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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1. 2020

제 9 장

84. 짝사랑  

  

부딪히기 직전까지 떨어질 때는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모르지만

목소리 무수한 비명 속에 숨고

산산이 부서지던 방울들에

맨 종아리 흠씬 맞으면

어느새 온 몸은 너로 젖어 있었다    

그렇게 적시고 나면은

성미 급한 비구름은 거만하게 

웃으면서 돌아섰는데

내 몸은 뜨겁던 볕아래에서도

한참을 마를 줄을 몰랐다    

축축한 나무 벤치에 앉아서

그렇게 원하던 너를 보고 있어도

조금도 울적한 기분 나아지지 않고

곧 바짝 마를 거야 여겼던 뜻

포기하고 떠났다    

너는 빨리도 변해가는 소나기 같고

한두 번은 다정하면서도 쉽게 냉정해

짝사랑 그대 같으며

기다림에 지친 슬픈 영혼 같았다    

그대는 아무리 다정해도 성난 비구름같이

언제 한꺼번에 빗물 쏟아낼 지 몰라서

내 마음 불안하여 기쁘지 않았다    

거센 빗속에서 온 몸 다 젖어도

그게 눈물 탓은 아니었는데

내 마음 중심 잃고 하늘 따라 흔들린다    

그대 나에게 아주 조금 다정해져도

그렇다고 이제와, 참았던 내 이야기

전부를 말하는 건 싫었다    

그건, 지금 그대 모습보다 나에게서

더 나은 모습을 바랄 수 없는 이유이다    

아무리 빤짝이는 해가 나타나도

높은 산 뒤에 응흉한 모습 감추고

언제라도 가까이 다가와서

세찬 비 무섭게 쏟아 부어버릴 걸

저 먹구름에 속아 넘지 않겠다    

상처의 반복은 너무나 완벽해지고

그대의 다정함도 장마철 해같이

순간이란 걸 잘 아는 이유였다    

그대는 이제 해처럼 웃지 말길

굳은 내 마음 흔들릴 여유 없지만

그렇게 웃으면 상처가 덧나는 법    

소나기는 어쩐지 한결같지도 않은 그대

오는데만 넘쳐나도 정작 눈앞의 내겐

냉정하고 무관심한 그대 같아서

왔어도 오래 머물지도 않고 가버렸다    

밤 중 내린 비는 새벽길 적시고

멀쩡한 얼굴로 평소와 다름없이 가버린

날 울리는 짝사랑 그대 같아라

   

덧붙임 : 간 맞추는데 꼭 필요란 소금도 지나치면 짠 맛보다는 쓴 맛이 더 크게 난다. 나는 지금처럼 돋보이지 않는 적당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85. 그대로의 그녀는    


이 비 끝에 젖은 치맛자락

슬픔 한 가득 얼굴 감추고 

마냥 마음 놓고 울어야지    

바람 같은 그대는 그녀 머리카락도

못 흔들고 가버리니 울 수밖에 없었지    

잠드는 순간까지도 생각했다고 말한다면 

그만큼 바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웃은 만큼 울어야 해도 괜찮다고 했을 거라네    

바람 같은 그대 지나가니 비마저 멈추고

눈물 얼룩진 모습 나타나니 부끄러워 

착한 그녀, 본심 감추려고 웃었지    

끝내 가버린 그대, 다시 안 올 그대

결국 돌아서야 하는 그녀라도

앞으로 참지 못할 그리움 못 견뎌내도

그대 그녀의 전부이던 때 있었으니

더 이상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    

끝없이 그대만 향하는 그녀의 본심

설령 변해버려도 달라질건 없을 테니까    

이미 멀어진 그대라는 것

그렇지만,

언제나 그녀는 그녀라는 것    

이 빗물 멈추면 바람이 와서

젖은 얼굴 말려주고 가겠지

다시 비 온다 해도 걱정하지 않겠지    

비는 위험하지 않고

바람도 무섭지 않다는 것을

한꺼번에 찾아오는 빛을

이제는 의심하지 않으니까.  


              

86. 당신, 참지 말아요    


알고 보면 당신은 힘이 세요

형체는 가는 곳마다 변할 줄 알면서도

그만의 성질은 늘 그대로 남고

티끌마저 받아들일 줄 알면서도

거대한 힘 절대로 과시하지 않아요    

가장 궁금해서 묻고 싶은 건

어떻게 끝없는 저 하늘 지지하나요

얼마든지 주저앉아도 그 누구도

당신 참 나약하다 말 못 할 텐데요    

하지만 가끔은 나도 그러하듯

살다 보면 책임과 의무가 싫증 날 때 있거든요

왜 당신도 그럴 때 있잖아요

살아있으니까, 아무래도 당신에게는

오늘 이 밤이 그런 날인가 보네요    

오늘 밤은 한낮보다 더 소란하군요

아마 하늘은 가장 무겁던 구름부터

내려놓고자 마음먹었는가 봐요

저녁 무렵 검게 부풀어 오른 걸 보았어요

갈라진 틈부터 새 나가기 시작했나요?

