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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 실천하는 삶

내 기분을 솔직하게 말 할 줄 아는 힘 -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자세

by 김현이

나는 지금 당장 내 기분이 어떠한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이런 기분이 들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이런 때는 어떤 표정과 말로 내 기분을 알려야 하는지를 훈련이라도 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큰 날 숨으로 몇 번이나 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진정시킬 줄 만 알았지 정말로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다.


‘아, 글자 크기를 조금 더 크게 할 걸, 줄 간격을 넓혀서 시야를 확보하고 책 읽는 눈을 조금 편안하게 했으면 더 좋았겠다. 그리고 한 가지의 이야기가 끝나면 종이의 여백을 좀 남겨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더라면....... 그리고 글자체, 뭔가 자유롭고 개성이 느껴지는 서체로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점심시간이 막 시작됐을 때 작은 사이즈의 탑 차가 파출소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기다리던 손님이라도 맞이하듯 기사 아저씨가 뒤 칸에서 꾸러미를 꺼내오기도 전에 먼저 나가서 직접 받아 내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출간 확정 연락을 받고 나서 그 책의 초판이 지금에야 내게 온 것이다. 내 책이다. 나는 오늘 내 첫 출간 책을 만져 보았다.


사실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몇 차례나 이 순간을 상상하면서 감정을 어떻게 자제해야 하는 지를 연습했었다. 혹시 눈물이라도 나오면 어떡할까 걱정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 느낌은 뭐랄까. 낳기만 하고 어린 핏덩이를 친정엄마에게 떼 놓고 멀리 떠나 있다가 그 아이가 훌쩍 자란 뒤에 처음으로 만난 기분이랄까. 어색했다. 그래서 나는 어색한 사이끼리 포옹하는 것처럼 가볍게 한 번 쓱 쓰다듬고 다시 책상위에 멀찌감치 내려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몇 초간일 수도 몇 분일지도 전혀 가늠이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 책을 내 가까이에 가져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책장을 넘겼다.


파스텔 톤의 표지와 부드럽고 하얀 속지, 그 안에 조금의 게으름도 없는 일정하고 바르고 반듯하게 촘촘히 박혀 있는 탁한 검은 색 글씨들, 예상보다는 가볍고 얇은 마치 중학교 때 도덕책 느낌이 나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 나를 쏙 빼 닮았구나. 그 어떤 책들보다 정직하고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기분이 든 것이다. 나야말로 그런 사람이지 않던가. 소박하며 작은 체구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아줌마로 보일 뿐이지만 꽉 꽉 눌러서 퍼 담은 공기 밥처럼 작지만 강하고 힘이 있으며 든든한 무게감이 있는 그런 사람, 부드럽고 하얀 속지처럼 무엇이든 닦아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러나 항상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조금은 여유가 없는 나처럼 말이다.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내 시선을 멈추게 한 글귀가 있었다. 분명히 내가 쓴 글이고 몇 번을 읽었던 글들인데 책으로 만난 내 글은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기분까지 들었다.

“생활의 분주함이 가져다주는 약간의 고단함은 언제나 나를 깨어있게 하며 앞으로 10년 후 나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진다 할지라도 내가 살아온 과거가 지금의 내 바탕이 된 것처럼 우리의 삶이란 수 없는 마침표로 그렇게 계속되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너무한 계절들의 연애 中 p. 36에서]


저 글은 3년 전 쯤에 썼던 글이었다.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이제부터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들뜨고 기쁘기 보다는 그저 담담하다. 10년 후에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나는 철학자 니체를 좋아한다. 어떤 날 니체의 저서를 읽고 있는 나를 향해 ‘사람들 앞에서는 이 책 보지 마라. 널 이상한 사람으로 볼 지도 몰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수히 많은 명언들 중,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이 말이 내가 니체라는 청년의 팬이 될 수 있도록 했었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다시 살고자 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라.”


지금 이 말을 우리 엄마가 듣거나 내 단짝 친구가 듣게 된다면 ‘너 미쳤구나!’ 하고 등짝을 한 대 얻어 맞을 줄을 안다. 지금의 내 생활이 버겁고 순탄하지 않아 걷기가 힘들지라도 나는 언제나 이 말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노력하며 애쓰는 삶이 어디 고단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훗날, 그 어떤 대단한 보상이나 대가를 기대해서 현재를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시간만큼 바르게 살려는 의지와 노력이 언제나 나를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나는 내 기분보다는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더 많이 배려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내 감정과 기분이 어떤지 내 자신조차도 몰랐다는 걸 아주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싫으면 싫다고 거절하고, 좋으면 좋다고 반겨주고,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설명할 줄 아는.......’ 이렇게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돌려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나도 조금씩 내 기분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게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마흔을 두고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말했던가. 나는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 않다. 현재를 이렇게 사는 것을 두고 ‘내 청춘은 어쩌란 말인가’ 라고 한탄하는 철 없는 사람도 아니다. 키케로가 [노년에 대하여]에서 ‘말로써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노년은 얼마나 불행 하던가’라고 말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3000여 년 전에 살았던 그 사람을 지지했고 본 받았으며 이제라도 실천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했었다. 첫 번째 책을 받아 든 오늘 첫 걸음을 뗀 아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지금보다는 미래가 기대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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