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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편, 슬픔을 비켜가는 법

신념이 강한 사람은 가면을 쓰지 않고서도 당당할 수 있어요.

by 김현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여자는 5월 가로수 길을 싫어한다. 이팝나무가 형체도 분명하지 않은 꽃으로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오게 하는 5월의 길을 정말로 싫어한다.


그 여자는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한 남자를 만났고 연애를 했었다. 그 여자와 남자는 200Km도 더 떨어진 공간을 두고 지냈기에 주말에 만날 예정인 그 남자를 금요일 오후부터 기다렸다. 그 여자는 그제까지 살면서 가족 외에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정을 준적도 사랑을 주었던 적이 없었지만 그 남자에게만큼은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아낌없이 나누면서 순정을 바쳤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예쁘지는 않았지만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갖고 살아왔었고 또한 남들도 나처럼 거짓말은 하지 않은 줄로만 믿었었기 때문이었다. 소박하며 유치할 정도로 흔하던 그 말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는 가훈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왔기에 남들도 다 그녀처럼 행동으로 해주지도 못할 말들로 주변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 않고 거의 언제나 진실한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말들만을 하면서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여자는 내성적인 편이었다. 혓바닥에 설탕가루를 잔득 묻히고 웃음으로 친절과 겸손을 말하면서 위장한 가식을, 진짜 속내를 볼 수 있을 만한 세속적인 것들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이다.


토요일 오전 10시, 약속장소에 30분이나 일찍 나간 그 여자는 한껏 치장한 모습으로 커피숍의 창가 쪽에 앉아서는 유리창으로 보이는 자기의 모습을 계속 확인하고 손거울 꺼내서 서툰 솜씨로 했던 화장을 고쳤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음만 울릴 뿐 받는 사람이 없다. 30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1분이 10분처럼 시간의 흐름은 조금씩 더뎌지고 받지도 않고 답장도 없는 전화기를 꺼내서 문자를 보내다가 더 이상 모습을 거울에 비춰볼 이유도 사라진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그 카페를 나왔다.


건물의 1층에 이어진 버스터미널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표 한 장을 끊고 모르는 사람들이 붐비는 대합실 3인용 플라스틱 의자 맨 끝자리에 앉아서 행선지를 알리며 제 각각 떠나가는 버스와 사람들을 아무런 감정도 없이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던 걸까. 정오쯤 출발 예정인 버스에 올라타 사람들이 별로 앉아 있지 않는 쪽, 뒤편의 구석으로 가서 창가에 기대어 잠을 자는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열어보지만 덩그러니 12시 5분을 알리는 숫자만을 보고 이제는 정말로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버스의 시동이 켜지고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제 터널을 지나왔으니 40분을 달린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그 남자다. 남자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면서 지금 가고 있는 중이라면서 배터리 문제로 통화가 안 될 것이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자가 탄 버스는 앞으로도 1시간 30분을 더 달려야만 종착지에서 멈추기로 되어 있었다. 여자는 다급하게 운전기사 쪽으로 비틀비틀 거리는 몸의 중심을 간신히 잡고 걸어가서는 정말로 급한 일이 생겼다고 둘러대고 위험해서 안 된다는 기사의 말을 기어이 설득하고는 그 황량한 도로가에서 내리고 말았다. 버스는 그 여자를 낯선 도로에 내려준 것을 정말로 잘한 일이라고 여긴 듯 검은 색 매연속에 그 여자를 남겨놓고 미련없이 떠났다.