한밤중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더군요

아무래도 양보 없는 자리다툼에 화가 났군요

길목을 막아서니 나래도 화가 났을 거죠

지금 이 소리, 이제 누구 고함이 더 큰지

꼭 아이들 철없는 장난 같아 보여요

하늘 가장 가까운 우리 지붕 위에서

왜 하필, 그러고들 있는 건가요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나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들어줄건 가요?

얼마나 더 오래 기다리면 사라질까요

몇 시간째 쉬지도 않고 지칠 때도 됐는데

이 분위기 얼마나 끔찍한지 

그 많던 착한별들 다 도망가고

믿음직한 해도 달도 모습 감추었어요    

아! 

그렇게 성내고 다투고 나면 후련하나요?    

이제 당신도 포기하려는 마음 드는가요

싸움 구경 아무리 재밌다 해도 

지금 오늘 밤, 구경나온 사람 없군요

아마 나처럼 눈만 감고 잠든 척 하겠죠

어쩌면 처음부터 다 듣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 떼려는 거겠죠    

나 지금은 불안해요

저 다툼 길어지면 불편해질까봐요    

차라리 성난 구름 모든 걸 쏟아내면

끝에는 편안해지기는 할까요

나중에는 홀가분히 높이 멀어질까요    

언제나 만져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손닿으니 가까운 것도 부담스럽네요

부탁할게요, 이제는 그만 다투세요

더는 보고 있는 게 불안해요

또 다른 걱정거리 안겨줄까봐요    

하지만, 다툼은 끝난단 걸 알아요

시작했다는 건, 끝내야겠다는 마음

그 마음부터 시작됨을 알고 있어요    

지금부터는 어디 두고 보겠어요

이 다툼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구름 떠받치는 당신, 지쳤다는 걸 알죠

싸움 구경도 다 그게 그것이라

나도 지루하네요 그만 보겠어요

다만, 시끄러우니까 얌전히 화해하길   

 

덧붙임 : 7월은 비만 내렸다. 날씨 따라 우울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차분히 내리는 비가 고맙기도 했다. 왜냐하면, 더위를 모르게 해주었느니까. 그런데 오늘 밤, 마치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그동안 참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하기라도 하듯, 천둥과 번개로 잠 못들 게 한다. 나도 다 들어주고 싶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서, 그 울분을 차분함에 감추느라 얼마나 맘고생 했는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네 맘껏 다 쏟아내길, 다만 그러고 나서는 괜찮아야 된다는 걸, 꼭 그러기를 바란다.  

              

87. 당신 생각할 때    


당신은 지금 단잠에 빠져 있나요

지난밤을, 혹시 나처럼 뒤척인 건 아닌가요

내 생각나서 잠 못 들고 괴로웠던가요

나는 그래요 푹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한 아침

그런 아침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행여 가끔 내게 생각없이 던진 다정한 말은

나의 밤을 평소보다 길고 지루하게 하고

당신이 자주 그렇듯, 내게 냉정할 때는

속상한 고민에 더욱 더 긴 밤이 되었습니다    

사랑과 고통은 불가분한 인연이에요

당신과 나처럼 그럴지도 모릅니다

진심이라고 믿는다면 아픔은 당연하게 

어쩔 수 없다고 믿어도 당신이 안타깝습니다    

나에게 진심이라면 시험에 들면 안 돼요

잔인한 혼돈이며 정돈된 마음 무너집니다    

당신을 따라가는 마음은 해바라기 같아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치장하지 않아서

순수함 그대로고 슬픔도 기쁜 대상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얌전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 없는 수다를 늘어놓을 이유도 없어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을 보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 생각할 때 내 마음 이렇게 아련한데

어떤 이유도 내 침묵에 불평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은 초라하지요, 가진 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실한 마음은 숨길 수 없어요

분명해서 가만있어야 더 잘 느껴집니다    

가식도 없으니 속아 넘어갈 이유도 없어요

당신 생각할 때 나는 언제보다 진실합니다

그러니 그 진심 앞에서 되도록 입을 다뭅니다

진실의 수많은 거짓 얼굴에

성급하게 당신 나를 오해할까 봐요    

누굴 생각하고 있을 때 말이 없어진다면 

이제부턴 속을까 봐 의심하지 말아요    


덧붙임 : 9월이 가깝다. 가만있어도 믿음을 주는 건 시간만 한 게 없단 생각이 든다.                                                                                                                                                    

88. 타인의 계절   

 

