어요    

어제의 사랑의 증표로 받은 월계수 잎

나는 그대 사랑의 믿음의 용기로써

알페이오스 강물에 내 던졌습니다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

꼭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걸

증표의 의미를 믿음으로 나는 기다립니다    

빗물이 떨어지는 아레투사 우물가에서

내일 나는 혼자 서 있습니다

꺼진 곳 없는 선명한 빛의 푸름

내 용기와 믿음에 대한 보답

그 승리의 잎을 보았습니다    

양쪽 뺨을 저절로 적시는 기쁨의 눈물

작은 수정으로 빗물따라 떨어집니다    

머리결같은 물결이 일렁일 때

모은 작은 손 안에 월계수 잎 담고

내일 나는 그대 사랑의 믿음을

내 사랑의 증표로 입을 맞춥니다    


덧붙임 : 비가 왔고 단풍이 졌다. 바닥을 보니 더 붉고 노랗게 물든 이파리가 먼저 떨어져 있었다. 아직 덜 익은 푸름이 남은 이파리는 이 늦가을 비를 견딘 것이다. 더 뜨겁게 볕을 보고 남은 가을의 시간 동안 잘 익어보려는 안간힘의 노력으로 보였다. 푸른 잎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날씨와 달리 그다지 쓸쓸하지는 않다.                                                                                                                                                

112. 내일도 사랑을 했을 것   

 

최후인 듯 손잡고 쏟아지는 빛

마음껏 지나가라고 자리 비키는 구름

구름 속에 작은 몸 숨기는 나에게

참은 숨은 눈까지 올라와 눈물됩니다    

그대가 무심결에 내 쉰 작은 숨조각

두 번 돌아보지 않았던 그건 나입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키가 크는 나무는 

그대가 내쉰 나를 데리고 가서

열매를 위한 씨앗으로 껴안았습니다    

나무의 지난 날 나는 티끌속의 구슬

그대의 오늘 나는 쓸모없는 먼지

그대가 내 쉬면 금방은 뜨거웠어도

눈속 빛의 눈물에 곧 식어버렸습니다    

오늘 빛 속에는 이슬이 있네요

그 옛날 해바라기꽃이 내뿜는 노랑빛깔

압생트의 환각이라면 어떤가요

이슬에 스민 빛은 마음속에서 꺼진

수천개의 별에 다시 생명을 불 지핍니다    

오늘 선 이 길 끝의 소실점을 향해

은행물들고 단풍물들었습니다

결국, 메타세콰이어 가을물들었습니다    

햄냄새 나는 낙엽 애벌레부터 살찌우고

나는 찬 서리 눈보라에 떨게 될지라도 

내 안은 언제까지 그대라는 집념으로

세실 코트 그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덧붙임 : 가을은 아쉬움만 남기는 것 같아도  곧 들이닥칠 찬겨울을 견디어 낼 소리와 장면을 남겨준다. 한동안 볼 수 없는 것들, 그래서 분명히 어떤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기다릴 것이다. 오늘은 일년에 단 한번 찾아오는 어제와 같은 내일과 같은 소중한 날이다.

                   

113. 다시 돌아오는 것들   

 

가을 하늘은 오래 보지 못한다

연한 푸름에 마음부터 시리는 이유다

이미 약속된 듯 두 눈속 가득 차오른 눈물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두눈 감는다

