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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May 26. 2016

나이 들었다고 느낄 때

청춘에게 젊음을 선사한 건 신의 실수다, 실수하신 거다---

나이가 든다는 게 뼈에 바람이 들고, 세포가 중력을 못 이기고, 없던 병들이 현실이 되는 것만은 아닐 거다.

분명히 세 가지 정도는 10년 전과 다름을 절감한다.


1) 편애가 심해진다.

: 이제는 싫은걸 참기가 벅차다. 박제된 것마냥 어느 순간에도 한결같은 표정을 자랑하던 세월이 있었다.

  감정이 제대로 절제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교양이라고 믿은 탓에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못했다.

  인생에 하등 도움될 것 없는 인연들에게 시간을 뺏겨도 그걸 네트워킹이라고 믿었다

  알래스카 인디언 속담에 얼음이 깨지기 전에는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 모른다고 하더니

  불꽃같던 시절, 인생이 난장이 되었을 때 떠난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소프트 방크의 손정의가 폭망 했을 때, 얼마의 사람이 남아 그의 재기를 도왔다지.

  나중에 손정의는 그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했고 지금도 그들하고만 교류한다고 들었다.

 가장 잘해줬던 인간들은 떠났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남았다.

 철이 들은 건지, 나이가 들은 건지 호불호가 명확해지고 편애가 시작된 게 그 무렵이다.


2) 짜증도 심해진다.

: 나이가 들면서 느슨해지는 건 괄약근만이 아니다. 정신줄도 같이 풀어져 버린다.

  젊었을 때는 나만 잘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이가 드니 남이 나에게 못하는걸 참지 못한다.

  그가 나에게 하는 게 괘씸하고 얄밉고 화난다. 그리고 그걸 결국 표현한다.

  누가 나에게 화를 내는 건 성격이 나쁜 것이고 내가 화내는 건 늘 정당한 이유가 있다

  분명히 감정조절 정도는 잘 훈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화하는 방법이나 절차도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키워온 내가 아니다.

  지하철에서 막무가내로 소리만 질러대던 별 미친 개저씨가 아침마다 거울에 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건 축적이 아니라 침해다. 주변 사람까지 모두 쓸어내 가는---


3) 갑자기 정치 얘기를 많이 한다.

: 윈스톤 처칠이 그랬다.

  이십 대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거고 사십 대에 보수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거라고.

  그 후는 어떻게 되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알 것도 같다. 그냥 다 싸잡아 싫어진다.

  처녀도 아닌 게 순결한 척한다며 진보를 혐오하고

  구태의연하다며 보수의 꼴통을 힐난한다.

  내가 가난한 건 다 그놈들 때문이라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중의 하나가 보통 사람들을 보통 이하로 취급한다는 거지만

  정치를 떠드는 나 같은 사람이 자주 범하는 오류중의 하나도 보통 정치인들을 쓰레기 취급한다는 거다.

  정치를 외면한 자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를 당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플라톤은 그래서 틀렸다.

  지배받을만하니까 당하는 거다.

  

  그래도 한때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즐거웠다고, 또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다들 바쁘다고만 하고 그나마 모이는 사람들은 다 지긋하시다, 연세가.

  오늘은 절대 정치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누군가 한마디만 하면 그 몇몇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죽자고 싸운다. 싸우다가 삐져서 집에 가고, 그러다 심심하니까 화해하고 또 싸운다

  커피숍에서 괜히 공부하던 학생들만 자리를 피한다.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누군가에게 날렸던 그 한심하다는 눈짓. 그걸 오늘 아침에도 봤---다.


아나톨 프랑스였지? 내가 신이라면 청춘을 인생의 끝에 놓았을 것이라고 한 사람이.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출간한 천재가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청춘이 인생의 어디에 있건 그따위는 상관없는데 단지 한 가지,

청춘에게 젊음까지 허락하신 건 분명 신의 실수다.


젊었을 때는 신념이라는 것에 제법 용감했는데

나이 먹고 이제는

개뿔도 없으면서 자꾸 비겁해진다.

떠난 사람들을 원망하고

성질이나 내고

내가 가난한 건 다 정치하는 그놈들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정작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비겁함을 젊음을 앗아간 신의 실수라고 변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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