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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편. 고민하는 자의 낮과 밤

이 또한 지나가리니...

by 김현이


연애 시절, 이별 경험이 없었던 그녀는 연인한테서 상처를 받고 헤어짐을 결심하고서도 몇 시간도 안 되는 그 밤을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 동이 터오는 새벽이 될 때가 되면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면 그 남자는 문자에 대한 답장을 보내지 않거나 그날 오후 늦게 나 되어서야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연락을 해 왔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또 그 작은 이별들을 견뎌내 갔었다. 시간이 약이 된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밤에는 평생을 그렇게 괴로움 속에 살아야만 하는 그것이 전부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세월이 가는 동안 그녀 자신은 누구보다 강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연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언제나 강한 사람이라고 알고만 살았기에 누구나가 ‘왜 그렇게 마음속에만 담아 두고 사니’ 하던 위로의 말에 오히려 더 자존심이 상했고 상처를 주었던 그 남자를 욕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또 다른 누군가는 ‘헛똑똑이’라고까지 말하며 비난했었다. 그때 비난인 줄만 알았던 그 말이 진정한 충고였다는 것을 그때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


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어둠으로 덮어버리며 훼방을 놓는 방해자다. 그래서 고민하는 자들에게는 빛에 의지하여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낮 시간보다 오히려 견뎌내기 어렵고 지나가기 힘든 고비이기도 하다. 어둠속에서는 오로지 나 자신밖에는 볼 줄 모르며 나를 둘러싼 모든 양심과 진실은 몇 배로 커져 나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낮보다 밤사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밤을 무사히 잘 지내고 또 다시 낮이 되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는 의지를 갖고 또 다시 희망으로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것, 그 밤을 묵묵히 잘 견뎌내는 법을 몰랐었다. 그래서 누구나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했고 그러면서 잘 견뎌냈다며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불편한 상처들이 쌓이고 있는 줄도 잘 몰랐었다. 그러다 또 다시 비슷한 슬픔들이 부각되면 또 그런 식으로 괴로워하며 그 밤을 지혜롭게 견뎌내지 못했었다.


세월이 흘러간 뒤, 그녀는 이제 그녀에게 또 다른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는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알게 되었다. 정말로 수긍할 수 있었으며 경험자의 말은 그 어떤 진리를 이길 수 없는 공감을 주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부림치기보다는 그저 그 괴로움 속에 빠져들도록 힘을 빼는 방법을 알기 시작했다. 여전히 밤은 견뎌내기 지루하고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이 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낮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용기를 내고 지혜롭게 잘 헤쳐나 갈 것을 다짐하게 되었고 상처받은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회복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괴로움을 감추려고만 했었다.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녀 자신의 고통 때문에 힘들어 하게 될 모습을 본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눔의 기쁨은 배가 되 듯,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그 의미를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 자신조차도 감당하지 못한 슬픔들로 인생의 방향을 잃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받게 될 상처까지 걱정하며 그것을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나 자신에게 더 큰 상처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언제까지나 스스로 극복해내야만 하는 역경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누군가 대신하여 해 줄 수는 없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전쟁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 스스로 치러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이 되면, 지난 시간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줄 전혀 몰랐었다. 그래서 또 다시 쉰이 되었을 때는 현재 마흔의 시절을 전처럼 맞서지 않고 소극적으로 피하기만 하고 살아간다면 또 다시 후회하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먼 미래는 반드시 내 자신이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을 예상하며 그것만을 쫓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쩌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 먼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지금의 작은 이 순간조차도 적극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지금보다도 못한 시간이라고 과거를 그리워만하며 또 다시 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까.


차를 몰고 올라오는 언덕배기 중간, 도로 옆으로 대추나무 숲을 보았다. 작은 이파리들은 마치 누군가가 한 장 한 장 닦아 놓기라도 한 듯 아침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렸다. 대추나무의 이파리가 백 원짜리 동전만한 크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래선지 그 작은 크기 탓에 같은 녹색이라도 보다 연둣빛을 내는 투명한 녹색에 가깝다. 아침 바람결에 제 몸을 앞뒤로 뒤집으며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속마음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짝이는 앞면과 달리 제 몸의 뒷면은 탁하고 빛바랜 녹색에 가까웠다. 낮 동안에는 반짝이는 앞면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대추나무 이파리는 밤사이 회색빛의 뒷면으로 본연의 책임- 증산 작용- 을 완수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져 버리지 않고 나뭇가지에 잘 붙어서 또 다시 낮의 햇볕을 받으며 이파리 앞면에 윤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또 다시 찾아 올 밤을 두렵다고만 겁먹지 않을 것이다. 그저 편안히 쉴 수 있는 밤의 장점만을 보려고 할 것이리라. 온화하고 진부한 것을 내버리고 자극적이고 불손한 것에 더 매력을 느끼며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감각을 탓할 것이지 더 이상은 무엇도 원망하지 않으리라. 자책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의 장점을 잃지 않으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2018. 6. 22. 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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