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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은조연]
제29편. 명과 암

누구나 알고 있는 삶의 밝고 어두움에 대하여

by 김현이

막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내 몸을 흔들어서 뇌 속으로 겨우 찾아 들어온 평화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것 때문인지 순간 들이닥친 두통으로 머리가 깨져버릴 듯이 아프다. 한밤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시간이며 그렇다고 새벽녘이라고 여기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이다. 3시 10분이 막 넘은 시간, 그 때 남편은 술도 마시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귀가를 했다. 늦었다는 내 말에 별다른 대꾸도 없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정신을 온전하고 맑게 회복하고 있는 상태로 남편의 그 ‘할 말’이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말인지 이미 들은 사람처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 되어 다시금 벼랑 끝으로 내 몰린 사람의 심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말을 안다. 왜냐하면 남편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 아주 잠깐 잠이든 사이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놀라울 만큼 신기를 발휘한 사람처럼 꿈속에서도 남편은 그 시각에 귀가를 해서 내게 지난 일 년 동안 스무 살의 젊은 여자를 만났다고 너무도 태연한 고백을 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화를 냈던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체념한 마음으로 마음의 평정을 지키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바로 옆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는 것으로 내 심정을 대변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마누라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연락을 하지 않는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국이 다 식어갈 시간이 되면 그제 서야 헛된 마음을 접고 음식을 코앞에 둔 기다림으로 몇 배는 더 허기가 커진 애들 배를 불려주었다. 그렇게 집 안에 어둠과 함께 고요가 찾아오는 네 시간 정도가 지나가면 다시 남편의 이부자리를 내 놓아 말끔하게 펴 놓았다. 마누라는 이제 예고도 없이 늦어버리는 남편에게 기대를 갖는 것은 허황된 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날에 마누라는 ‘내가 집안일과 아이들에게 손을 완전히 떼버리기라도 한다면 우리 집은 아마 지금쯤 형체도 없이 공중의 공기처럼 소멸해 버렸을 것이다.’라는 화풀이를 해 보았지만 남편은 그저 그것은 일시적인 넋두리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반복되는 푸념에 오히려 짜증이 늘어만 갔을 것이다. 마누라는 ‘왜 나만’ 이라는 언제나 피해의식 속에 갇혀서 좋은 것을 좋게 못 보는 심각한 마음의 병을 키워나가고 있었고 한편 남편은 건강하지 못한 마누라에게서 찾을 수 없는 싱그러움을 철부지 스무 살 여자한테서 발견하고서는 자연스럽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것이었다. 이것으로써 이 지구상에 잘 버티고 서 있던 한 가정이 결국에는 해체되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침대에 누운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눈만 뜨면 곧바로 보이는 반대편 건물 옥상 너머로 보이는 푸른 빛깔의 하늘을 보았다. 온 종일 무엇인가를 하고 아침에 눈을 떴던 그 자리에 같은 자세로 누워서 네모난 모양으로 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걷힌 밤하늘에서 가벼운 푸른 빛깔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렇듯 가을이란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근사한 날씨가 계속되는 계절이다.


며칠 전 양손가득 너저분한 짐들을 들고 막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퇴근길에서 옆집에 사는 부부를 만났다. 언제나 인심이 좋고 사는 모습이 소박하여 대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더군다나 자녀를 두지 않고 있던 부부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해 주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남달리 신뢰가 가기도 했었다. 그날도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봉지 속에 담겨 있던 포도를 세 송이를 꺼내서 들려주시는 게 아니던가. 셋이라는 숫자엔 그 부부만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삼형제의 내 아이들을 염두 해 둔 것이라고 늘 짐작해 왔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 이렇게 직접 농사를 지어서 철마다 옥수수며 토마토, 고추 등 맛을 볼 수 있도록 나눠 주는 그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항상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의 표현을 잊지 않도록 일러두었고 오늘 저녁에는 귀한 포도를 후식으로 내어 줄 수 있어서 내 마음도 한결 뿌듯하던 참이었다.


