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도 우리들은 아홉 시가 넘어가고 있을 때 잠들기 전, 각자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예민한 막내가 엄마를 따라서 새벽에 일어나기를 반복하더니 온 종일 낮잠 잘 여유도 없는 유치원 활동을 하고 이 시각 밤이 되면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지 못해서 가장 먼저 잠이 들어 버렸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그 두 번째는 내 차례였다. 그날 밤도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내 가슴을 짓밟기라도 하는 것 같은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잠든 지 몇 십분 지나지 않아서 깨어났다. 처음엔 온 몸이 이다지도 피곤하니까 잠든 순간조차도 그렇게 몸살을 앓는 것인가 하는 단순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잠꼬대라도 한 것인가? ‘악’하고 비명 소리를 냈던 것인데 사실은 그 조차도 꿈 속에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내 육성으로 낸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었고 다만, 내 옆으로 와 있던 큰 아이, 작은 아이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서야 지금 상황이 꿈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정우야, 무슨 일 있어?”
“엄마! 엄마?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응, 엄마 괜찮아. 무슨 일이야 정우야!”
“엄마를 계속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엄마가 또 저번처럼 기절한 줄 알았어. 숨을 쉬는지 코에다 귀를 대도 숨소리도 안 들리고 배가 오르락내리락 하지도 않고. 나는 엄마가 죽은 줄 알고......”
큰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정우야, 괜찮아! 엄마 괜찮은데 왜~! 울지 마!”
말하고 덩달아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둘째 아이를 함께 보듬어 주었다.
그 날 밤 막내가 잠이 드는 것을 보자마자 최근 여느 날처럼 나도 모르게 아기처럼 스르르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막 잠들기 시작한 순간, 가장 깊은 수면에 빠지게 되므로 큰 아이가 ‘엄마!’하고 부르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고 계속 그렇게 작은 아이까지 엄마를 부르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아이들은 엄마가 잘못된 줄만 알고서 큰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응급처치 대로 내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것이었다.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내 가슴을 누른 것인지 심장 언저리에 통증이 남아 있었고 큰 아이 얼굴도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내가 먼저 웃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를 제 3자에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다가 죽을 일은 없겠네.’하고 쉽게 웃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 상황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심장이 멈춘 엄마를 살려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두 아이에게 엄마는 지금 아주 건강한 상태이며 절대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며 보듬어주자 금방 울음을 그쳤다. 아이는 원래 사소한 것에도 쉽게 안심하고 큰 위안을 받는 법인지라 두 아이 모두 금방내로 잠이 들었다. 큰 아이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았던 슈퍼맨 레고 탁상시계 버튼을 눌러 전자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22시 조차 넘지 못한 아직 한 밤중도 안 된 시간이었다. 내 기분은 몇 시간을 푹 자고 난 뒤에나 올 법한 편안함으로 종아리 붓기는 다 빠졌고 몸가짐이 매우 가볍게 느껴졌다. 잠든 큰 아이 이마에다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정우야! 엄마가 너 때문에 살았다. 정말로 고맙다. 내 아들, 아가야!’
엄마가 행복해야 그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말로 항상 내 친한 선배들은 나를 먼저 챙기는 삶을 살라고 그렇게 충고했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말이지만 요즘 나는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인가를 노력하고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소 엄마의 모습대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할 뿐이며, 그렇다고 현재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일부러 거짓말을 끌어다 붙이면서 사실을 꾸미지도 않는다. 전처럼 사소한 일이라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하며 안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며 씻겨주고, 때론 훈계도 하면서 그렇게 지낼 뿐이다. 엄마인 나는 이렇게 시간에 의지하며 그것이 주는 힘을 믿어보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허름한 보금자리와 소박한 살림을 좋아하며 내 아이들을 사랑하며 책을 아끼고 언제나 글쓰기를 동경한다. 지금 처한 현실이 최악이고 고통의 연속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마음가짐은 전과 같으며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고 있는 믿음으로 일종의 성실함의 증명이자 부지런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생각대로 그날 밤 정말로 내가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두려워진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살고 있는 모든 것은 전부 다 죽음을 내재하고 있다. 다만, 죽음이라는 종국의 결말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역경을 의식하면서도 성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며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것은 죽음이라는 결과로 향해가는 목적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에 도달하는 동안 흘린 땀으로 완성해가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설령 내가 죽음이라는 것을 한번 씩 떠 올린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곧, 거의 언제나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오늘 밤에라도 당장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수많은 고민과 걱정은 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엇이 나의 의무이고 책임이며, 꿈인지가 보다 더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므로.
마치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은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부부사이의 사랑을 유지하는 것도 어쩌면 힘든 노력을 필요로 하거나 대단히 큰일은 아니라고. 그저 믿음을 해치는 의심과 의혹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것을.
나는 다시 한 번 오늘의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거슬러 대항해 오는 것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그것에 몰두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차라리 침묵하는 형벌로써 나 자신을 가두며 지나가려고 한다. 시간을 믿어보기로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