날씨가 좋으면 소나무 숲 걷노라니

솔잎 사이로 파고드는 가을빛

내 온몸을 간지럽게 찌른다

그러면 나는 솜털까지 긴장하고

여기가 네 손 잡고 걷던 그 길 같다    

지난날 너의 기억에 의하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전부 똑같은 계절이었다

그건 네 곁에 내가 있었던 이유였다    

너 없는 솔밭길 혼자 걷고 있노라니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이 계절이

너에게 어떤지 몹시 궁금하다    

떠났어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계절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벅찬 계절은 아니길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의 계절이 아니길

그저 또 다른 계절이길 바랄 뿐이다  

  

덧붙임 : 이 가을을 아름답게 보려면 마음속 그 사람이 슬프지 않아야 한다.                                                                            

89. 구름 같은 너  

  

눈에 선명해도 만질 수 없는 너

미로는 아니지만 길을 잃게 하는 너    

형체 없지만 기묘한 그림자도 드리우고

방향 없어도 네가 가는 곳이 길이 되고

고의가 아니라 말해도 오해를 남기면서

준비된 연인이던 나를 애태웠다    

예고 없이 바람을 세 번이나 맞았다고

하고 싶은 말 많다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변명일 뿐

넌 항상 겉모습만 주고 내 전부를 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오래전에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항상 너만 바라고 있으니까

바람의 바람처럼 네 마음대로였다    

내 마음 어떤지 살피지도 않고

고백하고 나면 늘 돌아섰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행동인지

등 돌릴 때 넌 전부를 잊어버려도

그 하나로 내 마음 아팠다고 한다면

미안하다고 할까 봐 나는 그러지도 못했다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듯

그건 아니라고 핑계만 대도

내 모두가 전부 진심이라 해도

늘 자유처럼 가벼운 너는

텅 빈 아련함을 아름다움이라면서 

자신하고 나를 내내 아프게 했었다    

내 앞에 자주 나타나더라도

이제는 눈길 한번 주고 싶지 않다  

  

덧붙임 : 가을이 왔다고 성급하게 말하는 건 여름이 태풍을 연거푸 세번이나 맞은 탓이고, 아직도 남은 바람을 겁내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아무리 변하고 계절이 지나가도 나는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다.   

 

90. 달빛 창가에서  

  

한밤중 이유도 없이 잠에서 깨면

저는 맨 먼저 창문부터 열어놓았습니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그리하였습니다    

때마침 차오른 달빛에

은은한 은빛 치마를 두른 여인 같던 내 방

내 창은 부끄러움이 뭔지 모르는지

제 몸을 뼈까지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창마저 저리도 마음 풀어 놓으면

초저녁 단잠에 드는 이유를 알고 있어요    

달빛의 시선이란 그런걸요

가장 먼저 비바람 맞던 창가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

곤한 잠의 숨마저 새어나지 않도록

보듬어준 탓이었던 것이죠    

솔직히 창문은 아무리 밝은 빛에도

제 창살을 쉽게 드리우지 않았습니다    

이 밤, 어쩐지 고요하다 느낀 건

먼지까지 품은 저 달빛의 시선에서

지난 낮, 그대의 눈빛을 보았던 이유입니다    

다정한 미소도 차가운 표정도 없이

마치 숨마저 참고 있는 것 처럼

저를 바라보는 그대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분주한 곳이라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대의 시선이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운 마음 다 사라지겠지 하던 것을요    

이 밤 은빛 치마를 두른 달빛의 울타리

아마도 그대는 저와 같은 곳에 있지 못해도

하늘가 오른 달을 보고 있는 이유겠지요    

그대가 아끼는 저를 그리며

저 달빛에 얼굴 환해진 이유겠지요    

이 밤, 창문 그림자만 보았어도

지난 낮 저를 바라보시던 그대의 시선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덧붙임 : 달이 찼다. 밤이 환했고 나는 초저녁부터 잠들었다가 여러 번 잠을 깼지만 조금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던 그런 밤이었다.                                                                                                                                            

91. 기다리는 여인   

 

마중 준비는 한참전에 했는데

나는 아직 한 걸음도 딛지 못했습니다

그대 오고 있는지 궁금해도

나는 등허리 여전히 꼿꼿합니다    

이럴 때는 부는 바람도 내 눈치를 보고

길가의 풀잎도 사그락거리지 않습니다

행여 내 마음 설레게 하면 안된다고

키만한 작은 창, 까치발로 쉬이 보아도

가만히 참는 건 쉽지 않다 아는 것이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창으로 들어와

늘어지게 기지개 펴면 희미해지고

내 마음도 흩어져가겠지 짐작했겠지만요    

하지만, 그것이 그대의 본심은 아니겠지요

나는  저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의 치마폭

길어질수록 여전히 처음 그대로 있습니다    

해가 지나면 달의 순서가 돌아오듯

나에게도 그대를 기다리는 일은

그래요, 운명같은 것

그래서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꽃잎 져버리고 애처로이 가지만 남아도

설령 그대는 영원히 침묵으로 말해도

나는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이유를 알아야 해요

아득한 침묵에 애타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 왜 나는

견딜 수 있는가를요.    


