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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편. 장마, 호우 주의보

감정보다 행동은 더 약속할 수 있어요.

by 김현이

개구리 왕눈이 초록색 장화, 친절하게 고리까지 달린 그 장화를 벌써 여러해 전에 큰 아이에게 신기려고 사 뒀던 것이 아이의 발 크기를 제때 맞추지 못해서 거의 한 번을 신겨보지 못한 채로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러니 외관상으로는 새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고무재질이다 보니 먼지가 잘 들러붙고 겉면이 끈끈한 풀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손걸레를 빨아와 현관에 쭈그려 앉아서 미끌미끌 윤이 나도록 닦았다. 새벽 5시 30분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있는 힘껏 달려들던 빗줄기들은 납작하게 번져나갔고 빗소리에서는 사이다의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일기예보대로 어김없이 비가 왔다. 남쪽 지방부터 시작한다는 비는 이미 어제부터 내렸는지 몰라도 우리 집은 새벽녘이 되자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장맛비였다. 작년에는 마른장마라고 하여 거의 비가 없이 낮게 앉은 먹구름이 푹푹찌는 습한 불쾌감으로 사람을 갖고 놀 듯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리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전히 내 입장만을 두고 봤을 때 비는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언제나 양손에 아이들의 가방까지 들고 세 아이가 조금이라도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자동차로 아이들을 차례차례 옮기다 보면 그 사이에 출근준비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과 머리가 안 젖을 라야 안 젖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산을 챙기면서 큰 아이, 작은 아이가 쓰던 뽀로로 만화 케릭터가 그려진 파란색, 분홍색 우산과 어른에게 맞는 키 큰 장우산까지 세 개를 찾아냈다. 어른 우산은 먼저 나가는 큰 아이에게 들려줘야 하고 이 작은 뽀로로 우산들은 둘째와 막내에게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침 준비를 위해 된장단지를 꺼냈다.


우리 애들은 모두다 엄마가 끓어주는 맑은 된장국을 좋아한다. 끓이기도 쉽다. 엊그제 옆집 인심 좋은 부부가 애호박 두 개, 풋고추, 오이, 가지, 상추 등 몇 가지 야채를 선물 세트처럼 커다란 봉지에 가져다 주셨는데 그 호박에다 두부와 양파, 그리고 맵지 않은 풋고추를 못생긴 모양으로 썰어 넣고 엄마 아빠가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만든 집 된장을 풀어 어떤 첨가물도 넣을 것도 없이 끓여 내기만 해도 구수한 된장국이 된다. 금방 한 밥을 말아서 아침으로 주면 먹기에도 편하고 술술 넘어가니 빨리 먹어라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에 기분까지 좋아지므로 이만한 진수성찬이 따로 있을까 싶은 것이다.


큰 아이가 먼저 가고 난 뒤, 막내는 장화를 신고 간다는 생각에 큰 형부터 신기 시작한 그 노란 장화를 거실까지 신고 들어와 우산을 펴고 들 뜬 기분을 그렇게 표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 선우가 말도 없이 현관 앞에서 운동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단우가 신은 장화는 뒤축이 닳아서 누가 봐도 헌것인데 선우 장화는 정말로 새것 자체였는데도 선우는 그 개구리 왕눈이 초록색 장화를 신고 학교에 가는 것이 싫은 모양이었다. 아이의 말은 이제 자기는 어린애가 아니라 1학년이 되었는데 유치하게 개구리 장화를 신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된다는 거였고 그 뽀로로 우산은 아예 갖고 가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게 아닌가. 여전히 밖에는 새벽보다 더 굵어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가는 몇 발자국을 걸어가지 않아도 양말까지 흠뻑 젖을 것이 뻔했다. 선우에게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약간은 강압적으로 말을 한 뒤 막내와 먼저 집을 나와 승강기 앞에서 선우를 기다렸다. 선우는 왕눈이 초록색 개구리 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왠지 미안하면서도 고마움마저 들었는데 우산이 문제였다. 정문 앞을 지나는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셋 중에 하나는 장화를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선우는 끝까지 뽀로로 우산을 마다하고 나는 겨우 아이를 교실 앞 까지 데려다 주면서 그렇게 장마 첫날의 등교는 마무리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선우의 기분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어릴 적에 왕복 이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었다. 당연히 비가와도 걸어갔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은 우산을 쓸 것도 없이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면 동무들과 첨벙 첨벙 뜀박질도 하면서 그렇게 다녔던 옛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도 솔직히 내 우산이 부끄러웠던 날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우산이 흔한 물건도 아니고 더욱 우리 집은 여덟 식구나 됐으니 먼저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좋은 것을 골라갔고 언제나 내 차지는 우산대가 부러져 그 모양이 찌그러져 있는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산 천이 찢어져서 비가 새는 것일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색깔 또한 언제나 바랜 검정, 파란색처럼 전부다 내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비를 맞고 갈 수가 없어서 그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갔었다. 선우야 정문 앞까지 차를 타고 가니 우산을 안 갖고 가겠다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 어릴 때 그런 만한 환경은 아니었으므로 마음속으로만 불만을 이야기 하였을 뿐 비 오는 날 등굣길이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다.