양 뺨을 물들이는 멍든 푸르른 흔적들

슬픈건 아니래도 때론 아름다움이

마음조차 시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가을 하늘 탓은 아니라는 것

오직 내 안에 있는 네가 해낸 반응일 뿐

벅찬 흥분에 이내 떨고있는 너는

아름다워서 눈물겹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름이 없었더라면

누가봐도 마음 흔들지는 못한다

너는 가을 구름같아서 한번만 보아도

각자의 그대들을 데려다 준다

죽었어도 살아서 오고

떠났더라도 다시 돌아와 있는데

하물며 내 안에 가득찬 너이기에

그 구름 생각만해도 먼저 움터온다    

이렇듯, 가을 하늘 아래에 서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그대가 되어서

이미 타인들 되었어도 아련하다    

나 역시 단 한번은 너에게 그랬겠지

나는 어떻게 변할줄도 몰라

하늘빛 퇴색되어 그 구름 자리 비켜나도

변해가는 마음 탓은 아니라

알아듣는 게 그 뿐이라 바보, 나 같다    

한번 핀 꽃잎이 시들게 된다하여도

모든 꽃은 다시 피어나 듯

가을 하늘도, 구름같이 떠난것도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다는 것    

나와 너, 사랑이 존재 했다면

어느날엔가는 꼭 다시 돌아올

너를 지금 사랑하지 않을지 몰라도

너는 꼭 돌아오고 나 역시 돌아와

다시 우리로, 온 정성 사랑할 것이다    


덧붙임 : 그냥 살고 싶다. 선하게 성실하게 고요하게. 특별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랑이 오면 혼자라도 하고 그래도 하나도 슬프거나 마음이 아플 것 같지 않다. 이 가을 가더라도 이 상태, 이 마음 변하지 말아야지 저 먼 하늘에 약속하고 싶다.                                                                                                                                            

114. 나는 사랑을 합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대는 내 언어의 첫번째 존재

그러므로 그대를 사랑할 수 밖에는 없어요    

차갑게 닫힌 내 영혼에 불씨를 지핀 그대    

나는 우연한 바람에 날아든 넝쿨손 씨앗    

봄부터 여름내내 그 작은 손은 

발을 씻겨주고 겨드랑이까지 구애했지만

나무는 미동도 없이 푸르러만 갔어요    

나무는 그대, 작은 넝쿨손은 나였죠

나무에게 다정한 벗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가을 빛은 곱게 고개 숙이고

나는 쥐고 있던 손의 힘을 뺍니다

다시 처음처럼 나무 발 아래로 웅크려

말라버린 몸 감출 겨울 눈만 기다립니다    

넝쿨손은 상처를 받아도 울지 않아요

상처의 눈물은 또 다른 생명의 근원이니까요    

끝내, 나무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말았습니다    

나무는 여전히 한 마디가 없어요

다만, 

온 몸의 잎을 따서 나를 덮습니다    

넝쿨손은 기쁨의 눈물로 상처를 씻어내고

고운 손이 자랄 봄을 꿈꾸어도 될까요

나무를 다시 한번 힘껏 끌어안을 희망을요    

나는 여전히 평범한 넝쿨손입니다    

당신은 큰 나무, 내 인식의 첫 의미인데

어떻게 내 사랑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나는 잎이 떨어진 나무아래 서기만 해도

봄날의 희망 , 여름의 생명, 그리고

흰눈속 단풍을 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 생각만으로도

내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걸 테지요  

  

덧붙임 : 존재는 그 존재의 가치를 발견한 존재가 있어야 존재한다는 말처럼 내가 느낄 수 있을 때 그 대상도 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러므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나를 인식하고 의미로써 삼고 있는 것들, 즉 그 대상들을 위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범한 것들도 사랑하는 대상 때문에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 이유이다.                                                                                                                                

115. 오늘은 가을    


오늘은 가을이다

가까운 어제들도 그랬고

곧 찾아들 내일들도 그러할 것이다    

가을인 오늘 나는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을 찾지 않는다

나 스스로 풍요한 사람이 되어서

나에게 오는 모든 것에 만족을 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가을에

너를 더욱 더 사랑하려고 했다

길가에 정한 곳 없이 뒹구는 마른 잎도

그러므로 더 사랑스럽다    

신발에 흙먼지 묻어나는 들길 걷겠다

바람이 일으켜 세운 먼지를 맘껏 마시고

봄날 꺽이지 않겠다 언약했던 억새풀

마르고 질겨졌어도 숙인 고개 아름답다    

이렇게 이런데, 어찌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까    

가을은 사랑하는 오늘이다    

하지만 너는

하늘이 왜 멀리 도망치느냐 묻는다    

너 두발로 선 그 자리, 거기부터

더 많은 사랑을 담아야 하기에

공기부터 비워야 그 의미의 물질로

그 거리만큼 가득채울 수 있는 이유라고    

오늘은 구름이 먹색이어도 가을이다

멀리가는 하늘만큼의 거리는 바로

너를 따라 높아지는 내 사랑의 얼굴이다   

 

