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타투

혜킬이 씁니다

by 혜파리

엄마와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타투였다.


어린 시절부터 타투를 갖고 싶었다. 늘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메이크업이나 패션은 언제든지 바꿀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는 일시적인 치장술이었다. 하지만 타투는 영구적이다. 궁극의 액세서리랄까?


현재 총 여섯 개의 타투를 가지고 있다. 로망과는 별개로 우선 보통 보수적인 게 아닌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고, 본격적으로 부모의 품을 벗어나 혼자가 되었을 때 사회가 나의 숨길 수 없는 자유분방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모두 반팔 티셔츠를 입으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다. 의미가 깃든 타투보다 깃들지 않은 타투들이 더 많다. 나에게 타투란 장식적인 기능을 잘 수행하는가가 최우선 조건이었기도 하고, 가끔 타투 주인의 가치관 변화로 후회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에 나는 불변하는 정보나 단순히 예쁜 모양을 주로 선택했다. 그리고 재작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 의미 있는 타투를 하나 새겼다.


스물세 살부터 비밀스럽게 새겨왔던 타투들은 개수가 늘어갈수록 나시를 입으면 누구라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점점 크고 진하고 화려해졌다. 나시를 입을 때면 화려한 장식이나 장신구 없이도 개성을 최대한으로 드러낼 수 있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에 타투가 추가되었고 반팔 티셔츠들의 수는 줄었다.


지난 10월 엄마의 추진력으로 세 모녀의 베트남 여행이 계획되었다. 일주일이라는 꽤 긴 기간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는데 무슨 옷을 챙겨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옷장에는 죄다 나시 밖에 없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반팔 티셔츠가 없었나 하며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지만 10월의 한국은 가을, 점점 더 뜨거워지는 미래의 여름들에 자주 입지도 않을 반팔 티셔츠나 래시가드를 사는 것은 비효율적인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타투를 하던 스물세 살에게 어른이란 스물일곱 쯤이었으므로 그 무렵에는 엄마에게 타투를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내 예상보다 빠르게 흘렀고, 이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서른을 앞두고 있었다.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아직도 타투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스물세 살로 돌아간 기분으로 선타투 후뚜맞(허락 없이 타투를 하고 후에 부모님께 두들겨 맞는다는 뜻)을 결심했다. 엄마가 곱게 보아 넘길 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자꾸 주변 친구들에게 시원한 답이 없는 물음을 날렸다.


"인생에서 본 중에 가장 실망한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긴 할 테지만, 한 번 공개하면 편해. 허락을 받을 수 없다면 포기하시게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끝까지 숨길 수 있었는데 숨기지 않은 거짓말하지 않는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고 해."

"신나게 두들겨 맞겠구먼~ 어머니 반응 후기 좀."

"헉, 어머니가 아직 모르시는구나... 힘들겠다." 등 절망적인 답변들이 돌아왔다. 후 각오 단단히 해야겠구나.


짐을 싸는 마지막까지도 자주 입지 않는 티셔츠를 챙길까 말까 하다 결국 챙기지 않았다. 언젠가는 엄마도 알아야 할 터였다. 그래도 엄마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 은근슬쩍 운을 띄워 충격을 덜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베트남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새벽 비행이라 하루를 꼬박 새운 턱에 엄마는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신나 보였다. 여름옷으로 갈아입기 전까지 적절한 타이밍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점점 불안해졌다.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으로 가는 셔틀 안에서 뜬금없이

"엄마 나 타투 있다."라고 말했다.

눈을 질끈 감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하고 괜히 창문 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동생은 큰 소리를 직감하고 딴청을 피웠다. 그러나 엄마는 예상 밖의 답을 했다.

"그래? 요즘 젊은 아가씨들 타투 많이 하더라. 수영 다닐 때 많이 봤어~"

격렬하지 않은 엄마의 반응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아직 엄마가 실제로 본 것이 아니었으므로 방심할 수 없었다. 엄마가 물었다.

"커?"

