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 여기 읍사무소인데요 할머니께서 지도에 스티커 붙이신다고 하시는데 지금 스티커가 없어요. 어떻게 하죠?”
‘아! 내가 지도만 게시해 놓고 왔지 스티커를 함께 갖다 놓는 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구나.’
“아~ 네. 반장님, 죄송하지만 할머님께 사시는 곳이 어디신지 여쭤봐 주세요. 제가 빨리 스티커 가지고 갈게요.”
2분기 집중요청기간이 시작되고 내가 읍사무소에 지도를 가져다 놓고 딱 이틀이 지난 뒤 처음으로 받은 전화였다. 처음에는 나 자신도 이런 행동들이 그저 보여주기 식일 뿐 얼마나 실효가 있을까 믿음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스티커를 찾는 사람이 있다니 나도 모르게 어깨를 한 번 들썩거렸을 정도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급한 김에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들고 옆 초등학교 앞 문구점으로 갔다. 예상대로 내가 찾는 스티커는 없었기에 ‘참 잘 했어요.’가 아주 귀엽게 써진 동그란 스마일 스티커를 몇 장 들고 읍사무소로 달려갔다. 총무팀의 서무반장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눈짓으로 민원인 대기용 쉼터에 앉아 계시는 어느 할머니 쪽으로 안내해 주셨고 나는 가볍게 목 인사를 하고 그 쪽으로 걸어갔다.
“할머니, 저 파출소에서 왔어요. 스티커 붙이시려고요? 사시는 곳이 어디세요?”
나는 아예 할머니께서 앉아 있는 3인용 민원인 의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할머
니의 말씀을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올해로 나도 경찰관이 된지 12년째가 되었으니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나에게도 파출소에서 외근 조끼를 입고 112 순찰차를 타던 시절이 있었다. 김현이 순경. 충남 보령경찰서 주포지구대. 내가 처음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했던 곳이다. 주포면이라는 제법 넓은 면적을 관할하고 있는 지구대로 그 아래 마을마다 치안센터를 따로 두고 있었고 그 중에도 내 관할은 굴 단지로 유명한 천북면이었다. 그 때 나도 출근을 하면 관리반장님께서 팀별로 나눠주신 노란색 순찰 카드를 수첩에 끼워 넣고 마을의 중점 위치마다 설치된 담뱃갑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초록색 순찰함에다 ‘00월 00일 00시, 00지구대 김현이 순경 다녀갑니다. 불편하시거나 어려우신 점은 언제라도 지구대로 000-0000로 연락주세요.’라고 쓴 순찰카드를 넣고 다니던 것이 그날 근무의 시작이었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3월에 첫 발령을 받았고 여름이 오기 직전 도로의 가로수 이팝나무의 꽃이 떨궈낸 미세한 꽃가루가 뿌옇게 흩날리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으로 보아 그 때도 딱 이맘때였으리라.
“김 순경, 낮에 전화 왔었어. 00리에 사는 할머니신데 김순경을 찾으시던데 어떻게 아시는 분이야?”
“글쎄요, 저는 여기에 아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는데요. 누구신지 처음 듣는 분이세요.”
‘혹시, 내가 넣어 놓고 온 순찰카드를 꺼내 보시고 정말로 연락을 주신 것인가.’
