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에는 1분 뛰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무려 2분 30초를 뛰었다. 몸에 열이 오르고 턱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좋다. 정강이 부근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달린다. ‘30초 남았습니다‘ 런데이(달리기 어플) 트레이너가 남은 시간을 알려준다. 습습하하 혹은 습하습하. 규칙적으로 호흡을 유지해야 되는데 쉽지 않다. 뛰는 거에 집중하다 보면 숨 쉬는 걸 까먹는다.
나는 어떤 일이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미친듯이 열과 성을 다한다. 내일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느낌이라고 할까. 열정적인 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초반에 힘을 주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내가 번아웃을 자주 경험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매번 페이스 조절을 못해 글을 완성하지 못하거나 달리기를 완주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결국 마지막 달리기를 끝내지 못한 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뛸 수 있는지 모르네. 나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트레이너는 호흡이 불안정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속도나 보폭을 모르면 오래 달릴 수 없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달려야 부상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달리다가 그의 말에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그냥 달려도 돼. 잘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넌 아직 초짜야.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바뀌는 풍경과 산뜻한 풀냄새 그리고 울퉁불퉁한 땅을 느끼며 달려본다. 완주에 목표를 두기로 한다. 새삼 인생이 장기전이라는 걸 달리기를 하며 깨닫는다. 무엇이든 오래하기 위해선 적당한 속도와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달리다 보면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던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나는 두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힘껏 달렸고 그렇게 우울이 내게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럼에도 잡생각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날이 있다. 유독 몸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달린다. 저녁의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내가 한없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심한 우울감에 빠지면 달리기도 소용 없다. 작년 가을 쯤이었을 거다. 달리기가 우울감을 완화하는데 좋다고 해서 호기롭게 집에서 나왔다.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묶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달리는 내내 울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몸짓이었다. 잠시나마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당연하다. 열심히 뛴다고 해서 취업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때 나는 달리기라도 탓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좀 숨 쉬게 해줘. 너라도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해줘야지. 무거운 마음은 몸의 작동을 멈추게 했고, 결국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6월 전까지 뛸 생각을 못했다. 작년 가을에 러닝에게 배신(?)을 당한 뒤로 뛰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겨울이 지나고 3월부터 꾸준히 걸었다. 될 수 있는 한 아주 많이 걸었다. 산책만큼 가성비 좋은 취미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걸으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우울이 호전되었던 것 같다. 운동은 우울증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지, 단번에 해결해 주는 마법이 아니다. 작년 가을에 나는 어떤 마법을 기대했던 것 같다.
만약 너무 힘들어 운동을 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가볍게 10분 정도 동네 산책하는 걸 추천한다. 산책이 버겁다면 집 앞에 나갔다가 들어와도 좋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천천히 늘리면 된다. 몸을 움직여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끼는 게 중요하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 긴 긴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여름의 풍경을 맘껏 훔칠 생각이다. 그것들을 꺼내 보며 내일을 기대하고 다음 여름을 기다릴 거다.
언젠가 삼십 분 내내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러닝크루를 만들고 싶다. 다같이 걷고 달리며 스스로에게 맞는 속도와 보폭으로 삶을 걸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토록 좋은 걸 나만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우울하지만 달린다!