덧붙임 : 스산하다는 말이 적당한 날이다. 플로베르는 한가지 대상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은 하나의 말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 말의 쓰임과 의미를 최대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날씨따라 마음이 휘둘리는 나이는 아니라 하여도 내 깊은 곳의 감성이 조금 움틀대는 걸 보면 그 감수성에 이르는 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16. 변치않는 사랑    


내 마음이 어떤 줄 나도 몰라서

그 무표정을 너의 냉담이라 여겼다

그러니까 초록은 언제나 차가웠다    

그래서 나는 지난 여름 날

네 밖의 사는 내가 무엇도 못 되어

나조차 나를 내 밖으로 밀어냈었다    

그 후로 얼마동안

너의 요술은 내게 가혹한 현실로

여름밤 은하수마저 별똥별로 쏟아졌다    

내가 바라면 별마저 지는구나    

네 의미로 남지 못하는 그 날들

나는 더욱 더 내가 미워졌다    

못마땅한 것을 가둔 연약한 창살은

물 속에 빠진 잉크처럼 번지고

해는 모슬린 구름을 파고들 듯

부서지기 쉬운 미움이었다    

그건 벗어나기 쉬운 여름

단지 한 걸음 비켜간 해 뿐이었다    

바로 너를 사랑하는 건

마음이 너를 품고 있다는 것

계속 너를 바라보았다는 건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는 것    

결국 그건, 

거리를 두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이제야 보니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그렇게

굉장히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구나    

너도 변함이 없었고

나 역시도 변한것이 없었다    

다만, 오늘은 가을

몸집이 동그란 화살나무 제자리

머리만 붉은 단풍 들었을 뿐이다  

  

덧붙임 :. 질겨지고 말라가는 들풀도, 물을 발아래로 내리는 키큰 나무들도 그래서 져버린 나뭇잎도 쉽게 보기엔 어쩐지 전부 다 애처롭게 아름답다. 가을이 왔지만 쓸쓸해 지지 않는 건 모두가 곧 들이닥칠 찬바람 맞이할 준비에 쓸데없는 데 감정을 낭비할 겨를이 없는 이유이고 그 속사정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마저 붉은 단풍같다. 어쨌든 오늘은 가을이다.                                                                                                                                    

117. 나의 사랑은 바람의 마음대로    


나는 돛이 없는 조각배

바람부는대로 흐르다가

호기심 많은 어린 암초에 닿으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암초는 온몸을 바닷속에 감추고 

머리카락이 간지럽던 어떤 날

그것이 몹시도 궁금하여

까치발을 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등을 기대고

나는 암초를 닻으로 삼고

암초는 잔물결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나는 달을 바라보고

암초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속 우리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바다가 그이같다고 말했어요

나의 숨까지 다 빠뜨릴 수는 있어도

조금도 들어올려볼 수는 없다고    

암초는 그이 이야기에 대답했어요

어쩌면 전부 마음대로 흔들어도

티끌의 흔적도 없는 그것이군요

머릿결 흩어져도 단 한번 못 본 그것    

봄밤이 깊을수록 

달은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또 온전히 나타나면

암초는 더는 까치발을 못참고

나는 펼칠 돛도 없이

암초가 말하는 그것대로

계속 흘러갑니다    

바다는 온화해지고

나는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되겠지요

그리고 다시 이야기 할 겁니다    

또 다른 암초는 다른 이야기를 해도

나는 그이 밖에는 할말이 없습니다    

깊은줄 알지만 그 깊이의 의미는

잴 수 있는 것의 가치는 아닌 것

그이를 따르는 내 마음이 그래요

사랑인 줄 알지만 얼마나 그런 줄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나는 그러므로 바다같은 그이를

지표도 없이 돛도 없는 채로 

그것이 이끄는대로 그저 갑니다    

그것은 

어린 암초의 말대로 바람의 마음이에요    


덧붙임 : 사랑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완전한 주의 집중이다. 그래서 오만한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없다. 만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사랑하면 된다.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118.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별이 졸림으로 눈 깜빡거리는 새벽녘

