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엄마?”
나는 막 잠이 들었기에 아이가 꿈속에서 엄마를 부르는 것쯤으로 착각하여 분명히 엄마를 부르는 큰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고쳐 누웠는데 이번엔 온 방이 청명하게도 울리는 맑은 소리의 ‘엄마’를 부르는 큰 아이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나서야 이것이 꿈속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대답을 했다.
“응, 정우야, 왜 잠이 안와?”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무서운 꿈 뭐. 엄마 있으니까 괜찮아 걱정 말고 얼른 자.”
“엄마, 내가 먼저 잠들 때까지 자면 안 돼?”
“응, 알았으니 안심하고 자 정우야.”
나는 쏟아지는 잠을 참아보려고 계속 눈을 뜨고 있는데도 저절로 눈이 감겼고 정우는 또 다시 정신이 몽롱해질 때 쯤 엄마를 불러서 혹시나 엄마가 자기보다 먼저 잠든 것이 아닌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정우는 비로소 잠이 들었다. 아이에게 그렇게 무서우면 엄마 옆으로 와서 누워있으라고 말했지만 아이 또한 잠결이라 그런지 그럴만한 의지가 없어 보였고 길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에 위안을 받으며 결국 아이가 먼저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되려면 십 분도 더 남은 시간이었고 아이들과 잠들기 전 뽀뽀를 한 시간이 열 한 시가 조금은 안 된 시간이었으므로 큰 아이는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었던 모양이었다.
그랬었다. 정우는 그렇게 한 번씩 밤중에 뜬금없이 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불러 깨워서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다시 잠들 때까지 엄마가 곁에서 깨어 있어주기를 바랐고 나는 또 그런 아이의 요구 탓에 비정상적으로 깨버린 잠으로 급성 두통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의 한 번도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며 윽박질러 재우지 않았었다. 그것만큼은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마다 큰 아이를 잘 보듬어 주었다. 큰 아이가 열 살이 된 지금까지 생각나는 일보다는 잊혀져버린 기억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동생들이 하나 둘 씩 태어나면서 점점 엄마의 옆자리를 동생들에게 내어 주면서 정우의 악몽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 아이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동생들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함께 가자고 엄마를 깨운 적은 있어도 여태까지 한 번도 큰 아이처럼 무서운 꿈을 꾸었다며 엄마를 불러 깨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왠지 아이의 상실감이 저렇게 표출이 되나 싶어 괜한 미안함이 커진다.
다음 날, 아침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큰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우야, 어젯밤에 무슨 무서운 꿈으로 그렇게 자다가 깬 거야?”
“응, 엄마. 꿈속에서 내가 도둑이 됐어. 그래서 해바라기를 훔치려고 미술관에 들어갔다가 경비원한테 들켜서 도망치다가 깼어.”
나는 아이가 말한 도둑, 해바라기, 미술관 이 단어를 듣고 왜 아이가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인지 단번에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우리 정우는 정말로 집중력이 좋구나. 기억력도 좋고. 얼마나 골똘하게 생각했으면 그렇게 꿈까지 꿀까. 그런데 도둑이 된 것이 무서웠어?”
“응, 도둑은 나쁜 사람인데 내가 나쁜 사람이 됐으니 당연히 무섭지.”
