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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May 19. 2016

엄마의 도전

MS#3-셰프 로이 최보다 위대한 엄마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서글픈 합리화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갖지 못한 자들이 결국 내려놓음을 선택하면서 평화를 얻고

<느리게 걷기>로 안일함을 포장하는 것처럼 ---.

적어도 이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 그랬다.


셰프 로이 최.

시사 주간지 타임지가 <2016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한 한인 요리사.

젊은 시절, 미국에 사는 한인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가장 염려하는 일들을 일찌감치 겪었던 인물.



그런 그를 키워낸 엄마를 만났다.

1946년생이니 미국나이로 일흔이다.


디자이너인 엄마의 영향으로 캘리포니아 아트스쿨로 유학을 와서는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리곤 보석상을 열어 33년 동안 보석 관련 사업을 하며 딸과 로이 최를 키웠다.

원래 꿈이 소설가일 정도로 여리고 섬세했던 감성.

이른의 할머니는 고스란히 그 감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곱고 귀여운 표정과 눈웃음.

로이 최가 누구의 입맛을 닮아 절대미각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아니라고 한다.

아버지의 입맛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며

그 부자의 입맛을 맞추느라고 은근 고생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센스가 소녀 같다.


남편은 아직도 입맛이 살아 끼니때마다 맛 타령을 하신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로이 최도 입맛에 안 맞으면 상차림을 다시 할 정도였단다.

주변에서는 음식 잘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솜씨인데도

정작 같이 사는 두 남자 입맛은 시어머니 변덕만큼 까다로웠다


그러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받게 되는 바람에 비즈니스도 중단하고 중환자실에서 지내게 된다.

살면서 누구나 경계 하나를 지나가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자신에게는 그때부터가 다른 인생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다시 살아난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했다.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 한식 소스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로이 최가 어렸을 때, 어떤 음식에 넣어도 맛있어서 <매직 소스>라고 불러주던 실력.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선물로 주면 무엇보다 고마워하던 소스.

미국 사람들에게 한식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건 번거로운 요리 강습이 아니라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소스가 제격이라는 아이디어에 탄력을 받았다.

아들에게 이 계획을 상의하자 당연히 반대였다.

돈이 필요하시면 드릴 테니 그냥 가만히 계시라는 효성(?)을 뿌리치고

엄마는 결국 일을 저지른다. <Mommy Sauce>의 탄생이다.

모든 국 종류를 해결하는 국간장 소스, 채소무침과 김치류를 해결하는 김치소스, 불고기 소스,

매운 불고기 소스 그리고 로이 최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모든 매운 요리 종류의 종결판 매직 소스까지

몇 년에 걸친 연구와 노력 끝에 다섯 가지 소스를 세상에 선보인다.

그렇게 반대하던 로이 최도 결국은 엄마의 새로운 꿈에 일조를 한다.

로이 최의 디자인팀이 용기 제작과 디자인을 도왔다.

나 : 아드님의 위치와 영향력이 여기까지 오시는데 도움이 되던가요?
엄마 : 남들은 제가 아들 등골 빼먹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마 제가 더 유명해질걸요. ㅋㅋㅋ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방송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모양새를 갖출려니 그냥 물어본 건데

벌써 요리용 파우더를 준비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KFC의 커넬 샌더스 할아버지가 다 들어먹고 파산한 게 65세였나?

1000여 곳이 넘는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사업 설명을 한 끝에 장사를 시작한게

그리고 3년 후였다.


내가 만약 65세에 폭망하고 파산까지 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재기, 도전, 믿음, 희망

아마도 이런 애들 먼저 죽이고 어느 다리 위에 서있을 것이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까지 하고

이제는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노후를 즐길만한데

그렇게 사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할머니.

A man will rust out quicker than he'll wear out.

커넬 할아버지가 즐겨 읊조리던 이 말을

2016년 다른 할머니에게서 듣는다.


보는 라디오라서 스튜디오에 설치된 TV 카메라 4대가 자신에게 집중되자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마미 소스를 집어 들기보다

아들 로이 최가 출간한 LA Son Roy Choi가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책을 집어 자신의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비즈니스 우먼으로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던 그녀가

마지막에 보여준 모습은

결국 엄마였다.

우리들 엄마가 우리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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