"응 좀?"이라고 답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은 뒤 옷을 갈아입으러 화장실에 갔다. 나시와 반바지를 입고 묶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어헤쳤다. 머리카락으로 타투를 조금 가리려는 심산이었다. 엄마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직접 보고 나면 들어본 적 없는 류의 한숨을 쉴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엄마는 내 타투를 본체만 체 했다. 엄마도 보기 싫은 게 아닐까? 최대한 엄마 눈에 안 보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도저히 머리를 풀고 다닐 수 없는 동남아의 날씨를 체감하며 숙소에 도착했고 나는 '더워 죽겠는데 어쩔 수 없지'하는 마음 반, '물러날 데도 없으니 엄마 차라리 크게 한 소리 해줘'하는 마음 반으로 다시 머리를 묶었다. 다 함께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던 중 엄마가 내 타투를 가리키며

"이건 새우가?"라고 물었다.

"아니 엄마 이건 달이야"라고 짧게 답했다.

"아 그래? 이건 숫자 0 이가?"

"응 맞아. 나는 세상 전부가 결국 0에 수렴한다고 믿거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을수록 밑천이 드러나 보이는 법, 최대한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이제 충분히 많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내 타투에 관심을 거뒀다. 오랜 비밀을 털어놓을 때 느껴지는 긴밀함이 엄마와 나 사이에도 형성됐다. 엄마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트남 여행 셋째 날 저녁, 꼭 한국에서 상륙한 치킨을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주장에 따라 한국인 사장님이 하는 프랜차이즈 치킨과 생맥주 일 리터를 배달 주문했다. 엄마는 술을 마실 수 없었고 동생은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 맥주는 온전히 내 차지였다. 술기운과 숙제처럼 여겨졌던 타투 공개를 시원하게 완수해 개운한 마음에 힘입어 나는 치킨을 뜯으며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스물한 살 이후 삶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된 이후의 행보를 탐탁지 않아 했다. 영화 동아리 회장이 되었다고 했을 때도, 디즈니 인턴십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의류학과를 복수 전공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엄마는 날카로운 말들과 더 날카로운 한숨으로 응했다. 연애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한 번 이야기해 본 것이었으나 우리 엄마는 그런 종류의 엄마가 아니라는 것만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대학 입시를 끝낸 이십 대는 드디어 관심 있었던 분야들에 도전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이십 대에도 왕도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엄마와 공유하던 세계가 점점 작아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여겼다.


엄마가 쓸데없다고 여길만한 것들을 주야장천 해왔다고 자세히 고백했다. 엄마는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사건의 전말과 속사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듣는 중간중간 엄마는 내가 마치 타투를 공개했을 때 엄마의 반응을 예상한 것처럼 그 역시 몇몇 순간들에 나의 뾰족한 응수에 상처를 입을까 봐 두려웠음을 덧붙였다. 너무 오랜 세월 서로를 오해하며 공통분모를 갉아먹었다는 사실이 이마를 탁 쳤다. 그렇다면 금기에 가까웠던 연애 이야기도 꺼내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피할 수 없는 고독이라는 강렬한 개념을 심어주었던 연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해도 결국 인간은 끝없이 외로울 따름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결혼을 한담? 여전히 결혼을 행하는 결단력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므로 아직까지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닫아 놓고 있는 나를 약간은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같이 있으면 꼭 너무 즐거운 사람이랑 결혼해라. 만약에 이혼한다고 해도 항상 엄마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 순간을 어찌나 기다렸는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쓸데없는 짓들이 쓸데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비단 결혼뿐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 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 그 당시의 즐거움에 취해 선택한 타투가, 결혼이, 도전들이 후회로, 이혼으로, 각종 다양한 실패로 영구히 꼬리표처럼 남는다 해도 엄마가 뒤에 있으니 문제없다, 그저 즐기기만 해라.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며 자주 웃고 가끔 서로 눈물을 삼켰다.


거대한 돌이 다시 굴러 내려올 걸 알면서도 끝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인간에게 언제나 뒤에서 받쳐줄 각오를 하고 있는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 얼마 후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음악에 몸을 흔들기 위해 디제이가 있는 펍에 갔다. 제일 좋아하는 나시를 입고 모두에게 타투를 뽐냈다. 생각보다 어색한 분위기와 체력 이슈로 오래 춤추지 못하고 아쉬워하며 나왔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산도 없이 숙소를 향해 뛰었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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