나는 부지런히 음식을 먹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지금 열 살 밖에 안 된 네가 엄마보다 훨씬 올바르고 훌륭한 인격체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저 아이가 내 아이구나!’ 그래서 갑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지는 기분까지 들게 되었다. 여전히 아침마다 과학실 청소 담당으로 나와 동생들보다 30분씩 먼저 나가는 아이를 오늘은 둘째 동생 선우가 배웅해 주겠다면서 직접 승강기 앞까지 같이 갔다 돌아와선 그것도 모자랐는지 엄마가 그랬던 그대로 큰 목소리를 내며 ‘형아, 잘 가, 저녁에 태권도에서 만나.’ 인사를 하며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덩달아 막내 단우도 둘째 형을 따라서 큰 형에게 ‘정우 형, 잘 갔다 와. 저녁에 만나!’하며 인사하는 모습에 마치 볼록한 배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곤히 잠든 제 새끼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막 수유를 끝낸 어미개의 눈빛처럼 그 순간보다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우리 집 책장에 내가 읽을 만한 [고흐]와 어린이를 위한 [고흐], 그리고 포켓북 사이즈의 [고흐], 이렇게 고흐와 관계된 책이 최소한 세 권은 꽂혀 있다. 일전에 큰 아이가 숙제를 해야 한다면서 어린이를 위한 [고흐]를 들고 앉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아이에게 몇 가지 팁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가 알고 있는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내 아이들도 엄마가 지어낸 옛날이야기와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을 가장 재미있어 하고 유난한 관심이 저절로 쏠려 곧 바로 토끼귀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화가이며,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던 적은 없었지만 이제까지 태어났다가 돌아가신 화가 들 중에 거의 가장 유명한 화가라는 말을 시작으로, 고흐가 가장 좋아했던 세 가지 – 태양, 해바라기 그리고 노란 색깔 –에 연결된 이야기와 동생 테호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내용, 그리고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고 자신이 무척 따르고자 했던 고갱과의 불화를 겪고 심리적 고통에 대한 표출로써 자신의 귀까지 자르게 된 일화, 특이하게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음에도 일본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그 나라 특유의 경치와 인물 등을 고흐만의 색감으로 그려냈던 내용들, 그리고 고흐가 안타깝게도 권총으로 자살 시도를 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감염으로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대부분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고흐는 미치광이 화가가 아니라 그만큼 순수한 열정을 지닌 화가였다는 것, 또한 생전에는 그 이름을 인정받지 못하고 죽은 뒤 자신의 장례식에 찾아 온 손님들에게 동생 테호가 조문에 대한 답례로 형 고흐가 그린 그림을 선물로 나눠주게 되면서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명성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나마저 다시 한 번 고흐를 읽어봐야지 그런 생각까지 들기도 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아이가 악몽을 꾸었던 날, 우연히 큰 아이와 둘째에게 만화 명탐정 코난의 열아홉 번째 극장판시리즈 - [화염의 해바라기]를 보여주게 되었는데 제목의 해바라기가 고흐가 그린 그림 해바라기를 의미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영화를 보는 도중 엄마에게 달려와 ‘엄마, 고흐의 해바라기가 영화에 나와. 그림이 3억 원에 팔렸대. 대단하다. 고흐옆에 없는 해바라기는 진정한 해바라기가 아니래.'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은근한 기쁨과 자신감 있는 아이의 말소리에 나도 반가운 호응을 해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날 밤, 정우는 마치 자신이 괴도 루팡이라도 된 듯 고흐의 해바라기를 훔치려고 미술관에 침입을 했다가 그만 경비원에 발각되고 급하게 도망치는 아주 박진감 있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은 정말로 순수하고 깨끗하다. 스펀지와 같다는 말을 또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고 그럴수록 ‘어른인 엄마가 더 노력해야겠다.’ 결국은 자아반성까지 이르게 한다는 거다. 가만 보면 내 큰 아이 정우 속에는 엄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들어앉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또 어찌됐든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었으므로.
