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이틀 전의 일이다. 큰 아이, 둘째아이 학교를 돌아 막내 유치원까지의 동선을 마치고 파출소에 왔을 때는 출근 마감을 20여분 앞 둔 시간이었다. 파출소 주 출입문에 ‘신고 출동 중’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고 번호키 자물쇠가 잠겨 있는 것으로 보아 팀장님까지 출동을 해야만 했던 다급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112신고사건시스템을 확인해 보니 약 30분전에 ‘식칼 난동’이라는 간단한 제목으로 신고가 된 건으로 팀의 3명 전부가 현장으로 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임을 짐작했다. 덧붙은 설명은 ‘전 남자친구가 집 앞으로 찾아와 식칼로 찔러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말 그대로 최근 그 범행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고 잔혹하여 언론에서도 크게 이슈화 되었던 적이 있는 ‘데이트 폭력’ 사건이었다. 무전기를 통해 현장 상황이 생중계처럼 흘러나오고 있었고 형사과 강력팀의 당직반원들도 모두 현장으로 나가 대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식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자를 제압하지 못하는 가장 심각한 상황까지 발생될 것을 고려하여 최대한의 경력을 투입한 것이다.
약 1시간이 지난 후 112순찰차 뒷문에서 수갑을 찬 한 남성이 경찰관에게 이끌려 파출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피의자 도주 방지 의자에 한손 수갑으로 바꿔 결박된 그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마치 무엇인가 대단히 할 말이 많이 있다는 것처럼 매우 억울해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파출소에 근무하는 유일한 여자 경찰관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고개를 수그리고 그 남자의 눈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던 일을 계속 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팔이 아프다는 둥, 목이 마르니 물 한잔을 달라고 하는 둥, 담배를 한 개비 펴야겠다는 둥, 똥이 마려우니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수도 없는 핑계로 파출소 내 경찰관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물을 한잔 가져다주니 갑자기 온순한 양이라도 된 듯 고개까지 수그리며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찰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으로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남자의 조사는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이 진행했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이 46세, 직업 00산업의 00생산과 00계장, 가족관계 이혼한 전처에 아들이 1명 있으나 00원룸에 혼자 거주하고 있음. 신고자는 자신이 계장으로 있는 팀의 생산직 직원으로 약 두 달간 연인 관계를 이어옴. 어젯밤 갑자기 결별통보를 하여 홧김에 밤새 술을 마시고 집 앞으로 찾아간 것임. 신고자, 즉 내연관계에 있던 그 여자는 남편과 자식이 있는 주부임].
여러 가지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덧 한 시간가량 지났고 그 사이 그 데이트 폭력 사건 흉기 난동의 피의자인 그 남자도 술기운에서 점점 깨나고 있었다. 처음에 끌려와 소리를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도 잘하고 반말을 하는 것도 없이 착하고 온순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파출소 조사가 마무리되어 경찰서 형사과로 인계되고 그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점심시간이 다 된 무렵,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여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의 여자, 다짜고짜 그 놈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나에게 묻는 그 여자는 아침 데이트 폭력 사건의 신고자, 바로 피해자였다. 나는 더 친절할 것도 없이 그렇다고 불친절하게 굴 것도 없이 딱 평소의 상식대로만 안내를 해 주고 전화를 끊었다.
버젓이 남편이 있고 자식까지 있는 여자가 혼자 사는 남자와 바람을 폈고 이제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일방적으로 결별을 선언한 뒤 상간남자에게 죽이겠다는 식칼 위협을 받고 피해자로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피해자인 그 여자, 내 기준으로 피의자의 내연녀였던 그 여자는 그 남자가 구속이 되는 것인지를 물었는데 그래서 그것은 조금 더 조사를 해보고 나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우리도 구속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그러면 내가 지금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해야 되는 상황은 아닌지를 물었고 그래서 나는 혹시 다른 곳으로 피신해 있는 곳이 있는지를 먼저 묻고 그렇다고 말하는 여자에게 오늘 내일 정도는 피해 계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묻고 싶은 것이 더 있는 것인지 할 말을 머뭇거리다가 정말로 그 남자가 식칼을 들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 직접 출동을 하지 않아서 칼은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더 궁금한 사항은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이 다시 전화 통보를 드리도록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인 상간여자와의 통화를 끝냈다.
