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가까이에서 시작한다. 소외된 일상이 그 특별함이 되는 것도 다
2022. 2. 2. 수.
내가 출근할 무렵, 아파트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거의 정확하게 마주치게 되는 시간,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월요일 특히, 그 주의 첫날에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첫 계단을 선뜻 밟을 수 없는 건 언제나 마른 뽀얀 수건 한 장이 깔린 이유이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더러워진 신발을 미리 털고 가라는 뜻으로 융단처럼 깔린 수건은 내가 신은 신발 밑창으로 밟아버리기에는 너무나 깨끗한 것이어서 또 일 년 내 어떤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무심코 깨끗한 수건을 밟았을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리고 어쩐지 일견 그 두 분의 연세가 나의 부모와 비슷해 보이는 이유 때문에라도 흔한 수건 한 장 밟는데도 솔직히 마음 한구석 미안함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여느 날과 매우 비슷했던 그 날 아침에는 특히 다른 아침과 달리 더 조심히 바닥에 두 발을 꽝꽝 굴러 미리 먼지를 털고 수건을 최대한 비켜 디뎌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 하면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었다.
아파트 주변을 깔끔하게 청소하고 계시던 그 두 분, 그 장소를 매일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어쩌면 자신들이 꾸며놓은 깨끗해진 환경으로조차 스스로 소외되는 그분에게 유난히 내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그 분이 내 부모와 같이 나와 같은 자식이 있는 또 다른 이의 부모라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며 또 다른 건 어차피 또 다른 누군가로 인해 더럽혀질 바닥일지라도 최소한 나 한 사람이라도 그분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수건 한 장이 때 묻어버리는 그 흔한 일상을 특별함으로, 그리고 거의 언제나 청결한 환경이 보이지 않는 그 분의 새벽의 부지런한 수고에서 시작된다는 중요한 시작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날은 또 월요일 아침이어서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 청소를 하셨으리라.
나는 외치고도 싶었다. 그렇게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쉽게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우리들의 시선에서 소외되어 가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내 가까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소외된 일상이 특별함이 되는 것들 전부다가.
“너희들! 이렇게 자꾸만 나 울리면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주말을 잘 보낸 일요일 늦은 저녁, 우리는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집안까지 말끔하게 청소를 끝내고 기다리는 새 일주일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거야 전부 다 내 계획에 불과한지라 세 꼬마는 여전히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씨름 아닌 씨름으로 거실을 뒹굴고 있었고 내 방의 침대를 들짐승처럼 단숨에 뛰어올랐다 내렸다 반복하면서 특별해 보이지 않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내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식의, ‘나 화장실 갔다 올게’의 투로 “나 토하고 올게”를 말하고 안방을 나가버렸다. 그러기도 채 1초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거실을 미처 지나가지도 못하고 그만 토를 참지 못하고 종일 먹은 음식을 모조리 거실 바닥에 토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나 토하고 올게’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것이 불과 몇 초전인데 아이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상태는 아니었던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어 보는 나마저도 그 미열의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컨디션이 별로인 듯 보였다. 아마도 놀란 던 것이 아이를 그렇게 보이게 했을 것이리라. 형들은 ‘윽’ 소리를 지르면서 거실을 피해 달아났고 나는 위액으로 흠뻑 젖은 막내를 화장실로 들여보내 홀딱 벗겨 더운물로 씻기기부터 했다. 한기를 느낀 탓 인지 아이는 약간 부들 부들 떠는가 싶더니 옷을 입고 이불속에서 다시 발그레한 입술이 되어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이렇게 구토 한 번으로 끝나는 간단한 체기였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끝나자마자 나는 거실, 그 거실이 생각났다.
“너희들 당장 창문 다 열어! 그리고 휴지, 비닐 봉투, 물티슈 가져와!”