내일도 잠못 든 눈 뜨고 창가로 가려는 건

오늘마저 저기에 빠지면 어떡할까

나는 걱정하는 마음 탓이다    

어제는 양떼 구름이 저기에 풍덩 빠져서

하루종일 노는 걸 보았었다

해가 낮잠에 눈을 감을 무렵에야

산에 비스듬이 누워 몸을 말리는 걸 보았다    

그럴것이다

나라고 해도 온종일 저기에 빠지면 

온 몸, 힘이 다 빠졌을 것이다    

낮잠을 깬 해가 늦을 무렵

양떼를 몰고 돌아가야지 맘 먹은 그 때

모두가 산 뒤로 넘어가고 나니

낮달이 창백한 얼굴로 쓸쓸하게 빠져있었다    

해는 목동의 일에는 마음도 없던 것인지

양들이 마냥 늦잠자도록 허락한 것인지

낮달 시간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은 탓인지    

그냥 구름인척 하면 된다 생각한 것인데

낮달, 내 모습같아서 가엽고 애처롭다    

너는 양치기 재주도 없는 해

저기에 빠지게 허락만 해도 될 걸

보고싶다는 돌멩이 한 개 던지더니

이 날, 며칠째여도 물결처럼 흔들린다    

놀던 구름은 눈치가 뻔해서

산허리 끌어안고 뛰어들 줄 모르고

이제는 낮 달마저 돌아갔다    

텅빈 하늘가,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지

눈이 시려와서 눈을 감아버리니

잔상으로 남은 건 낮잠에서 깨어난 해

어제의 그 모습만 선명해진다    

그건 온통 붉게 물들어 애만 더 태우고 

오늘은 그 근처도 가지 말아야지

산 뒤에 숨어 있어야지 다짐했지만    

너는 양떼 주인에게 곧 해고될 것

서약한 시간은 아직도 남았는데

그만두라는 통지를 받게 될 해    

너는 미운 사람

싫어할 수 없어서 밉고

잊어버릴 수 없어서 밉다    

차리리 검은양이라도 된다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 버려도

원래 그런 나라고 눈초리도 없겠지    

그러면 나는 

어쩔수가 없어서 네게 빠진척 할 텐데    

그렇지만

미움도 내 감정의 모습이고

그리움 위로하는 것도 그리움 뿐이다    

네 생각 계속 되어질 수록

골짜기 깊고 길어지고 

내 숨, 꼬리따라 길어져 간다    

너와의 거리는 북풍처럼 냉정해질 뿐    

오늘, 해가 낮잠을 깨면

낮 달은 어엿한 아름다움으로

다시 또, 그 자리 지키고 있을 것이다    

미운 사람

너는 내 속에서도 낮잠 한번 없구나  

  

덧붙임 : 나는 북풍이 싫다. 정말로 싫다. 그래서 겨울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난 그 겨울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도 빨리 떠나기를 바란다.                


119. 입맞춤        


너는 내 이성의 눈을 닫히게 하고

마음 편히 잠자던 나의 욕망은

활짝 편 네 날개 품속에 안겨서 

짓누르던 무거운 지성을 벗고 

너와 함께 깃털같이 날아오른다    

언제나 내 시선은 진리만 인정했지

그건 너를 알아보기 전의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 무거움 내려놓고

빛나던 아폴론 두 눈 다 감아버렸다    

보이는 것의 끝은 바로 너의 숨소리

내 귀와 심장에 빛으로 들어와 깃들어

깃털처럼 원하는대로 날아가야지

다시는 시선 안에 갇히지 말아야지

바람처럼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지    

이것은 내가 주어야 하는 기쁨

준 만큼 사라지는 행복은 아니리

끝없이 채워지는 영원의 샘물    

그리하여 나는 

너를 눈으로 보기를 그만두고

마침내 눈을 감았다    


덧붙임 : 가을은 산골짜기 하늘과 가장 가까운 높은 곳, 어린 날 동네부터 찾아와 주었나 보다. 동네 입구부터 아련히 흔들리던 때묻지 않은 연분홍 흰 코스모스가 그렇고 동산의 입벌린 떡갈나무 열매, 도토리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가을은 어린 날 내 동네부터 와서 처음으로 입맞춤하고 세상에 번져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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