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6편. 참고 사는 인생에 대한 조언

자신은 인생의 주체이고 주인공이다.

by 김현이

핸드폰이 며칠 째 불통이다. 오는 전화는 문제없이 잘 되는데 내가 걸려고 하면 특유의 뚜~ 하는 소리마저 나지 않는다. 그냥 말 그대로 먹통이다. 그래서 며칠째 전화 걸 일이 생기면 바깥양반 핸드폰을 썼다. 집 전화는 일일이 전화번호부를 뒤져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머릿속으로 외우고 있는 자식들 빼고는 거의 받는 전화로만 쓰고 있다. 솔직히 핸드폰을 어린 손주들까지도 제 각자 제 것이 있는 요즘에 매달 꼬박 꼬박 기본요금을 내면서까지 집 전화 해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저 전화번호가 우리 마을에 전화가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거의 처음으로 우리 집부터 전화기를 설치했고 그 번호를 아직도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 30년도 넘은 번호이다. 우리 집이 이 동네에서 남들보다 사정이 나아서 전화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집 바깥양반은 언제나 못살아도 남보다 뒤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양반은 영리하기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기에 손수 전선을 끓어다가 전화기를 직접 설치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전화기를 둔 집이 몇 가구 없었기에 집 번호가 1124번으로 시작됐다가 그 뒤로 10년이나 지났을까 이제 전화기가 없는 집들이 거의 없으니 한국통신에서 앞자리 1번을 쓰고 있는 집들의 전화번호를 6으로 일괄 변경조치 하는 일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 집 전화번호는 6124가 되었고 그 번호를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다. 낮에는 빈집이나 다름없는 시골 동네에서 집 전화기를 안방에 떡하니 버티게 앉혀놓고 30년을 넘게 믿고 맡기며 집사노릇을 시켰는데 그 기본요금을 아껴보자고 그 긴 시간의 신뢰와 의리를 등지는 것 같아 선뜻 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이야 동네 사람들 전화번호만 따로 모아서 필체 좋은 우리 집 양반이 직접 써서 그것도 코팅까지 해 두고 전화기 옆에다 걸어 놓고는 그 걸로 금방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곤 했지만 핸드폰이야 어디 그럴 필요가 없는 물건이 아니던가.


어젯밤에 큰 딸한테 먼저 물어봤는데도 영 마음이 심란해서 잠 한숨을 못 잤다. 막내가 안 그래도 1~2년 사이 몸이 더 말라가고 표정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저 일하면서 애들 키우고 사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 싶어 얼마나 힘들까 생각만 해도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었다. 큰 딸이야 설령 일이 있어도 제 부모 걱정할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막내와는 가족 중에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짐작대로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 다음날 쌀이 다 떨어져간다고 했던 것도 생각나고 목소리로 사정을 짐작해 볼 요량으로 우리 집 양반한테 방앗간에서 바로 도정해서 택배로 큰 딸, 작은 딸한테 택배를 보내라고 시키고 난 다음이었다. 마침 또 핸드폰을 두고 방앗간을 나간 것을 보고 막내딸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지금 방앗간에 쌀 찌러 갔으니까 내일 택배 들어갈 거야. 너 그런데 어디 고민 있어?”


언제나 그랬듯 막내는 당당하다. 내 속으로 난 자식 중 가장 참을성도 많고 학교 때 공부도 제일 잘해서 받아온 상장도 가장 많았었고 한 번씩 신년 운세를 보러 가서 막내 태어난 생년월일을 대면 점술가들은 ‘딸로 태어나서 남의 집 주기 참 아깝다고 뭘 해도 해 먹을 사주’라는 말을 했었다. 형편이 좋았으면 어릴 때부터 학원도 많이 보내고 장학금 받는 학교 말고 지가 가고 싶다고 한 학교로 보내고 했으면 지금보다 더 잘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씩 한다. 그런데 전화를 두 번이나 해도 안 받는다. 일하는 시간이니 바쁜 것이겠지 생각하고 그냥 말았는데 곧 바로 막내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전화기는 어디다 두고 아빠 전화로 한 거야?”