나는 정말로 며칠 뒤에 그 할머님 댁에 찾아갔다. 양철에 진한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지붕에 나지막한 벽돌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안의 모습이 아담하고 깔끔하게 청소되어 정리정돈 된 곳에서 통 나무로 깎아 만든 마루 끝에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소쿠리 앞에 마님 다리를 하고 앉아서 무엇인가를 가려내고 계셨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나는 그 할머니를 거의 주기적으로 찾아뵈었다. 나 또한 낯선 곳에 덜렁 떨어져 나와 많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고 그 할머니는 소위, 읍에서 관리하시는 ‘독거노인’으로 오랜 세월을 홀로 외롭게 살아오신 분이셨다. 대부분 확인하고 찢어버렸을 그 노란색 순찰딱지조차 반가움으로 다가올 만큼 많이 고독하신 분이셨던 것이다. 나는 그 뒤부터 할머니를 찾아갈 때마다 최소한 천 원짜리 사탕 한 봉지라도 들고 가게 되었고 그 때마다 조장님께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하고 말씀하셨지만 찾아가는 우리에게 뭐라도 내어 주시던 할머니를 빈손으로 뵙는 것이 죄송했고 고향집에 계실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났기에 그저 별 다른 뜻은 없었다. 하다못해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서한문이라도 있으면 직접 들고 가 읽어드리기도 했다. 사실 그 할머니와의 인연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파출소 근무 3개월을 끝으로 경찰서 내근으로 발령이 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 ‘어디 다니시는데 무서운데 있으세요?’ 여쭈었고 할머니는 ‘아니, 내가 저기 외딴 집에 혼자 사는데 요새 집 주변에 하도 공사하는 데가 많이 생겨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도 큰 차 들 때문에 좀 무섭고 시끄럽고 안 그래도 흙길인데 땅이 푹푹 꺼져 있어서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라......’ 계속 하셨던 말씀을 또 하셨다. 나는 우리 파출소에서 할머니 사시는 집 주변 순찰을 더 많이 돌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할머니는 이야기를 끝내려는 생각이 없으신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잘 약속을 드리고 뒤 돌아 나오면서 할머니는 경찰관이 집 근처 순찰을 해 주시는 것보다 오히려 말동무가 더 필요하실 지도 모른다는 조금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 돌아 오늘 길 할머니를 집 근처까지 모셔다 드렸고 나는 파출소로 오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내가 풀어야 할 한 가지의 숙제를 했다는 만족감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탄력순찰, 사실 말만 바뀌었을 뿐 10여 년 전의 그 순찰표와 무엇이 달라진 걸까.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주민의 어려움과 궁금증을 보다 가까이서 해결해 드리고자 하는 목적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7월경 시범운영서로 지정되어 탄력 순찰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나 또한 대부분의 직원 분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다 똑같지 뭐, 그거 아니겠어. 언제나 말만 바꿔서는. 솔직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하고 뭐가 달라.’ 이런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었고 그 뒤로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물론 나야 직접적인 담당자는 아니므로 이 일을 대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으로 조금은 더 비판적일 수밖에는 없었다. 당장 나만하더라도 경찰관이 어디를 순찰 돌아줄까 하면 우리 집 근처 순찰을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경찰이기는 하지만 파출소의 전반 행정업무를 맡은 내근이다. 솔직히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대부분을 보내는 외근들의 경우는 나보다 더 많이 비판적이다. 아무리 실질적이고 필요한 업무라도 이미 기저에는 ‘탁상공론’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고 그나마도 그 결과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만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의지마저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분들을 비난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도 경찰생활의 반을 지역경찰관으로 근무를 해 온 사람으로서 충분히 그 속사정이 수긍이 되고 왜 그런 쪽으로 생각이 흐르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현재 일선에서는 탄력순찰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의견을 들어보고자 계장님을 모시고 온 서무 반장님을 보고 나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무리하게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관내를 파악해온 대로 우리가 정한 기준, 1순위, 2순위 장소를 정해 놓고 그날의 순찰 일정을 작성하여 외근 분들께 드리고 있다고.
이것은 고백 축에도 들지 못하는 마치 배우의 독백과도 같은 것이지만 나는 이미 한 번씩 그 할머니 댁이 객관적으로 봐서 마땅한 1순위가 아님에도 한 번씩 더 1순위 순찰 장소로 지정해 놓고 한 번이라도 더 그 집 쪽으로 우리의 순찰차가 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왔었다.
탄력순찰, 말 그대로 유연하게 해야 잘 이어나갈 수 있다. 너무 당기면 뚝 끊어지고 마는 고무줄의 탄성처럼 탄력 있게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 탄력순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관리반이지만 근무자가 없을 땐 순찰 현장에도 나간다.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순찰 팀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면 ‘이번 년에는 아무리 못해도 성과등급 B는 받을 수 있게 해야지요.’하고 웃으면서 순찰 표를 건넨다.
우리는 경찰의 가장 낮은 곳이지만 주민의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운데서 만날 수 있는 만능 가제트와도 같은 지역경찰관이다. 아무리 잘해도 잘했다는 소리 듣기 어렵고 우리 스스로로 애초에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으며 ‘잘해봤자 중간이다’는 생각이 이미 굳어져 있는 어떻게 보면 소외받는 지역경찰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대가를 받는 적이 거의 없더라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며, 가끔은 투덜투덜 대더라도 내가 맡은 일이라면 절대로 손 놓고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마땅한 일을 해 내고 있는 지역경찰관이다. 경찰관에게 끊임없이 들리는 무전기 소리가 마치 침묵과도 같이 익숙해지듯 주민들의 탄력 순찰 요청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 또한 자연스러워 질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탄력 순찰이 곧 주민들이 안전하다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