여자는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20여분을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고 이따금씩 길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큰 차들이 지나갈 때만 도로 옆 잡초가 낮게 자란 곳에 잠깐씩 서기도 했었지만 쉬지 않고 걸었고 간이 버스 정류장을 찾아냈다. 거기에서 또 30분 동안을 그날 아침 처음으로 가서 앉아있던 그 찻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완행버스를 기다렸다. 남자가 온다고 했으니 올 것이라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무조건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 여자는 전화기를 꺼내서 통화내역 맨 윗줄에 있는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지만 언제 꺼진지 모르는 전화기에서는 명랑한 기계음만 들려올 뿐 무엇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4시가 넘어서야 찻집을 나왔다.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온 여자는 발꿈치 살갗이 벗겨져 피가 굳어 들러붙어서 잘 벗겨지지 않은 스타킹부터 벗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화장실로 가서 땀과 먼지로 얼룩진 화장기를 씻어내고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그것은 남자가 오지 않을 것이란 확신에서 오는 실망감 때문이 아니라 결코 어리지 않은 그 나이에 너무나도 철없는 아이처럼 행동한 그녀 자신의 바보 같은 슬픔 때문이었다. 사실은 구두를 신고 낯선 도로를 혼자서 걸었을 때도 울고 있었다. 다만 그 눈물은 남자가 온다는 소식에서 흘린 기쁨의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데서 온 탈수와 허기가 겹친 피로와 굴욕적으로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이팝나무 꽃가루 때문에 반사적으로 흘린 눈물이었는지는 그 여자 자신도 잘 분간할 수 없었던 것과 다른 눈물이었다는 것 뿐 이었다.


여자는 월요일 새벽까지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동안 계속 그대로 꼼짝없이 이불속에서 울었다 그치는 것을 반복했고 출근길 퉁퉁 부은 눈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싫던 얼음찜질까지 해야만 했었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발뒤꿈치의 쓰라린 통증은 이제 두 번 다시는 그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여자는 지금 잔득 상기된 얼굴을 하고 도서검색대 앞에 서 있다. 서가 위치를 확인하고 장대같이 큰 책장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336.00 저자명 000’ 이라는 라벨로 몸치장을 한 책 한 권을 조심스럽게 꺼내들고 첫 장을 넘겨본다. 익숙한 이름과 낯익은 사진, 그리고 그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문장들을 바라본다.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다. 그 여자는 그 책을 들고 사서 앞으로 가져가 대출절차를 마치고 양쪽으로 밀리는 두꺼운 유리문을 몸으로 밀치고 나온다. 두 손으로는 그 책을 껴안고 있었기에 남은 손이 없었으므로.


이미 말해 버린 것, 머릿속에만 있던 것들을 글로써 써버린 것들은 대게는 쉽게 잊혀 지기 마련이다. 간직함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낯설게도 친숙한 이 작가의 문장을 도서관 앞 나무로 된 작은 벤치에 앉아서 한 문장씩 읽었다. 맑고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책 위로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뚝 떨어진다. 계속 나올 눈물을 바람결에 말려 보려는 것인지 그 여자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 새 5월이었다. 또 다시 이팝나무 꽃가루가 눈물샘을 자극한 것일까. 그러나 그 여자는 지금 구두도 신지 않았으며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발뒤축이 까일 염려도 없고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님을 잘 안다.


시간은 그 여자에게서 수없이 많은 기억들을 가져갔다. 다만, 슬픔과 아픈 기억들도 함께 데리고 갔으므로 마치 죽은 사람이 말이 없듯 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여자는 여전히 이팝나무를 싫어한다. 아픔 또한 사람의 기억이므로 지나가버린 뒤에는 잊혀 지고 말지만 비슷한 또 다른 슬픔들이 부각될 때 아픔으로 되살아난다. 나는 이팝나무를 싫어하는 그 여자를 너무나도 잘 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한 밤중에 이미 한참 전에 와 있는 메일을 우연히 열어보고 다시 들뜬 마음이 되어 잠을 설친 그 여자를 참 잘 알고 있다. 연재 작가 제의를 받고 심사로 보낼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느라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한 그 여자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상을 차려 놓고 출근 준비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마친 후 늦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깨우러 방문을 열고 있는 그 여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여자는 5월의 가로수 길 이팝나무를 이제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은 그 길에 서서 울지도 않을 것이다. 슬픔을 비켜가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그 소용돌이에서 더 빨리 나가고 싶을 때는 발버둥치기보다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면 어느 샌가 저절로 몇 걸음 옆으로 밀려 나와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 보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알았으니까. 그 여자는 점점 그렇게 살 궁리를 찾아가면서 살아왔으니까.


도서관 언덕길을 내려오는 길, 그 여자는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적어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그것을 가치 있는 삶의 신념으로 여기며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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