“바빠?”

“아니, 뭣 좀 하느라 전화 오는지 몰랐어. 왜, 무슨 일 있어?”

“내 전화기가 고장났나봐. 받는 건 되는데 걸려고 하면 안 돼. 있다가 오빠가 집에 들른다니까 한번 고쳐보라고 해 봐야지.”

“그럼 고장 난 게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잘못 눌려서 그런 걸 거야. 아빠는?”

“응, 방앗간에 쌀 찌러 가셨는데 언니랑 너한테 택배로 보내고 올 거야.”

“내가 가지러 가면 된다니까. 힘들게.”

“아녀, 그런데 너 아무 일 없지?”

“응, 무슨 일?”

“아니, 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네가 항상 기운도 없고 힘들게 보이니까.”


막내는 평소처럼 씩씩하게 말한다.


‘엄마, 나 솔직히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엄마도 잘 알잖아. 사람이 사는데 스트레스 안 받고 나 즐겁게 행복한 일 하면서 사는 게 가장 좋다는 거. 그러니까 엄마는 내 걱정 하지 말고 엄마 아빠 건강 잘 챙겨. 솔직히 그동안 정말로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 잘 지내며 잘 살고 있으니까 정말로 걱정하지 마. 나 괜찮아 엄마.’라고.


나는 분명히 막내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고 막 말한 막내의 말이 일부러 엄마인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아닌 것도 그 말투와 어감에서 느껴졌다. 막내는 내 속으로 난 자식이지만 참 영리하고 참을성이 많은 애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데 그 자식이 지금 가장 고생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언제나 내 마음속의 아픔이다.


사무실에 휴가자가 2명이나 되었다. 이런 것을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꼭 사람이 없는 줄을 알기라도 하는 듯 유난히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 외근이 신고현장으로 나가니 사무실을 독차지해야 했다. 무전을 하고 전화를 받고 찾아오는 사람들 민원처리를 하기는 했어도 솔직히 죽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의 근무는 사실 일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냥 가벼운 사무에 불과하다. 이보다 몇 배는 더 과중한 환경에서도 근무를 해 보았었으니. 출근하자마자 핸드폰을 보니 전원이 나가기 전까지 배터리의 용량이 11%밖에는 남지 않아서 충전상태를 표시하는 건전지가 붉은색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내 책상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충전 거치대에 핸드폰을 충전시켜 놓느라 반나절동안 넘게 핸드폰에 대해서는 잊어먹고 있었다. 솔직히 핸드폰으로 찾아볼 꺼리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기에 중간에 충전이 얼마나 됐는지 확인해볼 생각조차 안했다. 그래서 나는 출장을 다녀오면서도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고 마치 우리 집의 집 전화처럼 내 핸드폰이 우리 사무실을 독차지하게 내버려뒀던 것이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 막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열었다. 아빠한테 온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나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받는다. 엄마의 목소리에서도 내 표정에서 마치 무엇인가를 알아내려는 사람처럼 나를 살피는 표정이 짐작이 됐다. 아빠가 쌀을 보냈으니 내일 택배가 도착할거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나는 내가 곧 집에 가는데 그 때 가져오면 될 것을 왜 힘들게 그랬냐며 쌀은 무게가 나가니 택배비도 만원은 넘을 것 아니냐면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런 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볼멘소리를 해 버렸다. 엄마 핸드폰이 안 되는데 있다가 오빠가 집에 온다고 했으니 한번 고쳐보라고 하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이번에 아빠 생일날 가족 여행 가는 거 너는 아무것도 가져올 것도 없이 애들이나 잘 챙겨서 조심해서 오라고 말하는 등 계속 딴 소리를 하면서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말을 다른 식으로 돌려서 물어보고 계셨다.