나는 거의 단호하고 엄격하게 명령하듯 말했다. 토사물이 어른도 치우기가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이해가 되면서도 뒤로 내빼는 두 놈이 괘씸하기도 하면서 어쩐지 동생이 아픈지 전혀 걱정도 없어 보이는 큰 녀석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면서 나는 상당히 면적이 넓은 거실을 닦았다. 또 닦아내고 또 닦아내기를 몇 차례하고 나서 환기까지 다 되었다 싶어 시계를 본 것은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난 열 한시가 넘어 자정이 가까이 있었다. 막내는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한 것인지 청소를 다 끝낸 내 뒤에 와서 ‘엄마, 죄송해요’ 말하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거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나는 “괜찮아?” 되물어 확인 후 이제 늦었으니 자자고 하면서 다시 몇 시간 전인 그 평온한 이른 일요일 저녁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아이들도 제 각자 잠들 곳으로 돌려보내고 집 안의 전등도 완전히 끈 후였다. 나는 잠 들었다 얼마나 있다가 깬 것인지 평소 평일의 기상 시간과 비슷한 새벽, 아직도 깜깜한 거실로 나왔다. 이제 진짜 일주일이 시작되어 약간은 긴장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거실 창으로 새벽 달빛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어젯밤 아이가 토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깨끗하게 청소를 해 둔 탓인지 거실 바닥에 별이 뜬 듯 반짝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대로 거실에서 가장 작고 어두운 등을 켰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어둠에서 시력이 덜 돌아온 내 탓이라고만 믿고 싶던 순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작은 발 모양의 발자국들이 빛에 반사되어 온통 반짝거리고 있었고 그 발자국은 웅덩이 모양의 거실을 중심으로부터 내 방을 제외한 현관, 작은 방, 아이들 방, 그리고 부엌까지 모두 총 총 총 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잠든 불과 그 몇 시간 사이에 대단한 사고가 벌어졌음을 직감했고 그것은 스미지 않는 미끄러운 액체가 쏟아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광경이어서 나머지 모습들은 굳이 눈으로 볼 필요 없이 충분히 상상만으로도 심증이 가능한 광경이었다. 글쎄, 이 녀석들이 엄마가 잠든 틈을 타서 거실에 뭔가를 들어다 붓고 무슨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하!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손으로 슬쩍 닦아보니 내 손바닥에 묻어나는 건 분명히 기름때였다. 그래! 이 미끄러운 액체는 기름이다. 이 놈들이 기름을 퍼붓고 여기에서 밤새 무슨 짓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주저앉아 버렸다. 울고 싶었는데 울 수가 없었다. 출근, 월요일, 출근 시간! 울지 않았고 나는 최대한 평온하게 아침을 맞았고 마침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어 등교하지 않아 늦게까지 깨우지 않은 아이들 방문을 살짝 열었다. 하! 이번에는 정말로,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1.5리터 식용유 한 통이 거의 빈 통이 되어 아이들 침대 바닥 옆에서 그 선명한 상표를 내보이면서 마치 흰 치아를 다 드러낸 맑은 아이같이 해 뜬 얼굴로 버젓이 나를 보면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아니, 그 순간은 나에게 그 모든 궁금증이 단 1초 만에 풀려버리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은 순간이기도 하면서 그 플라스틱 식용유통마저도 조롱하듯 비웃음거리가 된 절망의 순간이기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불, 이 악당 놈들이 덮고 자는 이불에도 반짝반짝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로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출근, 월요일. 출근 시간. 하 아~~~! 긴 호흡을 하고 나는 외쳤다.
“야! 이 놈들아! 일어나~~~~!”
당연히 새벽에 잠이 들었겠지. 누구 하나 이 엄청난 고함에도 눈을 뜨지 않았고 그 악당들의 발바닥 손바닥을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나는 두 번째로 더 큰 고함을 질렀다.
“누구야? 어떤 놈이야~~~~?”
아! 출근 시간. 누가 건들면 당장이라도 펑펑 눈물을 쏟을 찰나, 가장 큰 악당 놈이 한다는 말이 글쎄,
“엄마! 괜찮아요?”
나는 거짓 반 실제 반 섞인 울음소리를 냈다.
“야 이놈들아~!”
꺼억꺼억하는 나를 보며 이 가장 큰 악당 놈이 또 한마디 거든다.
“거봐~! 엄마 울잖아”
온 종일 ‘기름때 청소’,‘기름기 제거’ 같이 연관검색어 베이킹소다, 기름 청소 걸레를 검색하느라 정신을 팔려 지나가고 월요일의 그 흔한 월요병 증세도 온데간데없이 온통 ‘어떡하면 그걸 치운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일이 터지고 나 하루의 반절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을 때 나는 또 다시 그 악당들이 저질러 놓은 사건의 현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악당들은 감형을 받을 모양인지 반성문을 쓰는 것과 유사한 행위로써 면죄의 요청을 하려고 청소를 한 듯 보였으나 그것을 결국 기름때를 온통 사방으로 더 번지도록 만들어 일을 더 어렵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분노했던 그 반나절 전의 감정은 사라지고 어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가방을 내 던지듯 하고 거의 속옷만 입다시피 한 뒤 베이킹소다를 확 악~ 뿌렸다. 그것은 일종의 무언의 화풀이, 이 악당들에게 할 수 없었던 화풀이라 약간의 감정의 정화를 불려 일으켰던지 아이들에게 청소포를 꺼내 쥐어 주며 최대한 온 집안의 구석구석을 닦으라고 명령하고 지시했다. 그건 그 사건을 저지른 악당들에게 내가 내릴 수 있는 즉흥의 형벌이었고 그나마도 사건의 발생 시점으로부터 이미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지남으로써 판결의 주체인 나의 감정이 상당히 이성적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이 반영된 매우 가벼운 처단이었다.