휴일 오전, 늦은 아침을 먹이고 아이들끼리 잘 놀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나는 며칠 전 경찰서 선배한테서 물려받은 아이의 책과 옷가지를 챙기려고 주차장으로 갔었다. 평일엔 언제나 양손 가득 짐을 들어야 하니 이렇게 쉬는 날 짐 정리를 해 놓아야 그만큼 평일이 여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와 아직 볕이 강하지 않은 탓에 날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아예 차에서 짐정리를 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 옷가지며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부터 계속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귓전에 울려오는 것이 아니던가. 내 불길한 예감대로 엄마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에게 가겠다면서 막내 단우가 집을 나왔던 것이다. 분명히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는데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정말로 애가 탔다. 우선 먼저 안쪽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서 아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이제 아이도 없고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더 급하게 아파트 외부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또 다시 올라가면서 층층마다 구석구석 살펴보며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할 수 있도록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9층 가까이 오르자 아이가 엄마와 큰 형, 정우 형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큰 아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나는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고 9층 외벽 계단 입구에서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잠옷 바람으로 제 발 크기보다 두 배나 큰 어른 신발을 신고서 12층에서 계단을 타고 9층까지 내려왔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아찔했던지 심장이 떨어지는 줄만 알았고 아이를 보자마자 보듬어 안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를 끌어안고 나도 울고 아이도 울고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동안 엉엉 울었다. 혹시나 다친 곳이 없는지 몸을 살펴보면서 마치 연탄공장에서 막 나온 사람의 얼굴을 하고 눈물범벅 코 범벅으로 된 아이의 얼굴을 옷매무새로 닦아주면서 ‘넘어지지는 않았어? 다친 데는 없어?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하며 말도 없이 혼자 나가서 미안하다고 정말로 엄마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아이를 그렇게 안정시키고 아이의 얼굴을 내 볼에 갖다 댔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나의 아이이던가. 아이의 몸이 내 품안에 있고 아이의 심장이 뛰는 움직임과 숨소리를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엄마로서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인지 느꼈다.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세상의 모든 현상들 - 동쪽의 건조한 바람, 서쪽에서 오는 습기가 많은 비바람, 북풍이 몰아오는 차가운 구름들 그리고 남쪽의 덥지만 부드러운 미풍 – 도 자세히 들여다 보다면 어느 것 하나 그냥 저절로 오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연결된 매개체가 있고 한 객체에 닻을 내리게 되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들까지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물며 사람들끼리는 어떻겠는가. 그 중에도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어떠할지를 굳이 말로서 설명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아이는 엄마에게 닻을 내리고 안전한 항해를 할 권한이 있고 엄마는 아이를 거친 풍랑으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곧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 어떤 누구는 아이에 대한 과잉보호이며 지나친 집착이 아니냐고 좋지 않게 볼 수는 있을지라도 내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의 일련의 일들을 놓치지 않고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피곤한 몸을 쉬고자 잠시 누워 있는 내게로 가까이 와서는 말없이 얼굴을 만져보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서 ‘엄마가 최고’라며 사랑을 표시하는 막내 단우, 귓속말로 비밀이라면서 ‘나는 놀다가 올게 엄마.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말해주는 둘째 선우, 그리고 조금은 무뚝뚝하지만 제법 튼실한 손힘으로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엄마! 좀 쉬어. 알았지? 우리 걱정 말고.’ 말하며 안심을 주는 큰 아이 정우, 이렇게 우리들 사이에 오고가는 감정과 사랑의 교류를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해 낼 자신이 없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써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들은 몸으로 한 번 더 안아주고 맛있는 것을 먹여주는 보살핌으로 조금이라도 더 그 감정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 이 글의 말미를 언젠가는 보게 될 아이들에게 쓴 편지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요전 날 커피 한 모금에 의지하면서 남몰래 눈물 감추며 썼던 그 편지를 여기에 써 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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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너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눈짓 하나, 몸짓의 행동과 같이 모든 모습들이 모여 지금처럼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 낸 것이란다. 엄마와 아이들이 공유하는 이 공간과 시간은 마치 기적과도 같은 것이야.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니. 아직은 말로써의 표현이 서툰 너희의 몸짓과 눈짓, 손짓은 매 순간마다 엄마에게는 큰 감동으로 전달되었단다. 기억날지 모르지만 어떤 날 너희와 함께 장난을 치다가 엄마가 심술궂게 우는 연기를 했던 적이 있었단다. 그 때 너희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눈망울을 하고 이 엄마를 보드랍게 쓰다듬으며 내 곁에 나란히 앉아 있었었지. 물론 잘못했다는 말처럼 그 어떤 말도 안했지만 엄마는 갑자기 부끄러웠단다. 그러면서 또 다시 다짐했었어. 엄마가 너희를 온 힘을 다해 키워낼 것이라고.
