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은 화요일이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어야 하는 평일이었지만 19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라서 공휴일로 바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출근준비와 아이들 등교준비로 부산을 떨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비교적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아이셋을 온종일 집안에서만 본다는 것이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는 것을 몸소 터득한 터라 아파트 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막내만 데리고 들어가 투표함에 기표된 용지를 아이 손을 빌려 넣은 뒤 우리가 가려는 노선에 있는 내 근무지로 차를 몰고 빠져나왔다.
올 1월에 신축 청사로 이전된 파출소는 인근에는 아직 미개발 지역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지는 폐가들이 삼면으로 줄지어져 있고 우리 조직이 쓰는 말로 우범취약지역에 적의하게 잘 지어진 비교적 세련된 건물이다. 정면에서 오른쪽에 있는 분리수거대 옆 공사할 때 시멘트 관을 절반으로 잘라 약 50센티미터의 키 높이 맞게 땅속에 파뭍어 놓은 수로가 좁다랗게 나 있는데 거기에 어디에서 온 건지 짐작이 안되는 참개구리 한 마리가 갈피를 못 잡고 뒷다리로 쭈그리고 엉덩이로 털썩 주저 앉아 있는게 아니던가. 책속에서 말고는 실제로 개구리를 볼 일이 많지 않은 요즘 아이들에게 이처럼 신기한 구경거리가 또 어디 있을까, 아니나다를까 아이 셋은 이 귀한 생명체가 당장 어디로 달아나 숨어버릴까봐 염려되었는지 두눈은 최대한 동그랗게 뜨고 자세를 낮춰 놀랍도록 숨을 죽여 개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참개구리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정말로 두꺼비 등치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몸집을 하고 특히 터질듯한 유난히 빵빵해진 배가 개구리의 넓적다리를 짓눌러 개구리 최대 무기인 폴짝 폴짝 뜀뛰기마저 어렵게 보였다. 논 바닥에 시원하게 싸 놓아야 할 개구리 알을 뱃속에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임신의 만삭을 지내본 여자로서 순간 한낱 개구리에게 동정심이 생겼고 어떻게 해서든 그 시멘트 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발을 굴러 몇 번의 겁을 주니 다행히 개구리 특유의 본능으로 최대의 도약을 하여 마침내 수로에서 탈출했고 풀섶으로 무거운 점프를 이어가는 뒷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아이들조차도 경건한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며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물 웅덩이를 잘 찾아서 품었던 알을 시원하게 낳고 지금은 날씬한 배로 폴짝 폴짝 잘도 뛰어다니고 있을 그 참개구리를 상상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 는 말에는 잘 되고 나면 과거의 어려움을 쉽게 잊어버려 겸손하지 못하고 젠 체하는 사람이나 기성의 질서가 나쁜쪽으로 변하게 되는 세태를 비난할 경우에 쓰는 속담이다. 하지만 파출소 시멘트 수로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던 개구리를 보고서 꼭 언제나 올챙이가 개구리만 못하다는 법은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상처나 부스럼같이 아픔과 고통을 의미하며 어려움을 대변하는 올챙이 시절을 잘 이겨내고서 개구리로 재 탄생되면 아픔은 잊혀지고 지난날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서 개굴개굴 합창을 하며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과거란 지나고 나면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웠던 일이라 할지라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혀 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이겨낸 자신을 미화하는 식으로 변모시켜서 심지어 자신조차 어려웠던 시간을 망각해 버리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올챙이만도 못한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출근길, 내부망 메일을 체크하면서 청에서 내려온 서한문을 훑다가 적절하게 공감이 되는 글 귀에 눈이 멈춰졌고 내 생각은 내 지난 날 한켠의 메모장속으로 달려갔다.
[이런 때 일수록 '아홉 길 산을 쌓는데 삼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헛된 일이 되었다'의 가르침을 되새겨....]라는 문구에 인용된 구인공유일궤의 부분에서 서경(書痙)에 나오는 '위산구인 爲山九仞 공휴일궤 功虧一簣'라는 말이 내 기억을 한번씩 가두는 주역(周易)의 마지막 두 궤 ' 화수미제 火水未濟' 궤처럼 그 의미가 일맥상통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속에서 땡 땡 종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꼬리를 적신 여우'처럼 미완성을 뜻하는 것, 청장님이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다 잘 된 밥에 재 뿌리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가 됐던 건 내 지적 능력의 부족함에서 비롯한 편견의 소산탓이었을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에서 갈피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재의 내 심리를 그런식으로 의지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결국은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후의 성과와 그 맥락이 같다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은 90리까지 왔을 때부터 그 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故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수로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참개구리도 비슷한 처지로 동면도 잘 지나왔고 힘겨운 짝짓기로 뱃속에 알들도 가득히 잘 잉태해서 산란만 하면 되는 직전에 길을 잘못 들어 자신의 생사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에 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잘못한 것일까. 나도 거의 한달 동안을 사생활의 갖가지 어려움을 핑계로 글쓰기에 내 마음과 정신을 적극적으로 쏟아 내지 못한 게으름을 피웠던 것이 사실이고 한 편 한 편씩 써 갈때 마다 과연 최선의 집중으로 온 마음을 다해 표현해 냈던 것인지 그래서 제법 자족하는 마음에서 긴장감을 내려놓는 심정으로 맨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어 왔던 것인지, 그것들은 정작 '여전히 부족한 미완의 것'들이 아니었던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없는 광활한 대지에서 엄청나게 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글로 쓸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가며 그것을 기록하고 또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겠다는 내 남은 희망이 거대한 회호리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기분이 든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마치 새총모양의 Y자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에 올라탈지 갈등만 하고 있는 바보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은 마치 본연의 나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로 보여지기를 과시하는 허풍만이 마치 남아 있는 요란하고 가벼운 빈 깡통같은 내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부끄러움을 감출수가 없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세 아이의 엄마로 마흔의 전형적인 아줌마가 된 나의 지적 수준이 아직은 건재하다고 여전히 감퇴되지 않았다는 자만심에 빠진 사람이었다. 오히려 모성애를 바탕에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갖가지 경험에서 온 충분한 영감까지 보태져서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더 기민해져서 대상과 사물들을 정확하게 알아가게 됨으로써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해가 되면 비로소 자유로운 지적 사고방식을 터득하게 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결국 이 모두다가 내 삶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행위라 여겼던 믿음은 확고한 신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완전한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 중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방황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내야 하고 반드시 밝혀 내야만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극복해내야 하며 갈림길에서의 망설임 따위는 허락할 여유가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수준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오만함이고 감정의 사치일까봐, 어쩌면 처음부터 나란 존재는 영원히 개구리로 될 수 없는 기형을 타고난 올챙이가 아닐까봐 두렵다. 또한 내가 지나왔고 걸어갈 길에 최선의 노력으로 살아왔지만 이 순간 공허하고 허탈함만을 느끼며 도대체 끝을 모르는 타인의 이기심에 또 얼마나 실망을 하고 체념하기를 반복해야 하는건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사실이란 이렇게 갈피를 정하지 못하고 난관에 빠져 갈등하는 자에게 가장 최선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목표를 향해 망설임없이 곧장 전진하는 것이 이 순간 최선의 진실임에도 의도적으로 피하고만 있다는 나 자신한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괴로운 걸 알면서도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없는 나 자신,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과 어쩌면 내가 가질 수 없는 미완의 궤가 가장 아름답다는 진실을 직시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허영심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