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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Oct 30. 2022

프롤로그


    

2022년

성층권 아래 여전히 분주한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잠을 자지 않고 지낸 지 5000일이 지났다. 그러나 내가 지내고 있는 이곳의 시간이란 먼지의 티끌과도 같은 그것으로 생각하기에 따라 눈 한 번만 깜박거릴 정도의 찰나의 순간일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블랙홀에 빠진 상태와도 같이 정지된 것과도 같기에 이 사실을 거짓말이라고 치부한 거라고 혹시 믿는다고 하더라도 섣불리 놀라게 된다면 곤란하다. 나는 잠을 자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제 더는 잠을 잘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미 내 몸은 이전의 만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형체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생각하며 글을 읽고 글씨를 쓰고 또 가끔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존재로서 죽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 산 사람들의 꿈과 상상 속에서 있는 존재 정도로 그렇게 여겨도 좋다.   

   

   사람이라면 영혼과 육신이 깨어 있어야 살아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산 사람의 논리로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미 그곳에서 육신이 소멸해 버린 나는 더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오게 되었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생각 속에서 존재하는 환상과도 같은 것이기에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이 무한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가끔 나에게 찾아왔던 고통과 시련들이 떠오르지만, 그때 힘들다고 느꼈던 일들이 이제는 얼굴을 스치고 간 바람과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쨌든 시간이란 기억 속에서만 멈춰 있을 줄 알았지 언제나 나와는 상관없이 무심코 지나가 버린다는 서운함을 느껴본 적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혼만으로 삶을 이어가는 나와 육신이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나는 분명히 같은 사람이다. 단지 그 과정 중에서 삶의 가장 커다란 반환점이 되는 죽음이라는 상실을 경험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죽음이란 심지가 다 타버린 양초와 같은 것으로 마지막 불꽃이 저 자신이 녹여버린 촛농에 파묻혀 꺼져버리듯 나 또한 내 인생 전체를 지배했던 육신에 자라던 작은 암세포에 의해 온몸 전체가 사멸하게 되면서 죽음을 맞이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마치 전혀 없는 이야기를 꾸며낸 그것으로 생각하면서 가볍게 웃어넘길지는 모르나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작지만, 누구보다 강했던, 짧았던 만큼 열정적으로 살았던 한 여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 굳이 거짓으로 꾸며내어 사람들에게 억지스러운 감동을 선사할 마음까지는 없으므로 - 기록해 보고자 한다.      


   만일 누군가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생의 규칙을 어기는 것과도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성이란 누구나 죽기보다는 살기를, 곤궁하기보다는 풍족하기를 원하게 되어 있으므로 만일에 원하지 않은 미래를 미리 보게 된다면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변수를 찾아낼 것이며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 자체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삶이 정해져 있기만 하다면 재미없는 것일 테지만 이것 또한 순리를 거스르게 되는 것으로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순수한 인생의 질 자체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비록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지만 부디, 지금도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에게 죽음을 경험한 자로서 한 가지만 조언을 부탁한다면 상처받기를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그것보다 사랑하고 상처를 받는 것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작은 도전이라도 시도조차 해 보지도 않고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포기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시간 낭비를 하면서 살아온 사람인지를 설령 죽은 뒤에야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이미 흘러간 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임을.     


   그리고 두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죽음이란 이 세상 그 어떤 이별보다도 상실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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