큰 형이 태어난 이후로 기저귀를 사들인지가 벌써 10년이나 지났어. 마치 세트처럼 물티슈를 사더라도 박스 채 샀었지만 그것들은 역시 소모품이라 오래 쓰지도 못했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우가 스스로 ‘이제부턴 기저귀를 안 차겠다.’고 선언한 날부터 엄마는 내심 밤중에 실수를 하여 이불을 빨 것을 각오하면서 과감히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았었지. 솔직히 말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당신들의 아이가 기저귀를 몇 살 때 몇 개월 차에 떼었는가를 자랑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육아 능력인 듯 인정하며 과시하는 엄마들이 있단다. 그런데 엄마는 너희 셋 모두에게 단 한 번도 억지로 기저귀를 떼 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거야. 너희는 왜 그랬냐고 궁금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그것으로 너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싫었고 또한 기저귀를 떼는 것은 마치 저절로 나이를 먹는 것과 같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봐라! 너희 셋 중 기저귀를 차고 잠드는 아이가 있는지를. 엄마는 그 기저귀에 들였던 지출을 이제 너희 셋에게 또 다른 형태로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것이면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어.
지난번 정우 네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었지? 너의 친구 찬우에 대한 이야기 도중이었어.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다 엄마처럼 해 주지는 않아요.”
엄마는 너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었어. 왜냐하면 엄마도 항상 너희에게 최선을 다해 최고로 잘해 주지는 못했었으니까.
아들들아!
언제나 너희는 엄마의 이런 보살핌과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렴. 너희는 엄마의 아이로 태어남을 시작으로 이미 그런 자격을 받은 것이고 엄마는 충분히 그에 넘치는 사랑을 너희로부터 보답 받고 있단다. 엄마의 사랑을 누리며 사는 것은 너희의 권리란다. 가끔 너희는‘엄마가 힘들면 안 해줘도 되요.’했었지만 엄마가 아들을 위해 하는 행동들은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야. 마치 쉬가 마려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이 비슷한 거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란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 그냥 너희는 이런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받으면 되는 거란다. ‘나중에 커서 보답해야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엄마의 사랑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도 같아서 우리가 숨을 쉴 때마다 일일이 그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아주 가끔 엄마에게 달려와 안기고 두 볼에 입맞춤을 해준다면 무척 행복할거야. 왜 있잖니. 너희가 즐겨하는 게임과도 같은 놀이 – 터널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숨 참기-를 할 때 숨 막혔던 순간이 일순간 해소될 때 느끼는 산소에 대한 고마움을 알 듯 그렇게 말이야. 엄마의 사랑은 공기의 산소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란다.
자, 이제 심호흡을 해 보려무나!
엄마가 언젠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 오더라도 너희들 마음속에 등불로 남아 까만 밤길을 밝혀 주고 싶단다. 엄마를 마음껏 믿으렴. 엄마는 항상 너희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는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가지만 더 안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하루하루 엄마는 늙어가고 너희는 자랄 테지만 엄마는 그 사실이 전혀 슬프다거나 또는 대단히 기쁜 일도 아니란다. 그저, 너희와의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산다면 이런 날들이 하루씩 쌓여간다면 더 이상은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야. 먼 미래를 꿈꾸며 너희의 장성한 모습을 보는 것도 충분히 마음이 들뜨고 기대되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지금이, 바로 오늘이 마치 기적과도 같은 순간으로 기쁜 일임에 충분하기 때문이란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오늘은 엄마의 나이가 꼭 사십이 되는 생일이란다. 생일에 이렇게 너희에게 편지를 쓰게 되니 받기만 했던 지난날들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아침에 우리가 헤어질 때 반가울 저녁 만남을 이야기 했듯 엄마는 너희와의 저녁시간이 오늘 따라 무척 기다려지는구나. 고맙구나! 이렇게 엄마의 세 아들로 태어나 준 너희에게 감사하며 그 고마움을 아는 엄마로서 살아가겠다. 사랑한단다.
2018. 6. 14. 목. 언제나 너희 엄마, 김현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