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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은조연]
제 28편. 수렁에 빠진 날

누구한테나 한번 쯤 그런 날이 있잖아요

by 김현이

글쓰기를 시작하여 결말을 짓고 <끝>이라는 글자를 쓰기까지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꼬박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퇴고의 과정은 정말로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오늘로 2주일째 오탈자 검색 및 문맥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백지에 글자를 써내려 가는 것보다 그 일은 몇 배는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미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었던 부분을 또 읽고 또 고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 글에 대한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점점 자신감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나는 슬럼프라는 수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은 누구라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내가 썼던 글을 단 한 개라도 읽어본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나의 고뇌를 한낱 사춘기 어린애의 일탈정도로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내 자신한테는 심각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내게는 진심으로 좋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어릴 적 나갔던 백일장 대회에서 한두 번 상을 받았다는 것으로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자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설령 작년 도교육청에서 주관했던 초중고 학부모 독후감대회에서 단 한번 금상을 받았다는 사실로 증명했다고는 자신할 수는 없었다.


먼저 처음으로 장편소설이라는 것에 도전하기 전에 준비운동처럼 단편소설을 써 보았었다. 사실 그 내용은 내 생활의 일부가 많이 섞여 있었고 분량도 길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다만 이전의 수필 위주로 글을 썼던 때와는 달리 무엇인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점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을 속여가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소설은 말 그대로 허구가 들어가 있는 fiction이어야 했다. 써지기는 했어도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거짓말을 써야하는 내 자신에게 결국 양심의 가책까지 느끼게 되었고 그 감정을 맛 본 뒤에 급기야는 어떤 것이든 무엇을 쓴다는 것에 두려움까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내게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 편이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누구의 진심어린 칭찬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누군가의 열정적인 응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본연의 의지에서 나온, 무엇보다 정말로 좋을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온 용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6월의 중순부터 미친 듯이 한 곳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정도로 내 자신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이 못 마땅할 정도로 힘든 날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거의 마라톤 수준으로 달려서 <끝>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나서 느꼈던 감정이란 ‘아! 그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다시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7월 25일, 어쩌면 나 혼자만의 세계에 묻혀서 그냥 이대로 잊혀 지게 될지도 모를 내 생애의 첫 장편소설의 퇴고 1차 과정을 마쳤다. 나는 두 번째 퇴고 과정에서도 지금 겪었던 것과 같은 슬럼프를 겪고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내 소질과 능력을 탓하며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내 노력의 부족함에서 오늘 결핍으로 생각하여 더 많은 자극을 받을 것이라고 마음을 먹고 있다. 어쩌면 또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고 방어막을 미리 쳐 둔 사람처럼 변하게 된 것이다. 그냥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지나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뜬구름 잡는 사람처럼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서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내 꿈이 결코 이뤄지지 않게 될지 몰라도 지금 내 아이들에게 매일 매일 조금씩 또 다른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결코 이 꿈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는 이 길이 곧 또 다른 내 자신과의 힘겨운 인내심 싸움의 시작임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그렇게도 원하는 길이 이 길이라면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이 된다고 할지라도 꼭 상처만이 있는 길이 아닐 것임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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