장마도 시작됐고 아이의 기분도 풀어 줄 겸 가볍고 사이즈도 크고 아이 입장에서 들어도 창피하지 않을 만한 것으로 우산 두 개를 주문했다.


정말로 거의 온 종일 세찬 비가 쏟아졌다. 오후에 잠깐 출장을 나왔다가 차 안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던 중 와이퍼가 하도 정신없이 움직여서 운전이 더 방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아스팔트 위로 뿌연 물보라가 일 만큼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던 것인데도 말이다. 도착지에서 주차를 했는데도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세찬 비가 내렸다. 문득 작년 여름, 큰 아이가 몹시 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급하게 가던 날이 생각났다. 학교로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데 맑은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졌다. 센서로 작동되는 와이퍼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전면 차창으로 나는 반대편 도로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분명하게 두 눈으로 보았었다.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은 한 여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복사열을 가르면서 답답하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을. 그런 것이다. 소낙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중앙분리대를 기준으로 내가 달려가고 있는 곳에만 비를 뿌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이한 광경처럼 보이는 풍경은 여름철 운이 좋다면 누구든지 한 번쯤은 경험하거나 볼 수 있는 매우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이다. 그날 나는 열이 나는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학교로 달려가던 길에서 두 개의 하늘을 경험했었다. 아이를 데리고 같은 도로의 반대방향을 달릴 때는 이미 그 먹구름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첫 장마는 그렇게 올해는 많은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라도 하 듯 늦은 밤이 되도록 계속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어제와 비슷한 그 시간, 나는 매우 신선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 찬 새벽을 만날 수 있었다. 큰 아이는 돌아올 길에 비가 내릴 것을 염려하며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갔고 선우는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정말로 반가운 듯 왕눈이 초록색 장화를 신발장에 올려놓고 운동화를 내려 신었다. 막내 단우 만이 또 다시 다 낡은 노란 장화를 신었다. 학교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선우는 엄마에게 우산을 꼭 사오라면서 다시 한 번 더 당부하고 가장 가벼운 뜀박질로 교실 쪽으로 달려갔다.


막내와 단 둘이 도로 옆으로 나 있는 숲의 나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운전하는데 그 만큼 시야가 밝아지고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날이 언제던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공기는 맑고 부드러우면서도 상쾌하고 신선했다. 모처럼 차창을 모두 내리고 차 안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단우와 이야기를 했다. 어제 빗속에서는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니 나무들이 쑥쑥 자라겠다고 하던 단우가 오늘은 바람이 시원하니 나무들이 오늘은 쉴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할 줄 아는 지 내 아이가 하도 기특하여 보드라운 볼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이가 느끼는 그대로 표현했듯이 나도 그 순간 비슷한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온 종일 내린 비는 빗속에 서 있던 내게 힘든 밤, 힘든 날을 말하는 것이라며 비가 언제 그칠 줄도 모르고 아무 잘못도 없는 하늘을 원망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 맑게 높아진 하늘을 보면서 흐린 날은 언제나 이렇게 맑은 날로 돌아올 줄 알았으면서도 불평하였던 것을 반성했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 그 자체를 두고서는 이를 불평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심이 들어가지 않은 순순한 자연적인 원인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할지는 몰라도 날씨자체를 비난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또 다시 맑은 날로 다가와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렇듯 행동으로는 약속할 수 있으나 감정은 어떤 보증이나 담보로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자연만큼 또 정직한 게 있으랴, 자연만큼 믿음을 주는 것이 또 있으랴, 인간은 그저 가끔 자기기만을 통해 자연에 최대한 가까운 존재처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뿐 절대로 그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물며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따라 감정적으로 치우친 삶을 살아온 사람의 일시적인 행동과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진리 또한 이것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나는 아주 최근에야 행동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만 투쟁하고 행동으로는 자제해 왔던 그동안의 삶의 태도에 결정타를 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서의 행동이란 주로 화의 감정을 수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내 앞의 그 상대방이 나의 화를 감당해야 할 의무를 지닌 자인가부터 생각해 본 것이라면 화를 내는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에 다시 지저분한 먹구름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세찬 비가 내릴 것을 예고하는 행동이다. 나는 하늘의 이 행동 변화는 믿는다. 더 이상 믿음을 답보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 자신을 잘 알며 나 또한 지금까지의 나의 행동을 믿는다.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저녁에는 말려도 들고 간다고 우길만한 우산을 가져다 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나는 행동으로써 내 약속을 보증할 것이다. 그 대상자가 내 아이들이라면 마땅히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가 될 때는 ‘또 다시 나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감으로써 믿음을 심어줄 것이리라.’고 다짐한다.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제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비를 맞고 서 있지 않고 그저 비를 피해갈 것이다.



2018. 6. 27. (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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