덧붙임 : 바라보거나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시간을 견디는 것이 기다림이다.      

                  

92. 타인의 계절    


날씨가 좋으면 소나무 숲 걷노라니

솔잎 사이로 파고드는 가을빛

내 온몸을 간지럽게 찌른다

그러면 나는 솜털까지 긴장하고

여기가 네 손잡고 걷던 그 길 같다    

지난날 너의 기억에 의하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전부 똑같은 계절이었다

그건 네 곁에 내가 있었던 이유였다    

너 없는 솔밭길 혼자 걷고 있노라니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이 계절이

너에게 어떤지 몹시 궁금하다    

떠났어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계절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벅찬 계절은 아니길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의 계절이 아니길

그저 또 다른 계절이길 바랄 뿐이다    


덧붙임 : 이 가을을 아름답게 보려면 마음속 그 사람이 슬프지 않아야 한다.                                                                            

93. 영원한 이 순간    


난 항상 간절히 바래

너에게 더 해 줄 수 없을까

그러니까

난 항상 마음이 분주해

너를 곁에 두고 싶을때 오면

내게 남은 시간이 코 앞에 보여

너를 타인으로 보내야 할 까봐

그러니까

그 땐 난 초조해져    

두려운거야

시간이 두려운거야

정말로 그날이 오는 건 아닐까    

너도 그렇겠지만

슬퍼 울고 약해진 마음 불안하여

잠못들던 가련한 지난 날들    

그래, 나도 알고 있었어

그래도 가장 아름답던 날을

먼저 끌어안아 주길 바래    

그러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품안에 꼭 껴안아

바쁜 몸 쉬게 하면서 그렇게    

아, 호라티우스!

그의 말 화살처럼 마음에 찔려도

이런 고통쯤이야 담담히 웃고

이별의 그날 벌써 슬프다 않고

단조로운 너를 껴안아야지    

그러니까, 나는

지금도 네 생각 하고 있나봐  

      

덧붙임 : 확실히 가을이 왔다. 하늘을 자주 보내 내게 친구는 나이 탓을 하며 자신은 땅을 쳐다보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하늘을 자주 보게 되는 건 그냥 저절로 눈이 갈 정도로 온화해 보여서 그럼 그 순간, 단 몇 분이라도 마음 까지 편안해지는 이유라고 말하고 나서 나는 웃었다.


94. 다시 돌아오는 것들    


가을 하늘은 오래 보지 못한다

연한 푸름에 마음부터 시리는 이유다

이미 약속된 듯 두 눈 속 가득 차오른 눈물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두 눈 감는다

양 뺨을 물들이는 멍든 푸르른 흔적들

슬픈건 아니래도 때론 아름다움이

마음조차 시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가을 하늘 탓은 아니라는 것

오직 내 안에 있는 네가 해낸 반응일 뿐

벅찬 흥분에 이내 떨고 있는 너는

아름다워서 눈물겹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름이 없었더라면

누가 봐도 마음 흔들지는 못한다

너는 가을 구름 같아서 한 번만 보아도

각자의 그대들을 데려다 준다

죽었어도 살아서 오고

떠났더라도 다시 돌아와 있는데

하물며 내 안에 가득 찬 너이기에

그 구름 생각만 해도 먼저 움터온다    

이렇듯, 가을 하늘 아래에 서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그대가 되어서

이미 타인들 되었어도 아련하다    

나 역시 단 한 번은 너에게 그랬겠지

나는 어떻게 변할 줄도 몰라

하늘빛 퇴색되어 그 구름 자리 비켜나도

변해가는 마음 탓은 아니라

알아듣는 게 그뿐이라 바보, 나 같다    

한번 핀 꽃잎이 시들게 된다 하여도

모든 꽃은 다시 피어나 듯

가을 하늘도, 구름같이 떠난 것도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다는 것    

나와 너, 사랑이 존재했다면

어느 날엔가는 꼭 다시 돌아올

너를 지금 사랑하지 않을지 몰라도

너는 꼭 돌아오고 나 역시 돌아와

다시 우리로, 온 정성 사랑할 것이다    


덧붙임 : 그냥 살고 싶다. 선하게 성실하게 고요하게. 특별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랑이 오면 혼자라도 하고 그래도 하나도 슬프거나 마음이 아플 것 같지 않다. 이 가을 가더라도 이 상태, 이 마음 변하지 말아야지 저 먼 하늘에 약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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