‘엄마,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누구보다 엄마가 잘 알고 있잖아. 엄마가 많이 힘들게 살았으니까 내 자식만큼은 편안하게 걱정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을 왜 모르겠어. 그런데 엄마, 나를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물론 매일 매일 할 일도 많고 몸이 편할 날은 없지만 이것이 내 운명인가 싶을 때도 있고 아무튼 잘 지내. 그리고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잘 헤치며 살아가고 있으니 괜찮아. 엄마가 나를 이렇게 강한 사람으로 키워주셨으니까 내가 또 그 책임을 지고 살아야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리고 엄마가 걱정하는 것만큼 힘들지도 스트레스를 받지도 괴롭지도 않으니 정말로 내 걱정으로 오히려 엄마 몸 상해서 자식들 걱정이나 만들지 말고 아빠하고 잘 지내. 알았지? 그리고 쌀은 잘 먹을게. 받으면 아빠한테 전화할게 엄마.’


언제나 엄마와의 통화는 여운이 남는다. 거의 대부분 나는 엄마의 걱정을 줄여볼 생각으로 과장되게 잘 지낸다고 말해서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엄마에게 더하지도 뺀 것도 없이 말했다. 아니 내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것을 나는 엄마의 막내딸로서 엄마한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그동안 힘들어서 지쳐있는 내 마음을 위로 받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심정과도 같았던 것이고 그냥 내 말에 아무런 다그침이 없이 알았다고 네 말대로 잘 지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도 당신의 막내딸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어릴 때 아이의 어리광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보듬어 안아주던 그때 그 시절의 마음과도 같단 것으로 이해했다. 핸드폰의 붉은색 종료 버튼을 먼저 눌러버리고 나는 사무실 뒤편으로 돌아가 바람을 쐬는 척 하면서 멀리 있는 하늘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리고 억지로 참지 않고 아주 짧게 울었다.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가 그 두 사람을 엿보기 시작한 것이 몇 년 전부터다. 지금 근무지로 발령나기전이니 햇수로는 벌써 3년째이며 그 때는 거의 아침마다 출근길에서 그 두 사람을 만났다. 만났다는 것을 사전식대로 하자면 내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 엿보았다는 말로 표현한 것임을 밝히고 싶다. 내가 빨간색 신호대기 시간에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차도 옆 도보를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본 것이었으니까. 그 두 사람은 다소 젊은 남자와 남자보다 적어도 열 살 이상은 많아 보이는 한 여자였다. 물론 나는 그 사람들을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얼핏 보면 아들을 일찍 낳은 젊은 엄마와 몸이 다 성장한 큰 아들사이로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 두 사람을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갈 때마다 어쩌면 저 두 사람이 모자사이가 아닐 수도 있게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녹색신호를 기다리는 횡단보도 가에서 여자는 거의 언제나 젊은 남자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스포츠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고 그 남자는 자신에게 그렇게 해 주는 여자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걱정과 애정과 미안함을 담고 있는 말 그대로 결코 가볍지 않은 눈빛이 보였고 그 남자의 그런 표정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쩌면 사랑하는 남녀사이가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했던 것이다. 그래선지 그 이후부터 그 두 사람을 더 자주 보았고 아니 유심히 더 찾아보게 되었고 행동을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의 손을 꼭 잡고 보도의 바깥쪽, 그러니까 차도 쪽으로 걸었고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꼈고 그건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이 매우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입고 있는 옷과 손에 든 가방, 그리고 신발까지 그 두 사람의 행색은 소위 잘 못사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지만 나는 점점 그 두 사람을 내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저 여자는 무엇 때문에 내게 없는 그 어떤 것으로 저렇게 사랑을 받고 살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금 이곳으로 인사발령이 났고 출근길 동선이 달라지면서 나는 그 두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었다. 그러기가 2년이 지나갔고 자연스럽게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 그 사람들은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며칠 전, 아주 우연히도 그 두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 전처럼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것이었지만 단 몇 초의 스침으로 나는 또 다시 그날 오전 내내 조금은 긴 우울함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아껴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그런 표정이었고 나는 그저 그런 생활의 소굴로 빠져들면서 기쁨과 슬픔이라는 일상의 감정에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닫으며 지내왔기 때문이었다. 나를 가두는 그 대상이 막연하게 억울하고 분해서 그날 오전 내내 좌절했다. 그리고 남들도 소중하게 봐주는 내 것을 정작 주인은 아무 관심도 애정도 쏟지 않는 것에 대해 분개했었다. 그리고 그날도 그냥 그러고 말아버렸다. 그것은 긴 시간 생각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나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내 스스로를 길들인 이유였다.


