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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편. 울보 엄마

아이들의 당연한 말과 사소한 행동조차도 엄마에게는 큰 감동으로 온다.

by 김현이

지난 밤 동안 내내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교차하면서 한 여름처럼 소낙비가 내렸다. 이미 둘째와 막내가 잠이 든 시간, 유난히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큰 아이가 마지막까지 잠들지 못하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다가 엄마가 먼저 잠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내가 잠이 들 만하면 ‘엄마!’하고 불러 내 잠을 깨워놓고 애꿎은 잠 인사 – 사랑해요, 고마워요, 안녕히 주무세요. – 만을 몇 차례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고 작정으로 큰 아이 곁으로 가 앉아서 잠들었을 때 내는 고른 숨을 확인하고 막내 옆으로 와 잠이 들 수가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 번개를 알아차리지는 못했겠지만 간간히 잠을 흔들어 놓는 천둥소리로 날이 밝기까지 시간마다 잠이 깼고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무 잘못도 없는 5월 막바지의 천둥에 짜증이 났다.


큰 아이가 이번 주부터는 과학실 청소담당이 되었다면서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등교하기 시작했다. 함께 청소하기로 되어 있다는 친구 중 같은 반 아이가 정우가 말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은 평소 등교시간대에 작은 아이를 데려다 주는 시간 등교하는 모습을 본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아이에게 되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그렇게 늦게 가서 어떻게 과학실 청소를 한다니?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빨리 등교를 해야 과학실 청소를 할 수 있는 거야? 너와 함께 담당이 된 친구들도 제 시간에 왔어? 그리고 과학실에 약품이나 실험 도구 등 위험한 물건은 절대로 건들면 안 돼. 알았지?”


큰 아이 입장에서는 자꾸만 속 좁게 구는 엄마의 질문들이 귀찮게 느껴졌던 것인지 그냥 늦게 온 친구는 점심시간에 따로 혼자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 친구는 점심시간조차도 청소를 안 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다는 거다. 생각해 보니 천둥 번개소리에 겁을 먹고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로서 솔직한 고백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정우야, 우리 정우가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엄마는 너 혼자 위험한 과학실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돼. 다행이 네 말대로 함께 하는 친구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절대로 다른 물건들은 만지지마. 알겠지? 그리고 이제껏 항상 동생들과 엄마와 함께 아침마다 집을 나섰던 네가 우리들보다 30분이나 일찍 나가는 것을 보고 괜히 마음이 짠했단다. 왜냐하면 우리 정우가 벌써 이렇게나 커버렸는지 하고. 엄마가 늘 하는 말이지만 한 번씩 정우에게 혼을 내고 싫은 소리도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너를 가장 믿고 있고 엄마에게 큰 힘을 준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 알겠지? 사랑해 정우야. 엄마는 정우가 잠들면 잘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자. 사랑한다.”


아무래도 엄마의 진심어린 말에 아이는 안심을 하는 것 같았고 내게 이 말을 했다.


“엄마, 과학실 청소는 위험하지 않아. 과학 자료실은 따로 있어. 그래도 엄마 말대로 다른 위험한 물건은 절대로 안 만질게. 사랑해요.”


그러고는 쉽게 잠들었다.


사실 일전에 큰 아이 왼손 새끼손가락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붓기까지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알아보니 친구들과 과학실 청소를 하다가 현미경이 손등으로 떨어져 다쳤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을 보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속상했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냐고 하니 그냥 피가 안 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엔 괜찮은데 만지고 누르면 아프다고 하는 아이에게 ‘차라리 피가 났으면 덜 다친 거야. 앞으론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면서 엉뚱하게 화를 내고 말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과학실 청소 차제가 내게는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찍 나가야 하는 것이냐는 내 성화에 아이는 엄마의 과민반응이 이해가 안 된다는 무심한 투로 ‘아마도 이번 여름 방학 전까지는 그렇게 해야 될 것이다.’고 했고 나는 다시 아이의 말에 미안함과 서운함이 섞인 뜻으로 큰 아이를 한 번 끌어안아 주고 말았다.


아침에 비가 왔다. 큰 아이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비가 온다면서 우산을 들고 다시 나갔다. 엄마의 도움 없이 등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우는 열 살, 3학년이 되었다. 점점 이렇게 아이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사소한 도움들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첫 등교 버스를 타려고 승강장으로 걷는 아이의 모습이라도 지켜 봐 주고 싶었고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12층 창문으로 보이는 아이는 여전히 땅꼬마였다. 나는 땅 바닥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만한 큰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정우야, 조심해서 잘 다녀와. 즐겁게 보내고 저녁에 만나.”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들리는 소린지 확인하려는 것인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봤고 나는 아무 상관도 없이 오로지 내 아이만을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손짓으로 아이에게 팔을 흔들어 주었다.


작은 아이를 학교에 내려 주고 이제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 나도 회사로 가야 한다. 자동차 와이퍼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한참 후에 창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안개처럼 비는 그치지 않았고 막내에게 늘 하던 대로 말을 걸었다.


“단우야, 무슨 꽃이 피어있나 잘 구경해봐, 그리고 꽃을 보면 엄마한테 말해줄래? 그런데 단우야, 비가 계속 내린다. 저녁에는 그칠까?”


“응 엄마, 그런데 나무는 빗물을 먹어야 쑥쑥 자라.”


