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리 마지막 날
내일이면 코로나 격리 해제,
이제 자유다!
12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뉴스를 켰다. 중국의 스타벅스라는 <Luckin Coffee>가 매출 실적을 조작했다는 회사 측 발표와 함께 주가가 80퍼센트나 폭락했다는 뉴스였다. 어젯밤에 위챗 그룹방에 누군가 중국 신문 기사를 올렸는데 오늘 네이버 뉴스에 떴네.
스타벅스보다 할인도 많이 하고 커알못에겐 맛도 괜찮아 자주 시켜 먹었기에 오랜만에 러킨 앱을 켰다. 여전히 엄청난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에 오트밀 쿠키 2개 포함해서 8원인가. 배달비를 포함하니 14.05원, 우리나라 돈으로 2,500원 정도 된다. 주가 폭락 기사를 보고 커피를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다는 사람은 나뿐인가.
커피가 배달되는 동안 마음을 재정비하는 사람 마냥 평소보다 더 오래 샤워를 했다. 밀린 빨래도 돌리고. 그리고는 분주하던 격리 첫날과 달리 소파에 다시 이불을 덮고 앉았다. 오랜만에 책 한 권 읽겠다고 가져와서는 옆에 두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7시, 이제 막 기상한 친구가 격리 축하한다며 2주 잘 버텼다고 격려해줬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네.. 힘든 것도 없었는데 왜 그런 건지 참. 추워서 콧물이 나온다는 핑계를 대며 급히 작별 인사를 했다.
격리되었던 약 2주 간의 시간,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뭐하고 살아야 할까. 나는 뭘 좋아하나. 내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 추억들이 그리울 때도 있었고, 상하이, 이렇게 아늑한 내 집(물론 월세지만)을 떠나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다. 물론 상하이에서의 2년 반, 그리고 자가격리 2주 동안 많이 배웠고, 경험했고, 성장했기에 기분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시작도 했다. 영어 공부도 오랜만에 시작했고, 그동안은 부족하다고 생각해 포기했던 중국어 스피킹 수업도 시작했고, (코로나 전 HSK 4급 시험을 본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데이터 사이언스 온라인 강의를 신청해 이제 1주 차 수업을 마쳤다.
시작은 항상 재밌고 설렌다.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학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것을 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걱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은 참 혼란스럽다. 슬픈데 행복한 이 기분. 행복한데 슬픈 이 기분. 복잡.
이런 경계의 순간.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테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에 닿으면 과거의
나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뒤돌아보지 말고 넘자.
그리고 오늘 자가격리 마지막 날. 어느 때보다 더 평온하게 즐기련다. 사피엔스를 읽으며, 나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