이렇게 5월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한 달이 벌써 다 끝나가고 있었다. 성실하게 산다고 살아왔으나 막상 어떤 날은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를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나는 지금 흔들리며 불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다는 것까지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다는 것이 나를 좌절시킨다. 그게 내가 힘든 이유다. 내 것이고 내가 영위하는 인생이지만 그래서 나는 마치 내가 내 자신의 타인인 것처럼 그렇게 굴 때가 있었다. 이제야 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기에 그런 날들이 늘어났고 그 지속 시간도 길어지는 걸 알면서 정말로 나는 내 인생의 제 3자인 것처럼 지내게 된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하루하루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않고 살았다. 잠시 뒤로 미룬 적이 있었다면 그건 내가 몸이 좀 많이 아팠거나 우선순위를 따지느라 그러했으리라.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면서 조금씩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그래도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그것은 내 자신한테서 시작된 문제가 아니었고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더 없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동안 나는 참고 견뎌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 참아준다는 것이 마치 꼬리가 잘려나가도 또 다른 꼬리를 재생시키는 도마뱀과도 같이 마치 언제 그런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비슷한 일들로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점점 관대함과 인내심은 사라지고 ‘어쩌면 참는 인생은 나에게 모욕이 될 수도 있겠다.’ 처음부터 인정하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천명 시인이 노래한 푸른 5월의 정점은 장미꽃이라고 생각한다. 진녹색과 연두색의 조화 속에서 태양과도 같은 핏빛의 넝쿨장미는 물러날 수 없는 주인공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한 송이 쯤 꺾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나는 넝쿨장미를 지고 있는 담벼락처럼 살았다. 그러니 장미 가시에 수도 없이 찔릴 수밖에 없었다. 박힌 가시를 뺀 자리에는 피가 고여서 까만 점처럼 자국이 남았다. 찔린 흔적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수록 나는 그 주인공 장미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어떤 날은 나조차도 참지 못하고 그 꽃을 꺾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러면서 내게는 그 장미 가시의 찔리는 통증도 참아낼 만한 관대함이 조금씩 사라져 버렸고 그러면서 나는 의미가 있게 사는 인생이 어떤 맛인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찾는 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알아버리고 말았다. 내 자신이 중심에서 빠져버린 인생이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인생을 뒷전으로 두고 또 다른 대상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비록 칭찬 받을지는 몰라도 그 얼마나 불행한지를 알았으니까. 결국 주변의 가까운 타인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막내가 엄마에게 거짓으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막내는 이제 조금씩 자신의 인생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엄마도 인정할 날이 있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이 시간의 간극이란 인생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 보고 이뤄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내가 장미꽃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담벼락으로 살아갈 테지만 늘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내 인생의 어떤 목적을 목표로 성취하고 이뤄내기 위함이 아닌 사는 것이란 그 자체를 위해 두고 사는 것이지 그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그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달리하며 살아가는 것 뿐임을 조금은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 인생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이고, 관객도 조연도 아닌 주인공이니 그럴만한 당연한 의무가 있는 것임을 이제라도 느꼈기 때문이다.


2018. 5. 18. 금.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