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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편. 아는 아이

마음이 힘들면 그냥 문을 열고 나와 봐. 아주 쉬운거야!

by 김현이

“엄마 있잖아. 아침에 말을 안 들어서 미안해. 그래서 마음이 어려웠어. 내가 나쁜 괴물 몸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어. 그래서 울었어. 그냥 눈물이 나와서 울어 버린 거야. 사실은 친구들 앞에서는 우는 게 창피했는데. 선생님이 괜찮다고 안아 주셔서 금방 눈물을 그쳤어. 그리고 엄마와 약속했던 것을 생각했어. 뽀뽀 한 번, 안아주기 딱 한 번만 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면 엄마가 저녁에 1등으로 데리러 온다는 약속 말이야. 그래서 괴물의 몸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어. 어떻게 나왔냐고? 그냥 문 열고 나왔지. 아주 쉬어. 엄마도 마음이 힘들면 그냥 문을 열고 나와 봐. 그럼 돼. 알았지?”


괴물 몸속에 갇혔다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는 내가 물어 본 것이 아니라 큰 아이가 했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단우야! 정말로 어떻게 괴물한테서 탈출한 거야?”

“아! 그냥 문을 열고 나왔지.”


며칠째 교실 앞에서 헤어지는 것을 어려워했던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볼 여유조차 없이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까치발로 두 팔 벌려 우는 아이를 외면했었다. 나도 빨리 단 몇 분이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고 그래서 우는 아이한테서 도망치다시피 하여 유치원 계단을 달려 내려왔었다. 저녁에 잠자리를 펴는 내게로 어흥! 하고 사자 흉내를 내면서 다가오는 아이를 두 팔로 보듬어주며 사과했다. 그러자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계단을 달려서 내려갈 때 괴물에게 잡혀 먹인 것 같았다고 하면서 이제는 약속대로 한 번 뽀뽀하고 한 번만 안아주면 울지 않겠다고. 그리고는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라고.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은 사실은 하루 종일 내가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단우야! 엄마가 그렇게 빨리 뛰어가서 미안해. 한 번 더 안아주고 왔어도 괜찮았는데 그렇게 못해 줘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엄마가 안 그럴게!’ 하고.


“엄마, 그런데 이때는 엄마하고 아빠하고 아주 친했어? 사진을 보니까 엄마는 공주님 같고 아빠는 멋져. 아, 그러면 그땐 아빠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펴서 친했구나! 지금 보니 엄마는 예쁘고 아빠는 안 멋져!”


술 담배에 대한 잔소리와 다툼들이 아이의 입장에서 그렇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벽에 걸린 결혼사진을 보면서 아이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날 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속죄하는 기분으로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주고 보드랍고 뽀얀 아이의 볼과 반쯤 벌린 입술선이 또렷한 붉은 빛 감도는 입술에 소리 나지 않도록 입을 맞추었다.


우리 집에서 나이가 가장 적은, 태어난 지 지금과 가장 가까운 막내, 단우는 어쩌면 생각 샘의 깊이가 얕을지는 모르지만 보고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마음을 가진 존재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웬만큼 살아 본 사람의 정직함이라는 것은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 표현의 정직함과는 사뭇 다른 것일지도 어쩌면 어른의 정직함의 표현이란 내면의 깊숙한 생각의 늪에서 수도 없이 재 보았을 양심과의 저울질에 대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때로는 정직하다는 것도 감정의 사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말은 과장하지도 일부러 꾸며 말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웬만큼 살아 온 어른인 엄마의 계산적인 생각을 부끄럽게 만드는가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며칠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내 아이들에게 잠들기 전 보듬어 주지 못했던 게으름을 몹시도 피곤한 몸으로 이겨내고 짧은 일기를 쓰고 잠이 들었다. 반성문이었다.


[아이를 마땅히 잘 길러내야 하는 엄마는 절대로 아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너희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지는 무엇보다 내가 지금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노력이 다하는 날까지 하루하루의 임무를 성실하게 완수해 나간다면 내가 염려하는 일들은 쉽게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쁨이 곧 내 삶의 즐거움이 될 것으로 절대로 한 눈 팔지 않고 살 것이다.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내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다. 행동으로써 그것을 증명해 낼 것이다. 만일에 또 다른 역경이 나를 흔들어 놓는다고 해도 기꺼이 맞서고 감당해 낼 것이다. 나는 엄마니까. 그리고 이제까지도 그렇게 해 왔으니까.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책임을 졌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내 아이들을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해 왔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얼마나 잘 망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사소한 말들, 행동에서 느꼈던 내 감정들을 단 한 줄이라도 적어놓기 시작했었다. 이런 사소한 결심들을 하나하나씩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그 때 그때의 감정을 마음으로만 느낀다는 것, 그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미래를 보증하지 못한다. 나 자신은 기억력이 남다르고 내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그 명확함을 증명하기는 하지만 내가 믿고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를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해내거나 담보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내가 가장 먼저 잠이 든 날 밤, 큰 아이와 둘째 아이와 셋이서 진실게임을 했다. 한 가지씩 질문을 하고 진실로 대답을 하고 나서 상대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다만 상대방의 대답이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질문의 기회를 박탈하고 남은 두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게임의 진행 방식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묻고 아이들이 내게 질문하도록 했다. 말을 이어갈 기운이 없을 때까지 대답해 주다가 나도 모르게 먼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곁에 와 나를 흔들어 깨워 왜 말을 하다가 마느냐고 성화를 댔지만 그래도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만 갔었다.


고단했다.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지쳐서 내가 언제 어떻게 잠이 드는지도 모르게 잠으로 빠져드는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길게 숙면하지 못하고 한 시간, 또 어떤 날에는 한 시간도 못 되어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면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또 다시 혼자 남게 된 시간이 그렇게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 이렇게 반복된 밤의 시작은 벌써 몇 년째 계속되었고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깨어있는 밤 동안 무엇이라도 해야 만 했다. 보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을 고민했다. 그것이 바로 일기쓰기였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기록했다. 이것을 일전에 결심했었던 '아무리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글로써 쓸 수 있는 삶을 살아가자.'를 실행으로 옮기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평소에 자주 놀라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자주 감동받지 못하는 이유 전부다가 일상에 대한 관심과 세심함의 부족 탓이라며 무엇이라도 글로 써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자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마음을 위로했다. 아이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느끼는 마음, 내 탓이라고 여기는 자책감, 일종의 죄의식으로 내 잘못을 내재하고 있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에 그 어떤 일보다 우선순위의 의무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마음도 그렇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글쎄 장담할 수는 없다. 이런 나조차도 확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삶이란 것이 나에게 진정 비참하고 쓸쓸한 것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내 자신의 솟구치는 욕망을 속이고 의도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위한 삶으로 살아볼 만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여기면서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진실로는 고통으로 다가올 날들이 얼마나 많게 될지는 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쓴 글을 읽어도 공감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내 글을 읽게 될 때 나와 내가 쓴 글을 이중으로 읽게 될 것을 염려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미 알고 있는 인식이란 것은 슬픔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픔으로써 다가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용기라는 것을 안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자는 작은 어떤 것도 진정으로 이루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 아이의 그 순진함과 솔직함과 정직함을 이렇게 때 묻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는 없을 테지만 노력하는 데서 오는 그 기쁨을 누리리라. 또 이렇게 나는, 내 아는 아이를 통해 배우고 다짐한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하나로 겹치는 이 신비로운 시간 – 자정이 막 지난 지금 오늘의 일기를 끝내고 비로소 할 일을 마쳤다는 휴식의 여유로움으로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2018. 7. 13. 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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