‘이 놈들! 만일 오늘이 일요일이었으면 니들은 진짜... 아!“
대충 마무리가 되는가 싶어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여덟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금욕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은 영혼뿐이라고 했던가. 이 악당들을 데리고 살려면 나는 금욕적이어서는 안된다. 육체적인 힘을 키워야 이겨나갈 수 있다. 그래야 고함이라도 치지. 나는, 그리고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 정말로 배가 고팠다. 냉동실에서 돈가스를 꺼내 프라이팬에 올려 가스 불을 최대한 올렸다. 아무 생각도 없이 식용유를 붓는데 ’아하!‘, 그 시간에 마트에 달려가 식용유를 사다가 바삭하고 고소한 돈가스를 차려낼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내 속의 큰 악당이 작은 악당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는 것에 통쾌한 한 방 먹일 작정에 기분이 고무되기까지 했다.
’이 악당들! 어디 한번 당해봐라!‘
나는 찬장에서 고추기름을 꺼내 달궈지고 있는 뽀얀 돈가스 위에 그 새빨간 고추기름을 전부 다 들이부었다.
’이 놈들! 식용유 부을 때 이런 두려움 섞인 재미가 있었겠지. 어디 한번 고추기름 맛 좀 봐라.‘
이건 내가 내리는 두 번째 형벌과도 같은 것이리라. 어쨌든 청소를 거든다는 벌은 너무 과소 판단된 경량의 벌이었으니까.
”엄마! 돈가스가 왜 이렇게 빨개요?“
”원래 빨간 돈가스야! 먹고 싶으면 먹고, 아니면 맨밥을 먹든가.“
나는 그렇게 커다란 밥숟가락을 입속으로 넣으면서 일부러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들고 천정의 등불을 봤다. 매웠다. 맵지, 당연히, 안 매우면 고추기름이게, 아! 그런데 이 악당 놈들은 매운 것도 잘 먹는다. 원래 빨간 돈가스라고 하니 그런 줄로만 알고 너무 잘 먹는다. 이건 형벌도 아니다. 어쩐지 또 이 작은 악당들한테 또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나서, 그 주의 끝, 토요일 오전, 한가로이 커피 한잔을 들고 책상 앞에서 책을 읽던 나는 참다 참다 못해 울분을 터트리고 말았다. ’조금만 조용히 할래?‘라고 백번 말했을까.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서 왜 이렇게 서럽지, 나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아니었던가, 저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 고양이같이 동물이었던 말인가. 이번에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났다. 그래서 참지 않고 울었다. 이번에도 반은 거짓을 더해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너희들은 사람도 아니야. 개 고양이 같아‘ ‘하면서. 그 순간 아이들은 조용해졌다가 옥탑방으로 자리를 옮겨 단 1분도 안 지나 다시 쿵쾅쿵쾅 웃고 떠들면서 놀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내가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개나 고양이일까?‘ 그런 의문마저 들면서 반은 거짓으로 울던 눈물을 닦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뒤 한 2~30분 뒤쯤 막내 개 고양이가 내 옆으로 와서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올린 뒤 귀여운 소리로 야옹야옹 멍멍거린다. 아니 정말로 그 지경이 되면 그렇게 들리고, 또 그렇게 듣고 싶어 진다.
”엄마! 근데 아까 왜 울었어?“
글쎄, 이렇게 물어보면서 야옹야옹, 멍멍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야! 너희들 두고 봐! 이렇게 자꾸만 나 울리면 나도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혼내주라고 무섭게 혼내주라고 일러바칠 거야! 나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어. 이 나쁜 꼬마 악당들아!‘
막내가 토하고 난 날밤, 아이들은 엄마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1.5리터짜리 식용유를 거실에 붓고 스케이트를 탔다. 열세 살, 열 한 살, 여덟 살, 이 사내 녀석들은 엄마가 막 청소를 끝낸 거실에 식용유 한 통을 다 붓고 그렇게 셋이서 새벽이 가깝도록 맨발로 스케이트를 타며 엄마 방을 뺀 온 집안을 기름 발로 점령하면서 은밀하면서도 공포감 섞인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재미를 맛보았을 것이다. 정말이지 완벽한 세 꼬마 악당들은 거실 바닥에서 식용유에 불이 붙기 직전까지 완벽한 슬라이딩을 수십 번도 더 했을 것이리라. 안 봐도 뻔하다. 지금도 이 작은 악당들의 불장난은 끝나지 않고 시시때때로 내가 사람이랑 사는지 아니면 내가 진정 사람인지의 정체성에 혼동이 올 정도로 나를 웃기고 울리고 또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