“그래 맞아, 우리 단우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었어? 단우 말처럼 꽃과 나무는 빗물을 먹으면 쑥쑥 자라고 우리 단우는 엄마의 사랑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쑥쑥 자라지?”


“맞아 엄마. 그런데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어?”


“우리 단우를 사랑하니까 잘 알고 있지. 이제 우리 유치원 도착할 때까지 같이 노래 부를까?”


“응 엄마. 그런데 내가 못 부르는 노래는 안 돼. 내가 할 줄 아는 노래를 불어야 돼. 알았지?”


단우는 평소에도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한 번 들은 유행가도 금방 그 멜로디를 따라서 흥얼거릴 정도여서 한 번씩 이 아이가 음감을 타고난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이야 물론 아이를 예체능 쪽으로 키워줄 마음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제 부모 눈에 자식 자랑이 아닌 그저 놀라움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지만 아무튼 막내와 나는 유치원에 도착할 때까지 같이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유치원 자기 교실 문 앞에서 엄마와 진한 포옹을 원하고 또 그것이 부족하다 싶은 어떤 날은 뽀뽀까지 하고 나야 아이와의 아침 등원이 마무리가 된다. 그제야 나는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와 성급하게 회사로 향하는 것이다.


회사 쪽으로 차를 몰고 오다가 차도 옆으로 좁게 난 인도 풀 섶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로드 킬을 당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불쌍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스쳤고 곧 친정집에 있는 나비가 생각났다. 눈을 겨우 뜬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그 하고많은 집들을 놔두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의 나쁜 기억- 고양이 피부병으로 우리 삼남매가 고생했었던 일 - 으로 그 후부터는 집 안에 고양이를 절대로 들이지 않고 그렇게 30년을 사셨는데 그 새끼 고양이는 아무리 몰아내도 우리 집이 마치 제 집인 줄 알고서 그렇게 기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작년 이 맘 때, 여름이 막 시작하려는 딱 이 때였다. 심지어 조금 멀리 떨어져 사는 아버지 친구 분께 대신 키우라고 데려다 준 것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 그 길을 뚫고 흠뻑 젖어서는 집 앞 처마에 앉아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고양이를 거뒀다. 밥을 주고 생선이나 고기를 먹은 날은 꼭 고양이 몫을 남겨 놓고 그렇게 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살려내 여태까지 키우고 계신다. 고양이가 친정집에 들어 온 날부터 아이들도 외갓집의 나비가 잘 있는지를 항상 궁금해 했었고 특히 돌아가신 할머니 방 앞에 요를 깔은 보금자리가 제 집인 줄 아는 나비는 할머니가 걸을 때는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고양이만의 애교를 떨었고 그런 고양이가 가엽고 귀여워 할머니께서도 가족 중에 가장 많이 고양이를 아껴 주셨다. 올 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밤 처음으로 산고를 치른 고양이는 죽은 새끼 두 마리를 낳고 첫 출산에 실패했다. 할머니는 새끼를 배서 배가 불러온 고양이를 볼 때마다 도대체 새끼가 몇 마리나 들어앉아 있어서 저렇게도 배가 부를까 나비의 출산을 내심 기대하시는 듯 말씀하시곤 했는데 나비는 그렇게 첫 출산을 잘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나비의 새끼를 보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3주가 지났고 나는 길가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보면서 또 다시 할머니께서 나비한테 쏟은 애정과 정성이 떠올라 그 아침 유난히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었다.


아직도 나비는 친정집에서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엄마도 할머니께서 아끼던 고양이니 각별하게 잘 거두시는 것 같다. 오빠는 살 가망성이 전혀 없던 그 고양이가 왜 하필 우리 집으로 찾아 왔는지 다 죽어가던 것을 살려놓고 잘 키워 놓으니까 할머니가 내심 기대하시던 새끼 고양이도 못 보여주면서 아직도 우리 집 가장 양지 바른 쪽에 앉아서 아버지가, 엄마가 지나다닐 때마다 야옹 거리고 잘 살고 있는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집에 나비가 남아 있는 것을 두고 오빠는 왠지 그래서 나비가 더 밉다고 말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는 나비 먹을 것을 항상 챙겨 놓으셨고 나비 밥그릇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쳐 났다. 한 번씩 고양이 친구를 데려와 자기 밥을 나눠주는 것도 봤었다. 나는 오늘따라 할머니가 무척 그립다. 그냥 보고 싶어서 저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보고 싶다.


큰 아이가 혼자 등교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짠한 마음이 들고 형 없이 혼자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둘째 아이의 뒷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게 보이고 헤어질 때 언제나 안아주기를 원하는 막내가 더없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나는, 그리고 출근길에 단순히 길가에 죽어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오는 나를 볼 때 마음이 약한 사람인가 생각할지 모른다. 비구름이 어질러 놓았던 하늘이 정오를 지나면서 형체도 없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분명한 하늘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 마음도 하늘을 따라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사소한 말과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들도 엄마인 내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오며 그래서 나는 툭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울보 엄마다.


저녁에 아이들을 만나면 설령 큰 아이가 아침에 들고 간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더라도, 둘째 아이가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를 돌봄 시간에 해 오지 않았더라도, 설령 막내 아이가 저녁 밥상 앞에서 밥 먹을 생각도 없이 제 입맛에 맞는 군것질만 한다더라도 그저 꼭 안아줄 것이다. 천둥 번개가 있을 리 없는 오늘 밤에는 잠이 들기 전 어제 못해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까지 들려 줄 것이다.


2018. 5. 30. 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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