분명 집 밖에서 그 남자는 식칼을 들고 무섭게 문을 두들기며 여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여자는 꼭꼭 걸어 잠근 집 안에서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심장이 콩 알만해질 정도로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상간남자가 그렇게 흥분하고 자극받은 원인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상간여자한테도 그렇게 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 둘은 함께 부적절한 관계를 두 달여 동안 유지했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상간남자는 쇠고랑을 차고 경찰에 붙잡힌 죄인이 되었고 상간여자는 몸을 피신해서 안전한 곳으로 가 있으라는 안내를 받는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맞다. 칼을 휘두른 자는 남자였다. 분명히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그런데 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기에 그 남자가 그렇게 한 원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중요사건의 범인을 현장에서 검거했음에도 왠지 그다지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던 한 나절이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일 처리에 있어서 경찰관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직업관에 있어 사치고 감정의 낭비일수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 2. 남편을 치매로 착각한 아내
112신고접수시스템에서 다급한 사건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이 알람에 익숙한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들은 그 알람이 제발 울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근무에 임한다. 오전 9시를 막 넘긴 시간, 울리지 않길 바라는 그 알람이 울렸다. 치매 질환이 있는 93세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간 뒤 그 행방을 찾을 수가 없다는 신고였다. 치매질환이 있는 노인이 집을 나가서 다시 되돌아오지 못해서 며칠씩 수색 끝에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 긴장을 하고 관련 연계 부서인 여성청소년 실종 전담반에 연락 후 현장으로 나갔다. 나는 직접 현장을 가지 않고 파출소에서 경찰서 상황실, 담당 부서, 그리고 현장으로 출동한 우리 직원들과의 연락을 유지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신고자는 70년을 넘게 함께 살고 계시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말씀은 영감이 아침도 같이 먹지 않고 새벽부터 집을 나간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하셨고 오늘이 요양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날인데 요양사가 직접 집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러 오기로 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지금 행방불명 되셨다. 할아버지께서 진료를 받으신다는 요양병원에 연락을 해 보았다. 할머니 말씀대로 요양사가 집으로 방문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 측에서는 할아버지 명의의 핸드폰이 있는데 직접 전화를 해보자고 하여 전화를 시도하였으나 전화기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시간은 점점 정오를 향해가고 있었고 날씨는 태풍이 지난 뒤의 장마철의 전형적인 날씨로 무덥고 푹푹 찌는 그런 날씨였다. 안 그래도 연로하신 어르신이 이런 날씨에 길거리에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상황은 매우 심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112타격대까지 동원하여 수색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 할아버지 명의의 핸드폰으로 전화 연결을 시도하는 중 기적과도 같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할아버지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혹시 000 할아버님이세요? 저는 00파출소 경찰관입니다. 지금 계신 곳이 어디신지 알 수 있으세요? 새벽부터 집을 나가셔서 안 들어오고 계신다고 할머님께서 신고를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점심 때를 넘겨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셨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할아버지는 오랜시간 손꼽아 기다려오신 6.25참전용사를 위한 지역 행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셨던 것이고 그런 곳을 스스로 찾아 가실 정도로 총명하시고 아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정정한 체력을 유지하고 계신 분이셨다. 사실로는 함께 살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치매 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우리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반전이 숨겨져 있던 사건이었다. 말 그대로 해프닝이었다.
각자의 업무로 복귀한 경찰관들은 제 각자 한마디씩 웃음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그 노부부를 보면서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반나절 혼비백산 정신을 빼 놓고 일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 노부부가 함께한 세월을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어떤 마음으로 세월을 지나왔을지 상상만 해 보아도 그저 부럽고 존경스럽다는 생각만이들 뿐이었다.
만약, 부부가 결혼식을 올려도 꼭 한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그런 일종의 관념이 처음부터 없기때문에 같이 살지 않는 부부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혼과 같은 결과로 종료가 되는 결혼은 어쩌면 지금보다 적거나, 아마 성공적인 결혼은 지금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6.25참전용사 행사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분명히 하시고 나가셨던 할아버지를 치매 질환이 있는 할머니께서는 그런 할아버지가 거의 평생을 살아 온 집을 찾아오지 못할까봐 걱정하여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렇게 오매불망 할아버지를 찾아 다니셨다.
남들은 다 재미있는 일이라고 웃으면서 당신 나이도 잘 모르고 계셨던 할머니를 두고 한 마디씩 하셨지만 나는 왠지 눈물이 났다. 내겐 웃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