작은 포도알 속에는 단우가 삼키지 못하는 포도 씨가 많게는 4개까지 들어있었다. 나는 일일이 그 씨를 다 발라내어 단우가 한 입에 삼키기 좋도록 포도 한 송이를 거의 다 까서 그릇에 담아 놓았다. 단우가 하얀 손가락으로 흐물흐물한 연둣빛 포도 알을 집어 입속으로 쏙 집어넣는 것을 보면서 어릴 때 집 안에 포도나무가 있던 풍경이 머릿속을 스쳤다. 포도송이가 매달리는 담벼락 쪽으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따먹을 수 없도록 담장을 높이 쌓아 올리거나 가시덤불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그런 모습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특유의 욕심이 만들어낸 풍경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나만의 오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 포도주를 특산물로 내 놓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어릴 때 우리 동네의 풍경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심지어 그곳에서는 길가에 심은 포도송이에는 행인들이 아예 손도 댈 생각을 하지 않도록 회백색 석회가루를 듬뿍 뿌려 놓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포도가 와인으로 되는 과정에서 석회가루도 한꺼번에 숙성이 되어 맛좋은 술이 된다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단우는 그날 저녁으로 밥보다는 포도 알로 배를 채웠고 이렇듯 9월이란 특별히 포도만이 누릴 수 있는 전성 계절임을 또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거의 석 달 만에 아이들에게 한 낮 야외활동을 시켜줄 수 있었다. 한 낮의 찌는 무더위는 물러가고 그야말로 이제는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당장 하늘의 구름만 보더라도 제 몸을 무겁고 두껍게 모으고 모으는 여름철과는 달리 저 멀리 멀리 흩어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니 보는 눈에 부담이 없어졌고 하늘과 맞닿은 산꼭대기 능선은 점차 뚜렷한 경계를 보이며 마치 뒤편에서 비추는 빛이라도 있는 듯 푸른 자연광을 발산해 내면서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을은 마치 허름한 차림의 허기진 노인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융숭한 대접을 해 줄 수 있어서 만족해하는 착한 사람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왔다. 며칠 전 일기예보대로 비가 정말로 딱 맞춰 내린다. 여름장마처럼 세차게 내리지 못하고 바닥의 흙이 동그랗게 뭉쳐질 정도의 양만큼만 내렸다. 그래서 흙냄새가 올라왔다. 이 정도 양의 비라면 분명히 자동차도 먼지자국으로 얼룩져 있을게 뻔했다. 무엇이든 할라치면 대충대충 이런 식의 흐지부지한 상태는 내 기분을 조금 상하게 만들어 놓기 마련이었다. 착한일과 마땅히 해야 될 의무를 완수 했을 때 보상으로 백 원, 이백 원을 받는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큰 아이가 가끔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네 반 누구누구는 아빠가 혹은 엄마가 만 원짜리 두 장을 학교 갈 때 주신다고. 내 입장에서 아이 독단적으로 소비를 했을 때 그렇게 큰 액수를 지불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만한 큰돈을 왜 주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돌아오는 아이의 대답은 고작 아이스크림 값, 핫도그 값, 떡볶이 값으로 쓰라고 받는 용돈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어떤 날에 동생이 자기의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백 원을 받게 되자 큰 아이의 ‘야! 백 원으로 뭐 할 수 있는 게 있냐!’는 이 한 마디로 작은 아이가 낙심하던 날도 있기는 있었다. 그럼 지금 내 나름대로의 아이를 길들이는 방식인 백 원, 이백 원 교육은 지금 막 내린 비처럼 쓸데없는 흙냄새만 풍기고 자동차를 한결 더 더럽게 보이게만 만들 뿐 아무런 감흥이나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래도 지금 각자 몇 천 원씩을 모아 놓은 것으로 아이들이 곧 물들어갈 세속적인 이해관계로부터 당분간은 보호할 수 있는 여지로 보상 받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요즘 세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허한 백 원의 가치가 내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값어치 있는 존재로 남겨지지 않을까.

사실 나는 어릴 적에 무척 빈곤한 환경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움 속에서 먹고 자랐다.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새 원피스를 입고 나타날 때 엄마는 낡은 천 조각을 모아 손수 지은 원피스를 입혀 주셨고 미장원에서 예쁘게 파마머리를 하고 왔을 때는 풍성했던 머리숱을 예쁘게 땋아 화려하게 묶어주시곤 했었다. 다른 친구들이 일정간격으로 찾아오는 학습지로 공부를 할 때 내게는 대학 다니던 삼촌이 가져다 준 양장본으로 된 아주 진귀한 책으로 셈을 배워 나갔다. 이렇듯 내게 가난이란 나의 꿈을 좌절시키거나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던 조건이 아니라 나의 꾸준함과 참을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처럼 내 아이들이 비슷한 빈곤함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좌절의 순간에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키우기는 싫은 엄마의 입장을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 할 수 있을까 새삼 의문이 들 뿐이다. 하기야 지난번 소풍에는 나도 만 원짜리 한 장을 큰 애한테 주고는 너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고 하자 친구가 못 사먹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기가 미안해서 친구들에게 함께 사줬다면서 돈을 다 써버렸다고 말을 하기는 했었다. 이쯤 되면 나도 내 편견이고 장애인 고집에 어떤 자세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선의 진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굳이 악을 끌어다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인지를......

새벽 녘, 나는 꿈을 꾸었다. 꾸었다고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내가 일어나야 하는 6시가 되기 몇 분 전이었고 정상적으로 수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탓에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현기증이 났다. 단우의 알림장에 어젯밤 아이가 했던 말을 쓰면서 내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달님을 보고 온다면서 베란다로 나가더니,


“엄마, 달님이 안 보여~ 어디로 숨었지?”

“단우야, 이쪽 저쪽 잘 찾아봐~!”

“엄마~! 달님이 안 보여. 밤이 되어서 무서워져 집으로 갔나봐!”


이것이 정녕 이제 막 세 돌을 지낸 아기가 할 수 있는 말인가 그 내용을 적고 있으면서도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다. 지난밤 아이가 보러나간 달님은 사실은 낮에도 밤에도 항상 하늘에 떠 있는데 다만 우리 눈 사이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는 싫었다. 사실과 진실이 과연 양립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누가 보아도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들어맞는 사실과 아직 아기인 단우가 믿고 있는 진심 사이에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충족할 수 있는 진실이란 없는 것일까.


분명히 오늘 밤에도 단우는 달님을 보러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 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오늘 그런 아기를 두 팔로 들어 안아 달님 쪽을 가리키면서 지금은 자야할 시간이라 구름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있어서 안 보이는 것이라고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도 달님처럼 잠을 자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잠이 들면, 나의 세 아이들이 잠이 들면 나는 또 다시 내 몸 전체를 엄습하는 거미 떼 같은 악몽에 시달리며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비는 완전히 그쳤고 또 다시 얼굴을 드민 태양이 젖은 흙을 재빠르게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 그리고 저녁때에도 계속 비가 내리면 큰 아이가 우산을 들고서 마중을 나와 있겠다고 했다. 빗방울 같은 눈물방울이 또르르 구르기 전에, 누가 알아보기 전에 닦았다.



2017. 9. 5.(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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